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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앤온리 Sep 17. 2023

머리와 가슴이 각각 품는 기억들

어떤 것은 머리에 남고, 어떤 것은 가슴에 남는다.


'기억'말이다. 어떤 기억은 머리에 남고, 어떤 기억은 가슴에 남는다.


오래전 미국 유학시절 살았던 동네는 천국같은 동네였다.  일년 내내 온화한 기후와 범죄없는 안전한 도시.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고, 학교 캠퍼스는 아름다웠다. 결혼 후 신혼생활을 시작한 곳이자 큰 아이를 낳아서 키운 동네.  그곳을 떠난지 오랜시간이 지나도 평화롭고도 세련된 그 도시에서의 삶은 머릿속에 아름답게 기억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꼭 한번 그곳에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그리움을 품고 살았다.


그러다가 그곳을 떠난지 10여 년이 되던 어느 해 드디어 그곳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때 살던 바로 그 동네에 숙소를 잡고, 그때 장보던 마트에서 장을 보고, 그때 방문했던 식당들을 방문하고, 책가방 매고 다니던 학교 캠퍼스를 유유자적하게 돌아다녔다.


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너무나 그리던 곳에 왔는데 마음이 즐겁지가 않았다. 싱숭생숭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기분은 뭐지? 내 마음이 왜 이러지? 하고 궁금해하다가 어느날 밤 깨달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던 동네를 밤산책 하다가 가슴 한켠이 찌릿찌릿 아파왔다. 그러더니 예상치 못한 마음의 고통이 갑자기 몰려왔다. 나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머리가 아닌 가슴에 남아있던 기억이었다.


고국을 떠나 외딴 타지에서 느꼈던 외로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 맞춰가며 갈등을 겪어야했던 혼란. 대학원 시절 냄새에 예민한 입덧을 이겨내기 위해 손에 든 비누를 코에 들이대고 시험공부를 해야했던 고난함. 아무 준비 없이 맞닥뜨린 부모가 된다는 막중한 부담감. 이 모든 부정적 기억들이 갑자기 폭발하듯 솟구처 올랐다.  아름다운 기억만 남기고 있던 머리와 달리 가슴속에 남아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기억들은, 그때의 그 장소를 만나자 마치 시간을 되돌린 듯이 되살아난 것이다.


인간은 아마도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머릿속에서 지우며 살 것이다. 힘들었던 시기가 지나고 시간이 흐르면 그 시기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여겨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리라. 하지만 머리는 잊어도 가슴에는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가슴에 남은 이 기억은 언제 어떻게 이렇듯 다시 용솟음칠지 모른다.


얼마전 SNS에서 본 내용이 떠오른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즐거운 가족여행을 다녀와도 커서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왜 굳이 여행을 다녀야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이들이 기억못해도 여행을 가야하는 이유는 여행간 장소와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은 남지 않아도 그때의 행복하고 따뜻한 사랑의 느낌은 남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마 이것도 머리속에 남는 기억은 없어도 가슴은 그때의 감정을 기억한다는 이야기이리라.


이제 아이들을 대하면서, 혹은 다른 사람들을 대하면서 조심스러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부당하게 했던 언행들, 타인들에게 기분 나쁘게 행동했던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잊혀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가슴에는 그때의 서러움과 억울함과 분노가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속에 훌륭하다고 기억되는 부모가 되기 보다는 가슴속에 따뜻하게 기억되는 부모가 되고 싶다. 지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가슴에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싶다는 소망을 이루기위해 더 조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 그림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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