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앤온리 Aug 07. 2023

무시무시했던 티타임(Tea Time)의 기억

- 상사나 선배 사원의 지적을 받을 때

“시간 되시면 이따가 차 한잔 함께 할까요?”


얼핏 듣기엔 한없이 따뜻해보이는 이 한 마디가 나에게는 스트레스였던 시절이 있었다. 육아로 몇 년간 경력단절을 겪은 후 재취업한 회사에서, 팀원 중 한 명인 차과장은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직급은 높았다. 그는 내가 입사했을 때부터 반갑게 환영해 주며 이것 저것 회사생활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친누나가 나와 동갑이라며 특히 신경을 더 써주는 눈치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보는 그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입사 초기에는 웃음 가득한 얼굴로 좋은 말을 전하던 그였다. 그런데 점점 굳은 얼굴로 여러 가지 지적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전부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한 지적이었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새로 배우는 느낌까지 들었다. 


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도 물론 직장생활은 했었다. 그러나 차과장의 지적을 받다보니 새로 배워야 할 직장예절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사무실 자리에서 가족들과의 전화통화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등이다. 결혼 전 다니던 회사에서는 다들 그냥 자리에서 개인적인 통화를 했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그렇게 했는데, 그게 옳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런저런 지적들을 받고 보니, 결혼 전 회사 다닐 때는 예의범절도 모른 채 진짜 내 멋대로 회사를 다녔구나 하는 반성이 되었다. 그리고 그 옛날의 팀의 선배사원들은 나이차이 많이 나는 막내팀원인 나를 그냥 오냐오냐 다 받아주었던 것이구나 싶어 뒤늦게 감사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그렇게 차과장의 지적을 통해 사회생활을 새로 배우면서 처음엔 고마웠다. 그런데 그 횟수가 잦아지자 조금씩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칭찬도 여러 번 들으면 좋지 않다는 말이 있는데, 하물며 지적이야 여러 번 받아서 좋을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시간이 갈 수록 그의 짧은 지적들은 형식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그 새로운 형식이 바로 ‘1:1 티타임(Tea Time)’이었다. 


시간되면 차 한잔 하면서 이야기하자는 그의 부드러운 제안에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좋다고 했다. 그런데 빈 회의실에 단 둘이 자리하게 되자 그는 나의 업무방식에 대한 그의  의견을 길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사무실 자리에서 짧게 말하는 지적이었다면 티타임 때는 긴 시간 동안 세세하게 지적을 했다. 그런 티타임이 몇 차례 반복되고 나자 점점 티타임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불현듯 “이따가 차 한잔 할까요?”라고 말을 꺼내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번에는 내가 또 뭐를 잘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로부터 사회생활을 배운다는 고마움은 점점 사라지고 스트레스가 점점 커져갔다. 그러면서 억울한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그가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부터 그가 나를 미워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그에게 제대로 찍혔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그렇게 사수 아닌 사수 노릇을 하던 차과장이 어느 날 다른 조직으로 발령 나서 이동을 하게 되었다. 몇 년간 미운정 고운정 들어서 보내기 서운한 맘도 들었지만, 그보다는 ‘드디어 해방이다.’라는 안도감이 더 컸다. 물론 겉으로 티는 안냈지만.


그렇게 차과장을 떠나보내고(?) 한참 뒤 우리 팀에 후배사원이 들어왔다. 학벌도 좋고 똑똑한 친구였다. 그런데 그 후배는 팀원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노력과 성과를 보여주지 않았다. 참 똑똑한 친구인데 왜 가진 능력만큼 일하지 않을까 싶어 답답했다. 그래서 그를 따로 불러내서 그의 업무 방식에 대해 조심스레 이야기를 건넸다.


바로 그즈음이었다. 차과장이 과거에 나에게 왜 그랬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된 시기 말이다. 후배를 보며 답답해하는 내 모습이 바로 나를 보며 답답해하던 차과장의 모습이었다. 차과장과 했던 여러 티타임 중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저는 대리님을 보면 화가 날 때가 있어요. 그렇게 좋은 머리를 가지고도 그렇게나 일을  안 하나 싶어서요. 제가 대리님의 그 좋은 머리를 가졌다면 정말 열심히 일해서 많은  성과를 냈을 거예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는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었다. 당시 나는 나 자신이 진짜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돌도 안된 어린 아기를 키우면서 일하느라 몸도 마음도 정말 힘들던 시기였다. 하지만  애 키우는 워킹맘이라 일에 소홀하다는 말을 안 들으려고 최선을 다하려 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일을 안 한다고 하다니 참으로 억울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뒤 그 당시의 나를 돌이켜보니 최과장이 왜 그렇게 느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힘들었던 나는 최선은 커녕 일을 어떻게든 덜 하려고만 했었다. 자기보호본능에 가득 차서, 나에게 떨어지려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보자는 심보가 가득했던 시기였다. 그땐 나도 내가 그런지 몰랐다. 그러나 차과장은 그런 나의 모습을 간파했던 것이다. 


능력만큼 해주지 않는 후배사원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예전의 나를 보던 차과장의 마음과 같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차과장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내가 후배사원과 소통하려고 한 배경에는 그를 신경 쓰고 아끼는 마음이 깔려있었다. 결코 그 후배를 미워하거나 싫어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그에게 도움을 주어 그가 더 성장하기를 바라는 좋은 의도가 100% 였다. 차과장도 이런 마음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의 의도를 오해한 것에 정말 미안해진 것이다. 그의 시간을 나를 위해 써가면서 몇 날 며칠 생각하고 정리한 말들을 건넸던 것이라고 생각하니 고마운 생각에 마음이 울컥해질 정도였다.


사회심리학 교수인 일본의 나이토 요시히토는 그의 책, 『직장의 고수』에서 지적하는 상사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상사가 이것저것 지적하거나 질책하면 ‘완전 짜증 나!’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중략) 하지만 상사가 여러분을 가르치려 드는 것은 가능성이 엿보여서다. 만약 여러분에게 아무런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혼낼 일도 없다. 상사도 사람이다. 자기가 혼을 내면 당신이 ‘빡칠’ 것이라는 예상 정도는 한다. 미움 받을 걸 알면서도 당신을 위해서 혼을 내는 것이다. 그런 상사의 마음을 헤아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그 당시는 몰랐던 것들, 시간이 지나야만 깨닫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렇기에 지금 나에게 보이고 들리는 게 다라고 판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의 퇴사소식을 차과장에게 알리러 만났던 날 그는 곧장 나를 서점으로 데려가서 조너선 하이트의『바른 마음』이라는 책을 선물해 주었다. 그가 정말로 나를 미워했다면 내가 퇴사한다고 해도 별 신경도 안 썼을 것이다. 그러나 바쁜 시간을 쪼개어, 퇴사하는 나를 만나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고 책까지 사준 그에게 다시 한번 미안한 마음과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비록 그 책의 엄청난 두께를 보고서 ‘혹시 선물이 아니고 벌칙인가?’하는 생각이 살짝 들긴 했지만. ㅎㅎ






* 본 브런치매거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실명이 아닌 가명임을 밝혀둡니다.

* 그림출처 :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출장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를 위해 가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