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팀장 다이어리
친한 입사 동기와 한 번씩 점심을 같이 한다. 서로 고민이 많을 때는 특히.
‘안 바쁘면 지금 볼래? 우리 상무 오늘 휴가야ㅋ’
약속하기로 한 12시의 10분 전이다.
녀석. 주임 때나 부장일 때나 상사 없으면 신나는 건 마찬가지구만. 속으로 생각하다 나의 상무 또한 자리에 없는 걸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로비에서 만나 대충 눈으로 인사를 건네고 발걸음을 옮긴다. 회사 근처 지하철 역 옆에 있는 빠바 (빠리바게트). 우리 회사 직원들의 발길이 유독 없는 이곳은 우리들만의 아지트다.
"지난번에 최 팀이 샀으니, 이번에는 내가 살게."
나, 카드를 꺼내며 말한다. 각자 마음에 드는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씩 골라 가장 구석진 자리에 착석.
‘잘 지내?’, ‘뭐 맨날 똑같지.’ 형식적인 안부확인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고민 털이를 시작한다. 이번 점심의 주제는 회사의 안정성 그리고 나의 후회.
요즘 회사 상황이 좋지 않다. 자연스레 팀장 이상의 직책을 단 사람들은 불안감을 한 덩어리씩 안고 있을테다. 나도, 최팀도 예외는 아니다.
최 팀의 부서는 영업팀. 회사의 실적과 맞닿아 있는 부서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위기를 고스란히 느낄테다. 지원부서인 나는 체감하지 못하는 것들을 더 잘 알고 있기에 만날 때마다 묻는다. ‘요즘 분위기 어때?’라고.
그리 좋지 않다. 위기 경영이다, 비상 경영이다. 10년째 들어왔지만 이번만은 다르다고 한다.
아휴.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는 남편이랑 회사 얘기를 하는데, 묻더라고. 예전에 이직 제의 들어왔을 때 왜 안 옮겼냐고. 그래서 대답했지. 첫 직장이기도 하고, 회사에서 많이 배우고, 또 이렇게 성장도 했고. 아직 더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라고. 또... 애들 키우면서 휴가도 자유롭게 쓰고 탄력근무도 할 수 있었고 상사들도, 팀원들도 좋아서. 라고도.”
“그치, 그렇지.”
“그런데 있잖아. 그때 진짜 왜 이직을 안 했지? 어쩌면 새로운 비즈니스에서 더 넓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을 텐데.라는 후회도 들더라고. 이직 한 번 해볼걸. 하고.”
“응. 그랬구나…”
최 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야, 있잖아. 근데, 나 한 번 나갔다가 들어왔잖아. 그때 나 진짜 힘들었던 거 알지.”
“응, 알지.”
최 팀은 몇 년 전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었다. 그리고 2년 정도 되었을 때,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 이곳으로 재입사를 했다. 무리한 야근과 스트레스로 180이 넘는 키에 몸무게는 70킬로도 나가지 않았고, 심각한 우울증으로 하루 한 시간 겨우 잠을 이룰 정도였으니.
“그때 내가 왜 힘들었는지 알겠더라고. 이제.”
“그래? “
나는 당시 최팀이 그렇게 힘들어했던 이유를 적응하기 어려워서, 업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뭐뭐 했을걸,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그 생각 때문에 힘들었던 거야. 이직하고 나서는 계속 있을걸, 좀만 더 참을걸. 했고, 재입사하고 나서는 다시 돌아왔는데도 여전히 힘드네, 연봉만 낮아지고 내가 왜 다시 왔지, 거기서 어떻게든 견뎌볼걸.이라는 생각을 되풀이했었더라고.
야, 이미 지나간 일이야. 너는 그때 최선의 선택을 한 거고, 덕분에 이렇게까지 왔잖아. 앞으로 어떻게 할 지에 더 집중해 봐.”
맞다. 후회해 봤자 아무 소용 없는 걸. 나도 모르게 스스로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던 거다. 실효성을 그리도 중요시 하는 내가, 하등 이득이 없는 고민거리를 머리에 이고 지고 지내왔던 거다. 앞으로 어떻게 할 지에 대해 집중하자. 그게 진리다.
그리고, 동기와의 고민상담도 진리다.
*사진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