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뮤비 분석 // Love wins all_아이유
사적인 케이팝 by마곳
2024년 1월 22일, 아이유의 새로운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릴리즈 전부터 BTS V, <콘크리트 유토피아> 엄태화 감독과의 콜라보로 큰 화제가 되었다.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나온 새로운 뮤직비디오는, 공개된 지 2일 만에 2000만 뷰를 돌파하며 유튜브 실시간 급상승 목록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leoAppaxi0
뮤직비디오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하지만, 공통적으로 하나의 메시지에 주목한다.
Love Wins All
나는 곡 제목인 메시지와 더불어,
릴리즈 전 공개된 아이유의 손 편지를 중심으로 뮤직비디오를 분석해보려 한다.
"누군가는 지금이 대혐오의 시대라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문장으로 시작한 편지는 곳곳에 이스터 에그를 숨기고 있다. 그리고 그걸 친절하게 하이라이트로 표시까지 해주었다.
"사랑에게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
"끝까지 사랑하려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 번도 나를 혼자 둔 적 없는 나의 부지런한 팬들에게. 어쩌면 타고나기를 악건성 타입인 내 마음속에 끝없이 사랑을 길러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 옆에서 "무섭지 않아. 우리 제일 근사하게 저물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고 싶다."
이 네 문장은 뮤직비디오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 1 /
끝까지 사랑하려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뮤직비디오 시작부터 상자에 쫓기는 두 사람이 보인다. 연출을 맡은 엄태화 감독은 이 상자를 '네모'라 부른다.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인 '네모'는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 곧 다가올 죽음
- 좀비로 변한 세상 (바이러스)
- 외계 세력
나는 이 '네모'를 말 그대로 '네모 상자' 라 생각하기로 했다. 도망치는 두 주인공을 따라다니며 가두려고 하는 네모상자는, 현실에서 대혐오를 만들어내는 '프레임' 즉 '타인의 편견'과 일치한다.
현실에서 우리는 수많은 타인의 시선과 마주한다. 공인인 아이유는 더 많은 시선과 기준들 앞에 서 있을 것이다. 이런 시선들은 대체로 우리를 공격한다. 이해와 포용의 태도가 없어진 지금, 우리는 각자만의 날카로운 기준으로 서로를 재단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을 방해하는 건, 극단적인 죽음도, 외계인도, 좀비도 아닌 바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타인의 날카로운 프레임이다.
/ 2 /
사랑에게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
두 주인공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딘가 하나씩 결핍이 있다.
우선 남자 주인공인 V는 양쪽 눈 색이 다르다. 시력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여자 주인공인 아이유는 수화로 말을 이어간다. 말을 하지 못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삭막하고 두렵기만 한 현실과는 달리, 캠코더를 통해서는 서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캠코더는 뮤비에서 주목할만한 키 포인트로 등장한다.
나는 결국 이 캠코더가 '사랑'을 사물화 한 것이라고 보았다.
사랑을 통해 본다면, 결핍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을 통해 본다면, 우리를 둘러싼 삭막한 상황들도 아름답길만 할 거다.
사랑을 통해 보다면, 결국 이 역경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랑에게는 충분히 승산이 있으니 말이다.
/ 3 /
한 번도 나를 혼자 둔 적 없는 나의 부지런한 팬들에게. 어쩌면 타고나기를 악건성 타입인 내 마음속에 끝없이 사랑을 길러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렇게 서로의 결핍이 있는 두 주인공은 서로 의지하며 네모를 피해 도망 다닌다. 많은 해석에서는 둘을 연인으로 분석했지만, 나는 앞선 아이유의 편지를 기반으로 봤을 때 둘의 관계는 '아이유'와 '유애나' (아이유 팬덤)라고 생각했다.
두 주인공은 서로를 번갈아가며 지켜준다. 때로는 여주가, 때로는 남주가.
이는 아이유의 지난 가수 생활 동안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유애나'를 표현한 것이다. 아이유가 힘들 때 유애나가 그녀를 지지해 주는 유일한 사랑이 되어주고, 유애나가 힘들 때 아이유가 그들을 위로해 준 유일한 사랑이 되어준 것처럼 말이다. 팬에게 일방적으로 받는 사랑이 아닌, 서로가 '함께 사랑하고'있다고 표현한 것은, 지난 아이유의 앨범들을 돌이켜 봤을 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용감하게 맞섰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두려워하던 네모를 마주 보게 되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들은 겁먹은 모습이 아닌, 의연하게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이 네모를 '타인의 시선, 프레임'으로 본다면, 아이유와 유애나를 향한 날 선 다른 이들의 시선과 말에도 결국 둘은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4 /
그 옆에서 "무섭지 않아. 우리 제일 근사하게 저물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고 싶다.
희색이었던 네모는, 붉은빛을 띠며 두 주인공을 사라지게 만들어 버린다. 이것이 과연 '죽음' 곧 'fail'을 뜻할까. 아니.
오히려 나는 이것이 'Win' 곧 '승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해석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아이유의 지난 콘서트를 떠올려봐야 한다. 지난 콘서트의 제목은 <The Golden Hour : 오렌지 태양 아래>이었다. 'Golden Hour' 란 일출 시간, 혹은 해 질 녘 전후의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이 시간에는 태양이 하늘에서 가장 낮게 머무르며 전체적인 색온도가 따뜻해진다. 이 Golden Hour의 붉게 변하는 속성을 뮤직비디오에 대입한다면, 네모가 띄는 붉은빛은 '죽음'이 아닌, 두 사람의 사랑으로 승리한 '해피엔딩'을 의미한다.
뮤직비디오에서, 네모 앞에서 의연해진 두 사람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붉은빛 아래에서, '함께 저물어가자'는 다짐을 한다.
캠코더를 통해 서서히 사라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고, 곧 입었던 웨딩드레스와 정장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린다. 그 옷들을 쌓여있는 옷 더미 위에 떨어진다.
볼탕스키의 헌 옷 더미를 활용한 작업물이 떠올랐다. 볼탕스키는 '죽음을 기억하는' 대표적인 미술가이다. 이 작품의 의미로 뮤직비디오 속 옷 더미를 살펴봤을 때, 떨어진 웨딩드레스와 정장은, 곧 그들을 '기억'하는 것과 연관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며, 결국 우리는 모두 저물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기억'해주는 마지막은 마냥 슬프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걸 죽음으로 인한 패배로 볼 수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저물어감' 일 것이다.
타인의 시선 앞에서 의연하게 맞섰던 두 주인공은, 함께 저물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남겨진 그들의 옷들로 우리는 그들을 계속 기억할 것이다.
누군가는 대혐오의 시대라고 말하는 현재, 아이유는 팬들을 통해 배운 '사랑'으로 그 시간들을 이겨내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나아가 함께 저물어갈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그녀의 용기 있는 다짐에, 다행히도 아직 사랑이 이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움은 기세가 좋은 순간에서 조차 늘 혼자이다.
반면에 도망치고 부서지고 저물어가면서도 사랑은 지독히 함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