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는 집에는 항상 먹을 게 있었고, 사랑하는 가족도 있었다. 물도 항상 콸콸 나왔고, 전기도 잘 통했다. 인터넷 속도는 얼마나 빠른 인터넷 강국이라고 까지 전 세계에 소문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지금만큼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면 ‘어른이 돼야 한다는 강박’ 혹은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무게감 때문이었다. 스펙을 쌓기 위한 대외활동 면접을 볼 때도, 알바 면접을 볼 때도 나는 늘 “저 잘할 수 있어요. 열심히 할 수 있어요. 최선을 다할게요”라며 어딘가에 선택받기 위해 애썼다. 어딘가에 뽑히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색을 감춰야만 했다. 최대한 단정하고 바른 이미지로 보이기 위해 무채색의 옷을 입었다. 머릿속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뱉는 것도 안 됐다. 최대한 정제된 표현으로, 상대방이 듣기 좋아할 말을 생각해서 뱉어야 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개성을 죽이겠다는 말이랑 똑같았다. 개성을 죽이겠다는 건 내 안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순수함은 곧 바보를 상징하는 것이며, 바보로 보이지 않기 위해 본능을 억눌렀다.
학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게 맞기도 하다. 유난히 튀는 학생이 있으면 수업엔 차질이 생길 테고, 그로 인해 다수의 학생이 피해를 볼 것이다. 회사의 입장에서도 똑같다. 조직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개성이 강한 직원보다는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할 직원이 더 매력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튄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낙오되겠다는 말이나 똑같았다. 살아남으려면 내가 입는 옷이, 내가 하는 말이, 내가 하는 행동이 유별나면 안 됐다.
나는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검열하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 입은 옷이 너무 애처럼 보이려나?’
‘내가 하는 말이 생각 없이 뱉은 것처럼 보이면 어떡하지?’
‘내가 너무 철없게 굴었나?”
튀지 않기 위해 어딜 가든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눈치를 보았다. 그런데 이 무인도에서는, 내가 평생 신경 써왔던 것들이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누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어떤 말을 내뱉는지, 철이 있네 없네 따질 사람은 없었다. 내가 웃고 싶으면 그냥 크게 웃어도 됐고, 하고 싶은 말을 아무렇게나 뱉어도 아무도 고개를 갸웃하지 않았다.
하늘거리는 나비처럼 섬세한 감정을 가진 사람, 선머슴처럼 거친 마음을 가진 사람, 용감한 사람, 겁 많은 사람, 투덜거리는 사람 모두가 이곳에서는 그저 물놀이나 실컷 하고, 배고프다고 징징거리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들이었다. 우리는 세상에 처음 태어난 아이처럼 격식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이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든 재미있게 보낼 궁리만 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철없는 소리는 하면 다른 누구는 훨씬 더 유치한 말로 맞받아칠 뿐이었다.
“노래 불러줄까?”
기타를 챙겨 온 오빠가 말했다.
“응”
“내가 진짜 좋아하는 노래가 있어. 알라딘 주제곡인데.. 나 사실 알라딘 때문에 이집트 왔다?
몇 년 동안 오고 싶었는데 드디어 왔어. 지금 이 모든 순간이 그저 꿈같아,”
오빠는 눈을 반짝이며 갈색의 통기타를 만지작 거렸다. 이어서 자신이 애정하는 노래인 ‘Whole new world’를 불렀다.
I can show you the world
내가 너에게 세상을 보여줄게
Shining, shimmering, splendid
빛나고, 반짝이고, 찬란한 세상을
Tell me, princess, now when did
말해줘, 공주님, 대체 언제
You last let your heart decide?
마지막으로 네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했던 게?
…
서른이 넘었는데도 자신이 가진 동심을 숨기지 않고, 눈을 반짝이며 노래 부르는 오빠의 모습은 빛났다.
똑같이 디즈니를 좋아하는데도 나는 언제부턴가 그 마음이 점점 부끄러워지고 있던 참이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어른이 되었으니 이제는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포기해야 하는 걸로 여기며 살아왔다. 이 또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철없어 보일까 봐 혹은 유난스러워 보일까 봐 나를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것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믿는 나에게 그는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착각이었는지를 몸소 증명해 보였다. 그의 노래는 나의 취향을 더 이상 세상과 타협하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담은듯했다.
누군가가 밖에 나가더니 소리쳤다.
“얘들아! 밖에 별이 쏟아져!”
그 말에 10명 남짓한 사람들은 우르르 뛰쳐나갔다. 하늘을 올려다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탄성을 내질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따라 나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도시에서 매일 본 희뿌연 하늘과 달리 수천, 수만 개의 별이 쏟아져 내려와 나를 덮칠 듯 빼곡히 매달려 있었다.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믿기지 않았다. 끝없는 별들이 퀼트처럼 빼곡하게 수놓아져 있는 광경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거대한 자연이 포근히 날 안아주는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눈앞의 별 하나가 꼬리를 길게 그리며 하늘을 가르더니, 순식간에 바다 건너로 사라졌다. “별똥별이다!” 탄성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또 다른 별이, 그리고 또 다른 별이 연달아 떨어졌다. 마치 누군가 하늘 주머니를 열어젖혀 별들을 쏟아내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신나서 두 손을 모고 소원을 빌었다. 나도 그들들 따라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태어나길 잘했다.’ 이 광경을 보기 위해 그 먼 곳을 홀로 떠나왔던 거구나. 내 온몸을 던졌던 거구나. 비로소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갔다. 반짝이는 두 눈은 이 광경을 내게 보여주고 있었고, 꼼지락거리는 두 손은 이 순간을 만질 수 있게 해 주었다. 말랐지만 끈기 있는 두 다리는 나를 기꺼이 이곳으로 데려다주었다.
내 마음 어딘가에는 오래전부터 잔뜩 메마른 땅이 있었다. 언제부터 메말랐는지조차도 스스로도 몰랐던 곳이었다. 격식 혹은 체면이라는 이유로 그 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금이 가기 시작했다. 씨앗 하나 자라지 못하는 땅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그 땅에 비가 내렸다. 사람들과 무인도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기타 소리를 들을수록, 떨어지는 별똥별을 볼수록 정신적인 갈증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아도, 엄청난 즐거움이 나를 휘감는 게 느껴졌다. 자극적인 무언가가 없어도 충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내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드디어 원인을 알지 못했던 긴 가뭄이 끝난 순간이었다.
이 땅은 과연 무슨 땅이었을까?
어쩌면 그것은 어린아이처럼 해맑고, 아무 계산도 없던 시절의 ‘순수함의 땅’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마음껏 웃을 수 있었고, 이유 없이도 설렐 수 있었던 시절에 가장 풍요로웠던 땅.
나는 이 무인도에서 비로소 버려진 땅의 이름을 찾았고, 내가 가진 아이 같은 모습과 나의 존재를 긍정하게 되었다. 삶이 준 모든 순간에 감사했다. 더 이상 스스로를 검열하며 뾰족함을 부끄러워하고 싶지 않았다. 거대한 하늘이 별을 품듯이, 나도 내가 가진 유별난 모습들을 품어주고 싶었다. 유별나다는 건 빛이 난다는 말이랑 똑같았다. 스스로가 가진 빛을 가리기보다는 나를 소중히 여기며 빛내주며 살고 싶어졌다.
시선이라는 실로 꽁꽁 둘러싼 껍질을 벗어내고 진짜 나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나는 이 곳에서 다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