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로 엎드려 온몸의 힘을 천천히 뺀다. 물결은 찰랑거리며 얼굴과 몸에 반동을 주고, 햇빛은 따스하게 등을 데워준다. 스노쿨로 뻐끔뻐끔 공기를 마시면서 몸속 곳곳에 긴장이 남아있는 곳을 찾는다. 의식은 옆구리, 종아리, 새끼발가락을 찾아가 힘을 쭈우욱 빼도록 돕는다. 물은 요람처럼 나를 살랑살랑 흔들고, 몸은 나른해져 곧 잠들 것처럼 정신이 희미해진다. 스노쿨을 잡고 마지막 공기 한 모금을 들이 마신다. 너무 많이 마시지도, 적게 마시지도 않는다. 적당히 마셨다는 느낌이 오면, 스노쿨을 빼고 입을 꾹 닫는다. 드디어 물속 세계로 입장할 시간이 왔다. 나른하게 뻗어있는 두 팔을 바다를 향해 수직으로 뻗는다. 그리고는 몸의 반동을 이용해 천천히, 부드럽게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다이빙을 한다. 물결을 가르며 발을 몇 번 휘저으니 아래에서 헤엄치던 물고기들과 벌써 눈높이가 맞아졌다. 오늘도 그들에게 만나서 반갑다고 눈짓으로 인사를 건넨다. 우주를 유영하듯 무중력의 세계에서 몸의 무게를 잊고, 걱정도, 고민도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것들의 스위치를 꺼버린다. 스위치를 끄지 않으면 에너지가 쓰여 숨이 금방 딸리게 된다. 1초라도 더 오래 머무르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껴본다.
고개를 슬쩍 돌려 옆을 보니 같이 온 사람들은 이미 나보다 더 깊이 내려가 유유히 잠영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서커스 묘기를 부리듯이 앞 구르기에 이어 뒷구르기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보려는 듯이 더 깊이 내려가고 있었다. 누구는 숨이 막히는지 오리처럼 발을 허둥대며 급히 물 밖으로 치솟았다. 그 모습이 우스워 킥킥 웃다가, 나도 순식간에 숨이 차 헐레벌떡 물 밖으로 올라왔다.
“컥컥. 오늘만 벌써 두 번째 하는 물놀이라 그런지 숨이 딸린다”
“ 맞아. 우리 점심도 라면밖에 안 먹었잖아. 나도 체력이 약해서 좀 힘들다”
물 밖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고요하고 또 평온했다. 섬 하나를 통째로 빌린 듯이 우리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만 벌써 두 번째 다이빙이다. 무인도에서의 시간은 참 느리게 간다.
다합에 도착한 지는 벌써 한 달째, 그동안 친해진 사람들과 통통배를 타고 무인도로 들어왔다. 라스아부갈룸은 다녀온 사람마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환경이 열악하다고 소문난 곳이기도 하다. 도착한 이곳은 듣던 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삭막한 모래 위로 요새 같은 허름한 움집들이 군데군데 놓여있을 뿐이었다. 그 뒤로는 거대한 돌산이 배경처럼 자리 잡고 있었는데 꼭 외계 행성인 화성에 던져진 것만 같았다. 창문 하나 없이 식탁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움집에서 하루동안 먹고, 자고, 쉬는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 휴대폰 데이터는 당연히 터지지 않았고, 전기도 없었다. 듣던 할 것이라고는 다이빙밖에 없어 보였다.
같이 온 사람들과 프리다이빙을 하고 나와서 소금기가 잔뜩 묻은 몸으로 카펫에 대자로 누웠다. 땡볕을 10분간 걸어야지만 나오는 화장실에 가느니 그냥 씻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어차피 가봤자 더러운 녹물이라 씻는 의미도 없었다. 수영복 위에 대충 아무 옷이나 걸치고는 해먹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옆에 앉은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다. 아까 본 물고기가 너무 예뻤다느니, 오늘은 10m는 넘게 잠수해서 들어갔다느니, 배가 고파 죽겠다느니. 한 명이 배가 고프다 하자 그 허기짐은 전염되어 모두가 배고파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서로 나열했다. 삼겹살, 냉면, 갈비, 김치찌개, 돈가스, 등 이집트에서 구할 수 없는 돼지고기와 김치로 만든 요리가 끝도 없이 나왔다. 그때 누군가 저녁밥을 빨리 먹는 게 어떠냐며 운을 띄웠고, 사람들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 한 끼만 제공되는 밥이라 아껴 먹어야 했지만, 그럴 인내심 따위는 없었다.
사장님을 찾아가 예약해 뒀던 닭고기와 밥, 그리고 약간의 이집트식 반찬이 담긴 요리를 받았다. 점심은 라면으로 간단하게 때웠던지라 접시에 담긴 이 한 끼가 너무나 귀하게 느껴졌다. 흘리지 않게 신경 쓰고 먹고 있는데 난데없이 고양이의 앞발이 나타났다. 그러고는 낚시를 하는 것처럼 날카로운 발톱으로 닭고기를 순식간에 낚아채갔다. 바닥에 떨어진 닭고기 주위로 주변에 잠복해 있던 다른 고양이들과 날파라들이 순식간에 꼬였다. 10초 만에 앙상하게 뼈만 남은 닭다리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람들도 깔깔 거리며 배를 잡고 웃었다.
모든 게 다 불편하고 바보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다 큰 어른들과 맘 편하게 바보 같아지는 지금이 너무 좋았다. 우리가 지금 나누는 대화가 숫자와 자기계발에 대한 게 아니라 물고기와 밥인 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