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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엄마의 두 번째 생일이니까
엄마로 태어난 생일

by 리유


매년 겨울, 12월 내 생일이 되면 괜스레 고요해진다. 이상하리만큼.

태생이 주목받는 걸 선호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스스로에게 유독 냉정한 성향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축하받는 자리를 피하고 싶을 만큼 쑥스러웠고, 생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지 싶기까지 했었다. 어렸을 적을 떠올려 보면 생일날 아침 미역국에 흰쌀밥을 먹고 등교한 것이 좀 달랐던 것 같고... 뭔가 특별한 축하나 선물 등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지 않다.




그런 내가 이제는 한 날에 두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고, 열 한번째 아이들의 생일을 맞이하고 있다.

생일이 별 일 아닌 듯 스쳐온 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었던 걸까. 내 아이들만은 생일을 마주하는 감정이 나의 것과는 달랐으면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진심으로 축복받을 일이라고,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라고, 너로 인해 엄마 아빠는 행복하다고' 온전히 전해주고 싶었던 것.


그래서 매년 가을이 되면 작은 이벤트 준비로 분주해진다.

'HAPPY BIRTHDAY'가 적힌 가렌더, 고깔모자, 예쁜 접시 등... 촌스럽지 않지만 적당히 화려한 소품들을 준비한다. 가족들에게 초대 문자도 보낸다. 부모님들, 동생 가족까지 모두 모여 축하해 달라고. 어느 날은 할머니가 용돈 선물을 주신다는 걸 선물로 대신 사 오겠다고 한 때도 있다. 그동안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던 물건들을 직접 사서 포장까지 하며 선물 증정식을 화려하게 가졌던 거다. 작년엔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다길래 흔쾌히 그러라 했었다. 치킨, 피자, 과일 등 푸짐하게 차려놓고.

매번 생일 때마다 챙겨야 할 여러 일들로 아주 약간 고되긴 하다. 그래도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그 고됨이 스르르 녹아버리고야 만다.



그리고 올해, 아이들의 열한 번째 생일.

우리 넷이 함께하자는 나의 제안에 흔쾌히 그렇겠다고 한 가족들. 그냥 우리 넷만의 오붓한 파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평일이 생일이었던 덕에 회사에는 연차를 냈다.

사실, 아침에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들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기도 했던거다.

전날 퇴근 후 끓여 둔 미역국에 흰쌀 밥, 고기반찬까지 차려주었다. 진짜 맛있다며 한 그릇 뚝딱 비운 아이들. 원하는 모양대로 머리도 묶어주고 얼굴에 로션도 좀 발라주었다. (매일 아침 아빠가 묶어주는 머리모양을 마음에 안 들어했었다는...) 아침에 눈뜨고부터 싱글벙글 웃음이 그칠 줄을 모른다.


그렇게 책가방 하나씩 둘러메고 현관 앞에 나서던 중, 둘째 아이가 내 손에 종이 하나를 꼭 쥐어준다. 슬쩍 보니 작은 편지봉투다. 아하. 요녀석 약속은 지키는구나.

아마도 나의 반 강요에 의해 쓴 걸 거다. '너희의 생일은 엄마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날이야. 너희들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었으니까. 그러니 편지 꼭 써야 해.'라고. 한 달 전부터 주문을 넣어 뒀더랬다.


이제 학교로 향할 시간이다.

'생일 축하해.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속삭이며 한 명씩 꼭 안아주었다. 얼굴에 행복이 만개해 나란히 길을 나선 아이들. 창문을 열고 저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고 손을 흔들어 줬다. 아이들도 몇 번이나 뒤돌며 손하트를 그리고 난리가 났다. 뭔 유난이냐 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엄마가 평일에 집에 있는 날은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걸 어째...



모두가 나가고 난 후, 식탁 앞에 앉아 아이가 쥐어준 편지를 펼쳤다. 아직은 아기아기한 글자들.

'엄마'로 시작하는 아이의 마음을 읽다 나도 모르게 눈가가 따스해졌다.


"엄마, 나를 건강하게 낳아줘서 고마워.

그리고 축하해. 오늘은 엄마의 두 번째 생일이니까. 이 세상에 엄마로 태어난 엄마의 생일."


..


나의 두 번째 생일.

엄마가 된 생일.


맞다.

나는 아이를 만나고 나서 다시 태어났다.

아이를 만나기 전과 후의 내 삶의 대부분이 달라졌다.

생활은 물론이고 마음과 생각들까지도.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 거다.




나에겐 두 번의 생일이 있다.

내가 이 세상을 만난 생일, 그리고 엄마가 된 생일.


두 번째 생일만은 그 행목을 마음껏 누리고 싶어졌다. 두 생명을 낳고 이렇게 키우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축하받을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잘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이제 ‘생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더 이상 고요해지지 않는다.

아이들의 진심 어린 축하에 충만한 행복을 만끽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있어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라고,

나로 인해 아이들은 행복하다고.

온전히 나에게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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