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을 가다듬는다.
꺼낼 이야기를 머릿속에 미리 연습한다.
임원들 앞에서 발표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두 배는, 아니 세 배는 더 긴장된다.
입사 6개월 차 신입에게 계획에 없던 일을 부여, 아니, 부탁해야 한다.
그것도 임원의 지시로 일주일 내야 해야 하는 일을.
자칫 잘못하면 볼륨 5 정도 올라간 목소리로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다.
‘왜요? 그 메일은 못 봤는데요. 그것까지 우리가 해야 해요? 이렇게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
이들보다 약 10년 이전에 회사생활을 시작한 80년대 생, 그러니까 나이 앞자리 4 이상을 붙이고 있는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되물을지도 모른다.
‘설마, 그렇게 까지 물어?’
사실이다. 물론, 문장으로만 읽었기에 귀로 들었을 때 보다 건조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고 나는 받는다. 이걸 최대한 잘 받아치기 위해 그렇게 미리 연습한 것이다.
게다가 신입이다.
취업을 위해 온갖 면접 스터디에 자격증까지 뇌를 풀가동 시키고 온 그들은 가장 똑똑한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취업까지 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라는 거다.
예전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면, 그때가 제일 ‘나 잘났어’ 하던 때였다. 계획되지 않았던 일이 갑자기 다가왔을 때 부담감이 상당하기도 했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같이 일하는 상사가 이상하다며 흉도 꽤 많이 보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신입이다.
아직은 업무가 미숙하고 경력자들에 비해 확실히 일 머리도 부족하다. 경험이 적으니 당연한 거다.
실수도, 놓치는 것도 분명 많을 것이다.
주어진 일의 일정과 내용은 정확히 숙지했더라도, 이를 행하는 과정이나 방법에서 잘못 알고 있거나 모르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즉, 선배들로부터 일종의 ‘가르침’을 더 받아야 하는 계층인 것이다. 아주 뛰어난 능력자가 아닌 이상.
팀 내에서 긴장감이 팽팽한 대화가 오간 적이 있다.
과장: 새로운 일이 하나 더 해야 하는데, 여기까지 내용을 넣고 이번 주 금요일까지 전달하면 좋겠어요.
신입: 네? 저는 그 메일 받지 못했는데요? 그런데 그걸 5일 이내 해야 한다고요?
과장: 아, 이건 지난주에 팀 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얘기가 나왔던 거예요.
신입: 그런데 그 일을 하게 될 거라고 듣지는 못했는데요.
과장: 혹시, 이 제목의 이메일 못 받았어요?
신입: 네, 못 받았어요.
과장: 음, 내 자리로 와볼래요? 보여줄게요. 이게 팀장님이 보냈던 그 메일이에요 주임도 여기 수신자에 포함되어 있고.
신입: (당황하며) 아, 이거요. 그런데 이걸 이번 주까지 해야 한다고요?
과장: 네, 물론 새로운 일이라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어떤 내용을 넣을지 같이 얘기하고, 나머지는 원래 있던 정보들을 매핑시키기만 하면 돼요. 같이하면 더 빨리 할 수도 있고요.
신입: 네, 알겠습니다.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엔 한껏 고조된 목소리로 질문을 이어가다, 이후 조금 침착해더니, 생각보다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차분히 받아들이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과장님은 다소 공격적인 질문에 당황하다가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아이를 타이르듯이 말을 이어간다.
결국 신입이 해보겠다며 밝은 목소리를 냈지만, 과장의 기분은 그렇지 않으리라. 그리고 신입의 마음도 겉으로만 밝을지도.
이때 깨달았다.
요즘 직원들에게, 소위 말하는 MZ 세대에게 계획되지 않은 일을 부여하거나, 양이 많아질 때는 먼저 그 배경과 납득할 만한 아주 상세한 이유를 먼저 얘기해야 한다는 것을.
더 나아가, 신입, 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려주면 일을 부여하기 훨씬 수월하겠다는 것을.
모두가 그렇지는 않으리라. 분명히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쩌면 나도 속으로 이상하다 여겼던 ‘까라면 까’ 식의 업무 전달 방식이, 이제서 더 나은 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진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길에 놓여 있는 것일지도.
90년대 생에 대한 부정적 말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너무 자기중심 적이야, 직설적이야, 비판적이야. 이익만 중요하게 여겨.‘
그런데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어떨까.
‘개인을 존중해, 짧고 명료하게 얘기해, 다르게 생각할 줄 알아. 아웃풋이 확실해.‘
오, 괜찮다. 아니, 이 정도면 인재다. 인재!
물론, 어렵다.
그간 기준으로 삼아왔던 마인드와 행동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물음표만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기준도, 신입의 기준도 서로 터놓고 교집합을 찾아 조율해 보면 어떨까 싶다.
그 교집합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시너지가 날 것이다.
아무튼, 나는 오늘도 준비한다.
똑똑한 그들에게 일을 ‘잘’ 설득하기 위해.
논리에서 지지 않고 할 말을 정확히 꽂고 오기 위해.
정성껏 영혼까지 끌어올려 설명하리다. 그들의 가치관을 이해하리다.
때로는 속이 터질 때도 있겠지만, 그들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리라.
하지만 자꾸 떠오른다.
그가 동기들과 일을 비판하던 그 모습이.
어쩔. 정떨. 했삼. 아주 짧게 던졌던 그 말들이.
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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