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앤온리 Feb 26. 2024

아이들과의 짧은 대화로 점쳐보는 올 한 해

딸아이 하교시간에 맞추어 차를 가지고 데리러 갔다. 차에 아이를 태우고 집에 오는 길에, 학교에서 오늘 별일 없었냐고 안부인사를 물었다. 그러자 아이가 말하길, 오늘 학교에서 '아무말 대잔치 대회'를 한 시간 동안이나 했다고 한다.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예를 들어 설명을 해준다. 


"고양이가 점프할 때 수박을 따러갔더니 하와이에 화산이 폭발했네! 이런 식으로 말도 안 되는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거야."


친구들과 아무 말 대회를 하면서 본인이 유독 잘했다고 으쓱해한다. 친구들이 자기한테 이 정도면 정신감정 받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자랑스럽게 얘기하길래 축하한다고 해주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나 지금 배가 너무 고프니까 저 앞쪽에 산이 무너지면 우회전 해주세요."


라고 한다. 이게 뭔 소리. 아하! 아무 말 대잔치를 지금도 하고 있는 거구나. 웃기다고 웃어줬더니 더 신나서 아무 말이나 지껄인다. 나중엔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였다. 제발 그만하라고 사정사정을 해야 했다. 학업 스트레스를 이런 식으로 풀면서 정신줄을 놓고 있구나 싶어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가 힘들어도 이런 식으로 엄마 정신머리까지 쏙 빼놓으려 하다니...정신줄을 놓거나 아니면 반대로 히스테리를 부리곤 하는 이 딸아이는 올해 고3이다. 


집에 와서 아들하고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아들이 문제를 하나 낼 테니 맞춰보라고 한다. 엄마의 아이큐를 테스트할 수 있는 문제라나 뭐라나. 어디 한번 내보라고 했더니 이런 문제를 낸다. 


"내가 공부를 하는데, 하루에 최소 3시간은 공부를 해야 하고, 공부하려고 한번 책상에 앉으면 최소 4시간 동안은 앉아있어야 해. 그러면 일주일 동안 내가 책상에 앉아서 공부해야 하는 시간을 최소화 하려면 매일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해야 할까?"


문제를 듣자마자 어이가 없었다. 공부를 최대한 안 하는 방법을 찾는 문제라니! 하필 공부시간 최소화 문제라니! 어이가 없었지만 정성스레 답을 해주었다. 


"우선 월요일 밤 9시에 공부를 시작해서 자정까지 그날 공부해야 할 최소 3시간을 채우고, 자정부터 다음날 1시까지 한 시간 더 공부하면 책상에 앉아있어야 할 4시간을 채우게 되지. 그러면 화요일 자정에 1시간 공부를 했으니 화요일에 공부해야 할 남은 2 시간은 그날 밤 10시에 시작해서 자정 이후 새벽 2시까지 지속하고....." 이런 식으로 나름 계산해서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 설명한 나의 답을 듣더니 아들이 대답한다. 


"땡! 틀렸어요!"

"이상하다. 엄마 말이 정답 맞는 것 같은데?"

"아니에요. 정답은, '나는 그냥 공부 안 하고 도망간다!'지롱~"


라고 말하더니 깔깔대고 웃으며 방으로 도망가버린다. 누가 들으면 공부를 엄청 많이 하는 아이인 줄 알 텐데 그 흔한 영어 수학 학원도 한 개도 안 다니는 아이다. 그런데도 공부시간 최소화 방법을 알고 싶어 하는 이 아들래미는 올해 무시무시한 중2다. 


아무래도 이런 아이들과 올 한 해는 엄청 스펙터클하게 보내게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오 신이시여. 제발 저에게 무한한 인내심을 허락하시어 이 아이들과의 전쟁을 피하고 무사히 한 해를 보낼 수 있게 해 주소서.




그림출처 :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졸지에 '개'가 된 아버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