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첫 회사에 취직한 뒤로, 결혼과 육아로 인해 여러 번의 퇴사와 재취업을 경험했다. 각 회사들에서 했던 일들은 서로 성격이 많이 달랐다. 첫 번째 회사에서 주로 했던 일은 해외로 장기 출장을 다니는 일이었다. 두 번째 회사에서는 다양한 행사들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많이 했다. 세 번째 회사에서는 채용, 조직문화 등 인사(Human Resource) 관련 일을 했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회사까지 결국 관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을 관두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외에 다른 이유들도 있었다. 우선 다니던 회사에서는 더 이상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기술 중심의 연구소에서 일할 때 문과출신인 나의 전공으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장하는데에 한계가 있어 보였다. 회사에서는 아무리 잘해봤자 정년을 채우고 퇴사한다는 점 말고는 크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정년을 채운다고 해도 정년 이후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미리 찾아야 한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그러나 낮에는 회사에서 바쁘게 일하고 퇴근 후엔 가정으로 다시 출근하는, 투잡을 뛰는 듯한 상황에서는 그런 미래 설계를 할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60세, 70세까지도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아보겠다고 다짐하며 과감하게 퇴사를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야심 찬 퇴사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딱 맞는, 열정을 가지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자원봉사도 알아보고,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사회적 기업 설립도 고민해 보았다. 그러나 그 어떤 분야에도 ‘바로 이거야!’하는 열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방황의 시간만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찮게 자기 계발 분야의 대가이자 작가이신 한근태 대표님을 만나게 되었다. 한대표님을 처음 만난 날, 나에 대한 소개를 들은 그가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일을 안 하고 놀고 있나요?”
책을 쓰거나 강의를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냐는 질문도 했다. 물론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강의를 하려면 책을 출간하거나 특정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는 등 나만의 콘텐츠가 있어야 했다. 한 분야에서만 10년 이상 일했더라면 그 분야가 콘텐츠가 되어 그와 관련해 책도 쓰고 전문가로 인정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간 해온 일들은 서로 연관성 없이 들쑥날쑥하기만 해서 나만의 콘텐츠라고 내세울만한 것이 없었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한대표님이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꼭 한 가지 분야에서 오래 일해야만 콘텐츠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여러 분야에서 일하고 다양한 경험을 융합할 수 있는 사람이 인재로 인정받기도 합니다. 그동안 해온 서로 다른 경험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그런 일을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같이 한번 찾아봅시다.”라고.
그때는 과연 그런 일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읽게 된 ‘더넥스트(Next)’라는 책에서 한대표님의 이런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조앤 리프먼이 쓴 이 책의 부제는 ‘모두가 끝이라고 생각할 때, ‘다음’을 찾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경력 단절이 되었다가 새로운 일을 찾아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와 관련된 과학적 연구내용이 담겨있다. 전화기 수리기사를 하다가 구두 디자이너가 된 사람, 클라리넷 전공자였다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된 사람, 백악관의 원자력 예산 분석가로 일하다가 스타 요리사가 된 사람, 광고회사 임원을 하다가 소설가가 된 사람 등의 사례가 나온다.
책에 의하면 그들은 서로 관련 없는 다양한 경험들을 하다가 어느 날 그것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본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서 새로운 직업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례들처럼,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관계없어 보이는 여러 활동들도 시도해 보면서 탐색하는 시기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에 나온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이 본래 하고 있던 일에서는 큰 비전이나 재미를 찾지 못했으며, 남은 인생을 바칠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의도했든 아니든 새로운 일을 찾기 위한 탐색의 시기를 거쳤다. 마침내 도전의 기회가 왔을 때는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도망치지 않고 그 기회를 붙잡았다. 물론 그들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단번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새로운 분야에 대한 ‘탐색’ 뒤 도전에 대한 두려움과 혼란을 겪는 ‘분투’의 시기를 거친 뒤, 원래 하던 본업을 ‘중단’하고 나서야 새로운 기회로 나가는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내용을 읽고 나니 한대표님을 만나 글쓰기를 시작했고, 그것이 연결고리가 되어 지금의 ‘북클럽 진행자’라는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 나의 사례도 책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 직장생활에서 해외 장기출장을 다니며 낯선 사람들을 만나거나,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 경험, 인사 업무를 하며 다양한 사람과 소통했던 경험들은 모두 북클럽 내용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낯선 참석자들과 다양한 주제로 소통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이전에 수행했던 일관성 없어 보이는 여러 일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새로운 직업을 수행하는 데에 자양분이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 회사에서 근무하며 일관성 없이 근무했던 그 시기가 나에게는 길고 긴 ‘탐색’의 단계가 아니었을까 싶다.
인생 100세 시대를 향해 가고 있는 지금, 많은 직장인들도 이제 여러 개의 ‘직장’이 아닌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직장생활에 큰 불만이 없고 죽을 때까지 그 일만 해도 무방하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안 든다면, 불평불만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서는 아무런 변화도 가져올 수 없을 것이다. 불평하거나 변화를 두려워하는데에 쓰던 시간을 이제는 ‘탐색’에 써보는 것이 어떨까. 탐색의 과정에서 겪은 경험들은 언젠가 당신 인생에서 하나로 어우러져 넥스트 스텝으로 올라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지금의 직장에서 열정도 비전도 재미도 찾지 못하여 인생의 다음 단계를 위한 새로운 일을 찾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더넥스트’에 나온 작가의 말로 마무리한다.
“예상치 못한 일에 마음을 열어라. 다음 정착지는 당신이 계획한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 (중략) 모든 변화는 새로운 방향을 향한 작고, 때로는 눈에 띄지 않은 지속적인 움직임 끝에 실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