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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Dec 21. 2023

남편 눈에 콩깍지?

나이듦에 대하여


"우와! 이거 자기랑 진짜 똑같지?"

 

비슷했다.

헤어스타일과 피부와 눈과 콧망울 조금 빼고는.


어느 날 아침 남편이 내 눈앞에 내민 화면 속 사진을 보고 나름 기분은 좋았다. 예쁨으로 한 꺼풀 입혀진 내 젊은 모습을 보는 듯했다. 당시 굵은 웨이브 펌의 갈색 긴 머리칼을 했더라면, 옅은 피치색의 블러셔에 자연 체리빛의 립을 발랐다라면 저리도 아름다웠을까 싶었다. 그야말로 학교에서 손꼽히는 여신이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까지 들었었다.


회사에서는 친한 동기들에게 보여주며, 이십 대의 나라며 속였다. 같은 팀에서 일하는 차장님은 얼굴이 벌게지면서까지 진짜냐고 수십 번을 물으셨고 괜한 통쾌함과 짜릿함까지 느끼기도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아니다 싶었다.

신기해하는 나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을까, 그저 본 재미있고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과거의 내가 그리워서였을까...

남편은 이날 이후, 매일 밤 12시 핸드폰을 집어 들고 자신이 원하는 콘셉트의 사진을 고른 후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일곱 시 반, 내가 회사 사무실에 도착해 일을 시작할 때 즈음 진동이 울린다. 밤새 AI 가 만들어준 내가 아닌 나의 사진을 보내온 것이다.


두어 번 정도는 나와 비슷했다. 또 다른 날은 눈이 과하게 크게 보여 거북하기도 했다. 코가 너무 날렵하거나 머리카락이 은색인 등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자신의 의식의 흐름대로 멘트를 달았다.


"이거 진짜 잘 나왔지?', '정말 예쁘다.', '이건 정말 자기 같아.'


심지어 이런 말도 했다.

'이거 여권 사진으로 써라.', '자기 책 내면 프로필 사진 이걸로 해.'


쩝.






마음 한구석에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듯 은근히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이곳에 앉아 있는 내 얼굴에는 기미인지 주근깨인 지 모를 잡티가 하나 둘 늘어가고 있다. 눈꺼풀은 늘어져 똘망한 눈빛을 보이려면 이마 근육을 써 위로 치켜 떠야 한다. 그러면 이마에는 자글자글한 선들이 새겨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눈 밑에만 바르던 아이크림을 미간과 팔자주름까지 매일 밤 발라대는 마음은 아는지 야속하기까지 했다. 맨얼굴로 남편을 마주하기도 먼지뭉치만큼 껄끄러워졌다.


그래도 매일 사진을 보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남편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그 정도면 컨셉별로 다 해보지 않았냐며, 'ㅎㅎ' 또는 'ㅋ' 정도로 답장을 보내곤 했었다. 별 반응을 안 보이면 그만할까 싶어서였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읽씹으로 방관 중이던 어느 날이었다.


어김없이 아침 일곱 시 반이 되었고, 남편은 '대박'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진 하나를 보냈다. 침대에 누워 사진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을 남편의 모습이 상상되는 느낌표 열 개와 함께.

자기 이상형 99퍼센트에 가깝다고 적혀있었다. 심지어 나랑 가장 닮았단다.


화면을 열어보았다.


나랑, 제일 닮지 않은 사진이었다.


.

.


핸드폰 화면 속에는 나의 얼굴과 닮은 다른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핏 보니 스무 살 중반, 연애할 때 즈음의 내 얼굴과 속눈썹 한가닥만큼 비슷해 보이기는 했다. 그러다 갑자기 지독하게 씁쓸해졌다.

사무실 위에 놓은 작은 손거울을 들어 동그란 은색에 반사되는 모든 곳을 차례차례 살펴보았다. 눈, 코, 입, 볼..

나이 듦을 보여주는 표면들을 가리고 싶어졌다. 거울 옆에 있는 립글로스를 들어 메말라진 입술 위에 얹었다. 파우치에서 팩트를 꺼내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잡티들을 가려주었다. 사무실 책상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든 말든 젊었을 적 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는가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한참을 두드리고 난 후 거울 안에 온 얼굴이 다 들어오도록 비춰보았다. 오히려 더 억지스러워진 내가 보였다. 핸드폰 화면 속에 웃고 있는 내 사진에 시선을 옮겨 번갈아 바라보았다.

도대체 뭐가 닮았다는 건지. 결혼 15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 건지, 도대체 까이지 않은 그 콩깍지가 백억 겹은 된다는 말인가. 하며 책상 위에 거울을 냅다 뒤집어 엎어놓아 버렸다. 그리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 주어진 일을 쳐내었다.  


 




저녁 시간이 되었다.

해가 내어주는 자연광에서 인공의 형광빛이 요구되는 시간이다. 나의 얼굴은 빛의 흐름과 역행하여 날것 그대로를 드러낸다. 메이크업을 한 꺼풀 벗겨내기 위해 벅벅 문지른 손길 덕에 피부는 울긋불긋하. 아파 보이는 입술은 말할 필요도 없다. 화장대 거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흠. 생기 발랄했던 자리 곳곳에 노화를 연상시키는 형체들이 자리 잡고 앉아있다.  

씨익 웃어보았다. 실보다 얇은 잔주름이 자글자글 나타난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여유와 편안함이 보였다. 젊었을 적 넘쳐났던 시샘과 조급함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희미해져 있었다.

좋았다. 치열하게 살아내 온 나의 감정들이 온전히 담겨 있는 모습이. 간이 지날수록 친숙해지는 내 얼굴이.

믈론 점점 더 나이 듦이 드러난다 할지라도, 이제야 느낄 수 있는 뭔지 모를 애틋함까지 더해졌다.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한껏 자기애에 빠져있던 나는, 손등에 남은 로션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목까지 찹찹 발라준 , 방문을 열고 거실로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남편은 언제나 그렇듯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 옆에 찰싹 달라붙어 책을 읽어 내려갔다.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미동도 하지 않고 책의 문장에 집중하는 척 그대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잘 봐, 이게 지금의 나야. 과거의 내가 더 풋풋하고 예뻤겠지. 외면에 남겨지는 세월의 흔적들이 안타까워 보일지라도, 그것을 덮고도 남을만한 단단한 아름다움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어.

지금의 나를 잘 봐둬. 몇 년 후 지금보다 더 예술적으로 변해있을 테니까.


젊고 아름다운 사람은 자연의 우연한 산물이지만
늙고 아름다운 사람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 엘리노어 루스벨트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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