봄봄봄 봄이 왔어요. 날씨가 초봄을 지나 27도까지 올라가는 24년 첫 뜨거운 맛을 보여줬다. 다들 봄꽃 놀이와 테마파크 동물원으로 빠져나가는 걸 보아하니 싱숭생숭 넘어서 나 홀로 문지기가 된 느낌이다. 열어둔 문으로 라일락 향기가 훅 들어왔다. 꽃내음은 속 좁은 여편네 마음에서 사춘기 새초롬한 마음으로 사르륵 녹아들었다.
썰렁한 화단에 꽃이 바글바글하면 좋을 텐데 타샤의 정원은 아니라도 그간에 키웠던 꽃이 잘 발아했다면 씨앗 20개 파종해서 반타작은 해주면 좋을 텐데 정말 폭삭 내 맘도 네 맘도 아니고 4개가 목숨만 건졌다. 그중 왕언니는 금어초는 100년 된 은행나무처럼 튼튼하게 아직 자라고 있지만 꽃이 은행처럼 바글바글 맺혀있지는 않다. 2개 금어초도 뭐 꽃은 아직이고 나머지 하나 너무 기다렸던 네모필라는 웃자람으로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그로로팟 2기 라벤더, 그로로팟3기 금어초 실패를 그냥 둘 수 없어서 나 홀로 그로로팟을 오픈했다. 끈기 열정 이런 거 같아 붙이면 좋은데 솔직하게 화단 가득 꽃이 보고 싶다고 말해야 탈이 안 날 거 같다.
지피포트, 지피펠렛도 써봤는데 폭망이라 이번엔 계란판을 준비했다. 거창하고 꼼꼼함은 덜고 가볍게 욕망 팔레트라고 불러본다. 계란한테 난석을 무심하게 툭툭 닭 모이 주듯이 던져주고 상토를 소복하게 넣고 물을 계량스푼으로 촉촉해질 때까지 넣어줬다.
1. 코스모스 2. 샐비어 3. 데이지 4. 메리골드 5. 비올라 6. 플록스
살포시 올려주고 상토 살짝 가려주는 느낌으로 꾹 눌러버리면 흙도 못 들고일어날까 노파심도 두 스푼 올렸다. 남아있던 지피펠렛에 7. 바질 8. 네모필라를 심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3일 후에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전에 오매불망 기다릴 땐 나오지 않았는데 기대 없이 흙이 말라있으면 물이나 줄까 싶어서 보니까 하얀색 점이 콕콕 몇 개 있다. 오호호 이것은 씨앗이 벌써 발아한다는 증거!! 느낌이 오는군 또 설렘인가요 설레발인가요 두둥 뚜껑 열어 보겠습니다.
계란 한 판은 상토가 적어서 그런가 바싹 말라있었다. 어머 오늘 체크 안 했으면 또 요단강행 인가요. 휴 다행이다 물 줘야겠다는 찰나 무엇이 무엇이 꼬물꼬물 보인다. 어머나 세상에 제일 기대도 안 했던 코스모스 가을에나 보는 코스모스 아가야는 7개나 발아했다. 숙주 아니고 코스모스입니다. 제가 좀 길죠 잘 봐주세요. 꾸벅 인사를 폴더처럼 해준다.
벌써 두 팔 벌려 존재감 드러내는 네 이름은 무엇인고?? 저는 메리골드입니다. 세상에 그냥 메리도 아니고 골드가 붙었구나 이름이 아주 고급스럽도다 앞으로 이름값 기대하마!!! 에헴~
그동안 그로로팟을 실패했지만 그로로가 있는 한 식집사 소로소로는 계속 도전한다. 10개 실패하면 계판을 준비하는 넉넉한 마음으로 도전하는 그 모습이 20년 뒤 타샤의 정원을 비슷하게 가꾸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올 초여름 꽃을 기대해 보련다. 바질파스타는 후기도 올려 보고 싶다.
식물 심기를 하며 손을 움직이고 생각을 하고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을 녹이다 보면 힐링이라는 아이로 마음을 돌볼 수가 있다. 기꺼이 정성을 들여 실패도 하고 때론 상상이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하니까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을까 싶다. 식물을 키우면서 아이도 나도 대화하는 주제가 하나 더 늘었고 관심 없는 남편도 밥 먹으면서 무조건 봐야 하는 꽃과 식물에 잠시나마 초록을 담아 보길 바란다.
<그로로 식물에세이 연재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