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다합
이집트 어딘가에는 ‘배낭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 불리는 바다 마을이 있다. 이곳에 한 번 발을 들이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 여행자들이 속수무책으로 귀국티켓을 찢는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모래먼지가 폴폴 날리는 황토색 산을 배경으로 오아시스같이 넓게 펼쳐진 바다와 그 위로 걷는 낙타 사진을 처음 본 순간 나는 이 비현실적인 풍경을 가진 바다마을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수술 후, 몸을 회복하는 기간에 우연히 알게 된 다합은 꿈의 여행지가 되어 힘든 순간마다 내가 살아갈 이유가 돼주었다. 인서울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 들어온 대학 전공이 기대와 다르게 잘 맞지 않았을 때, 끝없는 과제와 시험 때문에 청춘을 그저 흘려보내고만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코로나가 창궐해 전 세계의 문이 락다운 됐을 때, 나는 언젠가 꼭 가게 될 다합만을 생각하며 그 시간들을 버텼다. 세계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여행지가 있다면 나는 망설임도 없이 다합을 선택할 정도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이자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 꿈을 꾸게 된 지 7년 만에 나는 드디어 낯선 다합 땅을 밟게 되었다.
꿈이 이루어진 순간은 어떨까. 사람들이 흔히 꿈이 이루어진 순간을 행복하고 짜릿하며 환희에 가득 찬 순간으로 묘사하곤 한다. 나도 그 순간을 바라며 아프리카까지 날아온 사람이다. 그렇지만, 내가 느낀 순간은 행복하기보다는 슬퍼서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모든 게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별 게 없었다. 내
리 쏘듯이 작열하는 태양, 널브러진 쓰레기들 사이로 먹을 걸 찾아다니는 염소와 들개들, 정신 사나운 이집트식 노래까지 모든 게 내 몸과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하필이면 바로 전 여행지가 평화롭고 조용한 화가 가족의 집이었던 탓에 혼란스러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여기가 배낭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고? 도대체 왜?”
도착한 지 이틀동안 나는 이곳이 배낭여행자들의 블랙홀인 이유를 찾지 못했다. 같은 숙소에 머무는 한국인 여행자들은 밤마다 물담배인 시샤를 피러 가거나 당구를 치러 가는 등 소소한 놀거리를 즐겼는데 그것조차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어차피 곧 떠날 거 같은데 아무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고 싶지도 않고, 친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철저히 혼자 있고 싶었다. 나는 이 곳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영하러 갈래?”
도착한 지 셋째 날, 누군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에 아무 생각 없이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물놀이를 하며 타들어갈 거 같은 더위나 식힐 심산이었다. 얼굴과 몸에 선크림을 꼼꼼하게 바르고, 바다 앞에서 1,000원을 주고 스노클 장비를 빌렸다. 바다로 슬금슬금 걸어 들어가 낑낑 거리며 스노클 마스크와 오리발을 꼈다.
‘후웁-하아 후웁-하아’
스노클 장비 사이로 뜨겁고 건조한 이집트 공기가 입 속으로 들어왔다가 나갔다.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천천히 바다에 얼굴을 담그고, 살랑살랑 발길짓을 하며 앞으로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다음화는 Under the sea 라는 제목으로 전체글 목록 보시면 읽을 수 있어요. 제가 실수로 작품 선택을 안 하고 업로드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