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웃음이 많았다. 발그레한 볼을 볼록하게 미소 지을 때면 주변이 환해지곤 했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작고 까만 두 눈동자는 늘 반짝반짝 빛이 났다. 계속 그렇게 건강하고 해맑게 자랄 줄 알았다.
초등학생이 된 지 한해 반 즈음 지났을 무렵, 여느 때와 달리 소파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아이 쪽에서 잦은 움직임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만들고 있는 건가 싶어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깨를 일정한 속도로 움찔거리고 있었다. 두 눈은 평소와는 달리 세게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뭐지. 무슨 일이지.
이후 증상은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책을 읽을 때뿐만이 아니었다. 그림을 그릴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쌍둥이 언니와 보드게임을 할 때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증상이 눈에 띄게 심할 때는 잠들기 전이었다. 침대에 누워 움찔 거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그러다 고요해지는 아이의 손을 잡고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소리 없이 닦아내었는지.
틱 증상.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특정행동을 반복하는 행동 중 하나이다. 특히 예민한 아이들에게 많이 나타난다고들 한다.
워낙 섬세한 아이였다. 아기일 때부터 주변 사람의 감정을 꽤나 빨리 읽어내었다. 특히 엄마인 나의 표정, 몸짓 하나에 반응했었다. 조금 피곤해 보인다 싶으면 물과 믹스커피를 얼른 가져다주는 등 따스함이 가득했다. 내가 웃으면 아이도 웃었고, 내가 찌푸리면 아이는 나를 안아주었다. 자신에게 온 우주인 엄마의 감정을 보듬으며, 스스로의 마음은 보살피지 못하고 있었던 걸까.
학교 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아이의 눈동자에서 불안한 감정이 비치고 있었다. 학교생활이 원인이었는지는 추측만 할 뿐이다. 일정한 시간 동안 자리에 바르게 앉아 있어야 하는 환경이 익숙하지 않았을 거다. 다소 엄한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에 주눅이 들었을 거였다. 또래보다 많이 작은 자신을, 쌍둥이 언니보다 받아쓰기며, 수학이며 동그라미가 적게 쳐진 시험지를 보고 나는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생겨났을지도 모르겠다.
놀이 치료 센터며 병원까지 많이도 다녔었다. 네이버 카페, 유튜브 등 틱 증상에 관련된 정보를 미친 듯이 살펴봤다. 크는 과정이다.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는 거다. 쌍둥이에게서는 더 많이 발현이 된다. 등 다양한 내용들이 보였다. 다행히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 그거 하나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전부였다.
어느 날, 식탁의자에 앉아 책을 읽던 아이가 너무 깜빡거려 벌게진 눈을 하고는 갑자기 물었다.
"엄마, 나 눈이 아파. 나 이러는 거 이상한 거야?"
놀랬다. 자신이 반복적인 행동을 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먹먹한 마음에 아이를 한참 바라보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었다.
"이상하긴. 우리 유하가 크느라고 그러는 거야. 감기 걸리면 기침이 콜록콜록 나오지? 그것처럼 잠깐 앓고 지나가는 거야. 금방 괜찮아질 거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옮기는 아이를 바라보다 슬며시 곁에 앉아 말을 이었다.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편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생각해 오던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유하야. 유하의 요 작은 가슴 안에는, 유하가 모르는 작은 거인이 살고 있어. 유하 주먹보다 조그마한데, 마음은 엄청 크고 넓어서 거인이라고 불러. 그런데, 그 작은 거인이 클 때 유하를 조금씩 간지럽히나 봐. 그래서 유하 눈하고 배가 간질간질한 거고. 그때 유하가 많이 웃고 좋은 생각들을 많이 하면 작은 거인도 그 기분과 생각을 마음에 담으면서 평온해 진대. "
아이는 조용히 내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이야기를 더 들려주어도 좋을 듯했다.
"그래서, 유하야. 작은 거인이 간지럼을 태우면 가슴에 손을 대고 이렇게 얘기해 봐. '아가 거인아. 괜찮아. 내가 웃음을 줄게. 예쁜 마음을 줄게. 조금만 기다려봐.'라고. 그럼, 이내 조용해질 거야. 그렇게 유하의 웃음과 마음을 먹은 작은 거인은 점점 더 아름답게 자라날 거야. 유하랑 함께."
아이는 자신의 가슴에 자그마한 손을 살며시 가져다 대더니 살짝 미소를 띠었다. 그러고는 소곤소곤 작은 거인에게 말을 건넸다. 괜찮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이후에 아이는 눈을 끔뻑이다가도 가슴에 손을 대거나 가장 좋아하는 하얀색 곰돌이 인형을 안기도 했다. 혼자서 소곤소곤 말하는 모습도 보였다. 틱 증상이 눈에 띄게 나아진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이전보다 마음이 편안해진 듯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어느새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아이는 아직 틱 증상이 남아 있기는 하다. 어쩌다 한 번씩 눈을 세게 깜빡이기를 반복하곤 하지만 예전보다는 확연히 나아졌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이 맞았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면 나아진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작은 거인이 아이의 증상을 나아지게 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그때 아이에게는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늘 곁에 함께 하는, 자신이 돌봐야 하는 존재를 심어준 건 괜찮았던 것 같다. 그 작은 거인은 이제 틱 증상을 완화하기보다는,아이가 올바르게 자라도록 돕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니와 싸우다가 미운 말을 할 때, 뭔가 잘 되지 않아 징징거릴 때면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소곤소곤 귓속말을 한다.
'유하야. 작은 거인은 예쁜 말과 마음을 먹어야 무럭무럭 자라나는 거야. 알았지?'라고.
어제는 회사에서 종일 시달려 온몸이 지친 채로 퇴근한 날이었다.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는 무언가에 쫓기듯이 소란스럽게 집안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아이가 다가왔다. 그러고는 자신의 자그마한 손을 내 가슴에 대더니 종알종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의 마음 안에는 아이거인이 살고 있어. 그 아이거인은 엄마의 미소를 먹고 자란대. 차분하고 침착한 마음을 먹으면 예쁜 모습이 된대. 지금도 자라나고 있어서 엄마가 할머니가 되면 어른거인이 되거든. 아름다운 어른거인이 되게 엄마가 잘 보듬고 키워줘. 알았지?"
마알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하는 아이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 이 아이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