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취업 시도(대학 졸업 시, 이직 시)에서 모두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은 무척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종 합격 이전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던 회사에서 서류부터 광탈한 적도 수십 번이고, 면접에서 내 이력이나 전공을 보며 그 일이나 하지 그랬냐며 면박 아닌 면박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취업준비생인 당시에는 앞이 깜깜하고 절박한 심정이라 감정이 들썩이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서류 불합격이나 면접 탈락에 대하여 일희일비 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 사회는 너무 줄 세우기를 당연히 여기고, 또 누가 더 나은지를 꼭 결론을 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과정을 거쳐왔다. 그렇지만 사실은 모든 사람은 장단점이 있고, 특히 취업시장에서 절대적인 강자와 절대적인 약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회사와 내가 결이 맞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내가 못나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누군가 잘나서 그 자리에 합격한 것은 아니란 말이다.
이 부분은 취업 준비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나와 안 맞았나 보지? 하고 최대한 빨리 맞는 곳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무모한 도전이었던 두 번째 취업 시장에서 의외로 첫 번째보다 더 많은 면접을 보았다. 최고로 가고 싶었던 회사도 2차 면접까지 갔었는데, 면접 대기까지의 친절한 직원분들과 멋진 시설의 좋은 기억과 달리 면접관들의 냉랭한 태도를 잊을 수가 없다. 가고 싶은 기업이긴 했지만, 나와 다른 성향과 능력의 직원을 원한다면 나를 뽑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기관은 2차 임원 면접에서 아직도 잊히지 않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건 정치성향이었다. 정확히 '본인을 보수라고 생각하는지, 진보라고 생각하는지'라는 질문이었고, 나를 뺀 전원이 보수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그 기관에 대해 충분히 조사하고 갔기 때문에 기관장이 당시 '보수' 정권의 사람인 것을 알았지만, 나는 거짓말은 면접에서 좋은 수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정직하게 대답했다. 나는 '진보'이고 그 이유는 다른 부분보다는 '복지국가'를 지향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복지'와 관련된 기관이었기에 그 면접의 탈락은 더욱 잊히지가 않는다. 같은 자리에서 토론도 실시했는데, 연습한 것보다도 조금 잘 해냈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때 '보수'라고 대답했으면 달라진 점이 있을지 궁금하다.
(이 부분은 그때 당시에는 조금 쿨한 태도기도 하여 그냥 넘어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부적절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공무원이 아니라서 정치적 중립까지는 강요할 수 없을지 몰라도 회사가 대놓고 '정치성향'을 묻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직장이 그 기관과 유사기관이라 가끔 왕래를 하는데 아직도 그 회사 얘기만 하면 그 면접이 생생히 떠오른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고 수도권을 가로질러 다니며 필기와 면접을 보다가 의외로 서울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기관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서류에 기재된 나이는 만 서른 하나, 사기업에 휴직 중이며, 아이는 둘인 애 엄마였다. 둘째 출산 후 석 달만에 잡힌 면접에서 나는 당연히 이 모든 핸디캡들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최종 면접에 당시 기관장이 들어오셔서 직접 질문을 하였는데, 의외의 지원자라는 점을 강조하시며 어려운 점이 많을 텐데 회사생활을 잘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면접에서의 이런 질문을 여러 번 받은 뒤여서 그런지 오기가 생긴 입장이었고, 최대한 예의 바르게 저는 오히려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당시 면접관들은 모두 의아해했고 나는 '다른 사회 초년생과 달리 이미 가정을 이루고 안정적이기 때문에 별다른 굴곡 없이 직장 생활에 매진할 수 있고, 그런 만반의 준비를 갖췄기에 무려 <신입사원>으로 지원을 했으며, 그간의 경력이 직접 연결되는 채용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어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채용에서 나는 최종합격을 했고, 비교적 작은 기관이기에 초년차에 면접관이던 기관장님과 당시 팀장님들과 직접 만나 뵐 일이 몇 번 있었는데 이런 주장이 신선하여 뽑았다고 하였다. 기혼자를 채용하는 부분에 장점이 있다고는 생각을 못해봤다며 내 주장이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위에도 적었던 '나와 맞는 기업'을 만나는 것이 이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열에 아홉은 나를 별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채용된 뒤, 면접에 참여하지 않았던 나의 직속 임원(부기관장)이 나와 만난 모든 자리에서 언급했기 때문에 매우 생생하다. 이 임원분은 눈만 마주치면 "경력 있다고 선배들한테 대들지 말라" 든 지, "어린 선배에게 막대하지 말라"든지, 하는 등에 할 생각도 없는 행위를 먼저 나서서 제지했다. 나는 오히려 사회생활이 나름 산전수전인 상태라 나이와 상관없이 잘 어울려 지낼 준비가 되었는데 옛날 분이라 그런지 걱정이 많았다. (그 땐 지긋지긋 했는데 이것도 생각해보니 한때다.)
나는 결과적으로 면접에서 약속한 대로 성실하게 근무했고, 막내가 해야 할 일을 기혼자라고 불성실하게 한 적은 없다. 당시 첫 팀 관리 사업에 어려움이 있어 법률자문을 밥먹듯이 하며 두어 달 정도 주말근무와 야근이 반복되었는데, 남편의 지지로 처음 직장에 한 약속을 지키며 무난하게 애엄마 티를 내지 않고 근무를 할 수 있었다.
써놓고 보니 어찌 보면 판타지 같은 일일 수도 있는 듯하다. 우선 이런 나를 뽑아준 기관이 있었다는 점, 초년차에 보통 우리 기관에서 잘 생기지 않는 야근 등의 초과근무를 이해해 주는 남편이 있었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이 글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도전을 해야 결과가 나온다'는 점과 '안될 것 같은 것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새로운 직장에서는 예전처럼 탈모가 올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었다. 모든 직장생활이 그렇듯 어려운 일도 많고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직은 잘 한 선택이었다. 한참 있고 있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그때의 투지가 생생해지는 듯하다. 쫄지 말고, 내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장점으로 승화하는 그런 경험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