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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족의 집에서 생긴 꿈(2)

도망친 곳에 낙원은 있다.

by 뭉지


사실 나는 행복에는 꽤 큰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행복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대체로 ’ 무언가를 이뤄냈을 때‘였다. 대학에 합격했을 때, 성적을 잘 받았을 때, 대외활동에서 상을 받았을 때 등 눈에 보이는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 냈을 때의 짜릿함을 행복이라 생각했다. 내 스스로가 평소엔 약하고 보잘것없는 걸 알기에 그와 반대로 자랑스러워지는 성취의 순간이 행복이라 믿었다. 내가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도 따라주고, 가족의 자랑도 되고, 친구들의 축하도 받을 수 있으니 이게 행복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이 성취들은 내 비루한 몸뚱이를 숨길 갑옷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나는 그 갑옷을 더 크고, 더 두껍게 만들고 싶었다. 내가 가진 나약함을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기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은 그리 자주 오지도 않았을뿐더러, 와도 그 지속시간은 매우 짧았다.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기분도 어느새 처음만 못하고 점점 짧아져만 갔다. 어느 날은 그 성취의 기쁨이 한 시간 만에 끝나버린 적도 있었다. 성취가 행복의 기준이 된다는 건 불행의 시작이기도 했다. 성취에 중독되기 시작하니 성취하지 못했을 때의 내가 꽤 한심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가져도 가져도 채워지는 기분은커녕 더 공허하고 더 허전해져만 갔다. 그리고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방법으로 더 많은 성취를 하는 것만이 답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꼬리를 물고 아픔에 눈물을 흘리며 빙글빙글 도는 개처럼 나도 악순환을 끊지 못하고 나를 학대하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남들은 시험에서 A를 턱턱 받아 오는데 너는 왜 못해?’

‘이번 학기는 성적도 스펙도 별로네. 이런 식이면 앞으로 취업할 수 있겠어?’

‘기껏 밤새서 공모전에 나갔는데 상을 하나도 못 탔네.. 얼마나 못했으면 상을 못 타?’

하기 싫은 걸 꾹 참고 했을 때, 열심히 노력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때 따위의 과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결과만이 전부라고 믿었다. 결과가 전부니 결과가 안 좋으면 과정도 다 의미 없다고 느껴졌다. 성취를 했을 때의 나는 당연한 걸 했을 뿐이고, 실패했을 때는 자괴감에 빠져 하루 종일 나에게 비난의 화살을 쏴댔다.


그리고 이건 일상에서도 똑같이 묻어 나왔다. 계획한 하루의 목표를 10개를 세운다고 했을 때, 달성한 7개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못한 3개에 대해서는 이것도 못하냐며 스스로를 몰아붙이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가진 비실비실한 몸뚱아리리는 성가진 혹처럼 느껴졌다. 마음은 할 게 많다고 저만치 앞서나갔는데 허리는 도통 따라주질 않고, 힘들다고 소리치고 있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무언갈 하나라도 더 이루고, 더 채우고, 더 가져야만 할 거 같은데 몸은 왜 자꾸 따라주질 않는지.. 남들은 척척척 앞으로 잘만 뛰어가는데 나는 힘들다고 소리치는 꼬마아이와 2인3각 달리기 경주를 하는 기분이라 다른 사람들보다 뭘 하든 두 배는 더 힘들게 느껴졌다.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쉬었다 가자며 징징 거리는 꼬마아이를 매달고 가니 마음은 더 조급해져만 가고, 더 불안해져만 갔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하는 내내 자기혐오와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았다. 대외활동을 하면 미처 공부하지 못한 토익점수가 마음에 걸리고, 토익을 공부하면 미처 노력하지 않은 전공 활동이 신경 쓰였다. 미래에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도통 모르겠어서 이것도 저것도 다 대비하고 준비해둬야 할 것만 같았다. 그게 나를 지키고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졌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약육강식 세계의 법칙에 따라 언제든 낭떠러지로 내몰리거나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그 순간이 오면 나는 또 더 노력하지 못한 내 탓을 하며 살겠지..


세상은 잔인한 전쟁터라고 믿는 나에게 화가 가족의 집은 새로운 행복을 알려주었다.

투마이와 투마이의 엄마, 그리고 투마이의 친구와 함께 티타임을 즐기는 어느 오후였다. 나는 역시나 투마이의 엄마가 내려준 터키식 커피와 터키쉬 딜라이트를 먹고 있었고, 투마이의 친구는 내 맞은편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평일인데도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고, 목표를 채우지 않는 불안함 따위 모른다는 듯이 그저 평화롭게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 주위로는 흐드러지게 핀 진분홍색의 부켄베리아 꽃이 있었고, 가족용 수영장은 찰랑거리며 같이 놀자고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유롭고 한가하게 보내면 불안했는데 이 사람들은 이 시간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네.. 보기 좋아 보인다.

어쩌면 내가 미처 몰랐던 행복은 이 사람들처럼 내가 가진 것들 타인들과 나누는 행복 아니었을까? 부자들만 그런 행복을 누린다고 생각했는데 굳이 그런 것도 아니었네. 나도 언제든 이 평화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

그들에겐 여느 일상과 다름없을 평범한 순간이 나에겐 진심으로 아름답고 부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순간을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한국으로부터 도망쳐 온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을 보고 싶었고, 그 속에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생각들을 하고 싶었다. 그 생각들을 모아 모아 나에게 꼭 맞는 행복한 삶의 형태를 찾고 싶었다.


성취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해 빙글빙글 돌면서도 나는 마음속으로 내심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살면 행복하기는커녕 더 공허함만 느끼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더 이상 갑옷을 더 크고, 두껍게 만드는 인생을 살기 싫었다. 갑옷 밖으로 나와 나약한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 연습을 하기 위해 완전히 다른 환경으로 도망쳐 온 것이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은 심혈을 기울여 고르면서 왜 자기 자신에게 꼭 맞는 삶은 옷만큼 공들여 찾지 않는 걸까? 어울릴 옷을 찾기 위해 이 옷도, 저 옷도 입어보는 것처럼 이 삶도 저 삶도 다 경험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투마이 가족의 실크처럼 편안한 삶을 입어보며 이 삶이 꽤나 나에게 잘 어울릴 거 같다고 느꼈다. 나만의 취향이 가득 담긴 곳에서 편한 사람들과 편한 시간을 보내는 것.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타인에게도 주며 함께 행복을 느끼는 것.

행복은 꽤나 거창한 것이라 여기며 살아왔는데 이들의 삶이 좋아 보이는 걸 보니 내가 원하는 행복은 그냥 경치 좋은 곳에서 보내는 시간이면 되는구나 싶기도 했다. 비싼 것도 필요 없이 좋은 풍경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티 한 잔이면 그게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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