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에 한 번 글쓰기 하는 자의 글
노트북을 열었다 닫았다. 매일을 그랬다. 상상하는 글쓰기가 아닌 만큼 내가 누군지 모두 내놓아 보여주는 터라 많은 감정도 해소되고 좋았지만, 또 한편으론 현실에서 아는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오해하거나 하는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워했다. 해외생활이 그런 것 같다. 한국 사람이 엄청 많지만, 그럼에도 몇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다. 한국에서보다는 조금 더 서로를 잘 알 수밖에 없다.
실명으로 쓰는 것도 아닌데 혹시나 내가 추정될까 봐 두려워하는 이유는, 주변에 블로그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분들은 정보공유가 목적이니 일부러 자기를 드러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인터넷에서 하는 일상 공유를 가깝거나 혹은 누군지 알음알음 알만한 사람들이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는 점은 괜스레 두려움을 주었다. 내가 글로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할까 봐, 그분이 자기 얘기 아니냐며 오해할까 봐 등등. 아예 sns로 드러내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솔직하게 써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시작한 글쓰기인데 정말 솔직할 수 있을까 돌아보다 보니 몇 달이 후딱 지났다.
글쓰기라는 새로운 동력을 찾자마자 반년을 저런 고민으로 보내다 보니 다시 우울함이 도져서 하루 종일 티브이만 붙잡고 살았다. 대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일기장도 아닌데 일기보다 더한 푸념을 여기 쓰는 것이 맞는지 또한 계속 의문이다. 하지만 나는 블로거가 아니니, 솔직하게 쓰되 나를 드러내지 않는 방안을 찾아볼 작정이다. 브런치나 인터넷에서 만난 인연은 현실에서 만나서 다정하게 인사해도 괜찮지만, 현실의 이해관계가 있는 분들은 나의 글을 읽으며 나를 평가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이런 걸 이겨내고 있는지 찬찬히 알아볼 작정이다.
가족들에게 브런치를 오픈하는지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나는 가족에게도 물론 오픈하지 않았다. 알게 되는 것이 두렵거나 불편한 건 아니지만, 어차피 잘 읽지도 않을 것 같아서 알려주지 않았다. 가족들 얘기는 마음껏 쓸 생각.
회피하지 않고 책도 더 읽고, 글도 더 쓰고, 다른 분들의 글들도 더 많이 읽어서, 자신 있는 글쓰기가 되는 그날까지 이런저런 아무 글 쓰기 다시 시작할게요.
2023. 9월. 아직도 30도가 넘는 적도의 도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