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액체다. 내가 방금 나가봤더니 땅은 단단하던데 무슨 소리냐고?
지구는 뜨거운 액체 덩어리로 생명을 시작해, 1억 년 동안 얇은 암석 지각이 표면에 형성될 정도로 충분히 냉각되었을 뿐이다.
- 흐르는 것들의 과학 : 물질에 집착하는 한 남자의 일상 여행(마크 미오도닉 저) 중에서
그러니까, 이 과학자의 말에 의하면 지구는 대부분이 녹아있는 액체금속으로 이루어진 상태에 우리는 그 차가워진 표면만 밟고 있는 셈이다. 내 발 밑 수 십km 밑이 액체든 기체든 무슨 상관이랴만은, 그걸 온몸으로 느낀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경기도민을 끝으로 최근 자카르타에 정착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가장 긴 수도권 밖 체류는 신혼여행 8박 10일이다. 근 40여 년을 지진을 느끼기 어려운 곳에서만 산 나는 말 그대로 서울 촌년이었다. 한반도에도 포항 지진과 같은 크고 작은 지진이 가끔 일어나지만, 서울까지 사람이 체감할 정도의 일은 잘 생기지 않아 지진은 남의 일이었다.
인도네시아는 불의 고리를 지나가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지진, 해일, 화산폭발 등의 키워드가 쉽게 떠오른다. 불안한 마음에 괜찮은지 이리저리 알아봤지만, 가끔 지진이 나긴 하지만 자카르타에선 간혹 대피를 하는 정도라고 하였다. 한국에서 전쟁위험이 존재하지만 그냥 살아가듯, 만나려면 머나먼 얘기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자카르타에 들어왔다.
그런데, 지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어느 날, 평소처럼 식탁에 앉아 필요한 물건을 검색하고 있었다. 가끔 음악을 듣기도 하는데 그날따라 쇼핑에 집중하느라 음악도 틀지 않은 날이었다. 몸이 울렁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평소에 앉았다 일어나거나 하면 어지럼을 잘 느끼는 편이라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통은 이런 느낌은 서있을 때 난다. 앉아있는데 뱅글 도는 기분이라니. 대체 뭐지? 하는데 나의 평형감각에 이어서 청각이 작동했다.
‘지지지직, 그그그극, 드드드득’
공포영화가 따로 없었다. 집에 붙어있는 모든 붙박이 장들이 자신의 위치를 뽐내며 나 갈라질 거야 라고 외치고 있었다. 창틀과 벽 사이에서 나는 금속 긁는 소리에서 느껴지는 균열은 공포 그 자체였다.
평행감각과 청각에 이어 이제 눈으로도 가구들이 들썩이는 게 보였다. 매달린 전등은 그네가 되었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휘청여보니 내가 밟는 땅이 단단한 바닥이 맞는지 의문스러웠다. 분명히 이건 배의 갑판에서 느껴지는 꿀렁거림이었다. 나는 지상 30m에서 액체지구를 느끼고 있었다.
아이들과 있었다면 꾹 참고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며 대피를 했겠지만, 혼자라는 생각이 들자 공포가 엄습했다. 눈물이 찔끔 났다.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에서 재해상황에는 통신이 폭주하는 경우가 많아 연결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 이 남자 목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을까?
이거 지진 맞지? 나 어떡해?
(집이 사방 흔들리고 있는데도 지진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나의 절박한 첫마디..)
아니라는 말을 기대한 건 아니었고 역시 남편도 대피 중이었다. 그래도 목소리를 들으니 내가 대피해야 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져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키와 핸드폰만 들고 계단실로 향했다.
이곳 아파트의 계단실은 한국과 달리 평소에 이용하는 이가 없다. 오직 비상용으로만 쓰이는 계단이기에 조명은 잘 구비되어 있었으나, 외국 영화에서나 보던 창문 하나 없는 시커먼 시멘트 벽과 계단만 있는 그런 구조다. 나는 이사 와서 그 계단실 문을 처음 열었는데, 그 분위기에 처음 놀랬고, 아무도 계단으로 대피하고 있지 않아서 두 번 놀랬다.
40여 층 되는 아파트의 하나뿐인 계단실인데, 왜 아무도 없지. 우리 집은 낮은 축에 속하는 편이기에 위에서 내려오는 이가 하나 없어 더욱 의아했고, 그 텅 빈 조용한 계단실을 혼자 걸어서 내려가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언제 올지 모르는 여진도 문제였지만, 반복되는 계단만 존재하는 아무도 없는 회색의 공간을 아래로 아래로 내려만 가는 이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만 같은 오싹함을 느끼게 해 준다.
“아 왜 아무도 없지? 이미 다 대피했나? 나 여기 갇히는 건 아니겠지?”
일부러 혼잣말을 하니 웅웅 거리며 내 말소리가 되돌아와 정말 깊은 동굴로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밖이 보이지 않는 콘크리트 그 자체를 느끼며 단 몇 층을 내려가는데도 영겁의 시간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1층에 도달해 비상구를 열고 나가니 빛이 환하게 느껴지며 이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오는 동안 여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비현실적으로 몽롱한 기분을 느낀 2분이었다.
아파트 앞엔 계단실과 달리 사람들이 꽤 모여있었다. 아마도 모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듯했다. 지진이 나면 단전이 될 수 있어 엘리베이터 사용은 금물이 아니었던가. 그때도 지금도 아직도 의문이다. 여진 대비로 밖에 있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가구는 그 커다랬던 소음에 비하면 다들 멀쩡히 붙어 있었다. 난 여전히 인간의 모든 첨단과학 중 토목과 건축이 제일 신기할 뿐이다. 분명히 눈에 띄게 흔들렸는데 모두 멀쩡하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빨리 겪었을 뿐, 자주 일어나지는 않고 있다. 심지어 ‘났었대?’ 하고 넘어간 적도 있다. 지진 자체가 주는 공포가 엄청나지만, 일단 시간이 흐르고 보니 자주 일어나지 않아 잊고 산다. 어느 나라로 이주하든 그곳에는 위험이 있을 것이다. 자연재해는 대비할 수 없는 면이 있어 걱정이 되었지만, 사람의 대비를 믿고 살아보려 한다. 나의 인도네시아 적응기는 무던하게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