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하는 엄마의 고단한 하루

by 리유



눈을 떴다. 감았다. 다시 떴다. 반만. 미세한 두통이 여전하다.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당기고 옆으로 돌아 누웠다. 수많은 바람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아. 오늘도 다섯 시간밖에 못 잤네. 딱 7시까지만 더 자고 싶다. 하..'


아이들이 잠에서 깼을 때 환하게 웃으며 안아주고 싶다. 고무줄 하나로 뭉뚱 하게 묶고 가는 머리도 어여쁘게 땋아주고 싶다. 식탁에 함께 앉아 오물오물 아침 먹는 모습도 바라보고 싶다. 학교 잘 다녀 오라며 하이파이브도 해주고 싶다.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 일주일째 장식처럼 놓여있는 책도 읽고 글도 끄적이고 싶다. 한두 시간 정도는 밖에 나가 산책도 하고 남은 시간엔 굴러다니는 먼지들도 좀 치워내고 싶다. 아이들 오기 전에 에어컨 켜두고, 시원한 수박 한 그릇 썰어놓고 기다리고 싶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을 말없이 꼬옥 안아주고 싶다. 남편과 아이들 넷이 둘러앉아 맑은 정신으로 저녁도 먹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다가 출근 걱정 없이 잠들고 싶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핸드폰 화면을 바라본다. 그새 2분이 흘렀다.

그 짧은 시간에 이토록 많은 기대를 쏟아내다니 나도 참 대단하다 싶다.

일어나자. 먹을거리도 사야 하고, 관리비도 내야 하고, 아이들 책도 사주고, 학원비도 벌어야 하니, 일단 일어나자.


반쯤 눈을 감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울을 보니 눈가에 잔 주름이 두 줄은 더 늘어난 것 같다. 눈두덩이에는 또 누가 밀가루 한 줌 붙여 놓았나. 왜 이리 퉁퉁 부었을까. 설렁설렁 이를 닦고 샴푸가 채 씻겨 내려가기 전에 린스를 발라 머리를 감는다. 드라이기와 선풍기를 동시에 강풍으로 틀어 물기를 말린다. 어젯밤 다려놓은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을 보니, 이제야 이리저리 흐들리던 정신이 제자리를 찾은 듯하다.

화장대 위에 올려둔 분홍색 표지의 감사일기장을 펴고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간다. 오늘도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정갈한 옷을 입고 회사에 출근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곁에 있음에 감사합니다.


부엌으로 들어가, 정수기 물 한 잔을 쪼르륵 따라내고 유산균 한 알을 꿀꺽 넘긴다. 냉장고 문을 열고 양배추 즙과 단백질 바를 집어 들어. 식탁 위에 올려둔다.

이제 아이들에게 인사할 차례다.


방문을 연다. 포근함과 따스함이 적절히 섞인 달큰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배를 훤히 드러내고 나비자세로 자고 있는 아이들. 얼굴을 쓰다듬으며 귓가에 소곤소곤 말해본다.

"사랑하는 아가야, 엄마 회사 다녀올게, 아이 예뻐, 오늘도 좋은 일이 가득할 거야. 사랑해."

어느새 잠에서 깬 아이들은 고 통통한 팔로 몸을 감싸며 웅얼거린다. '최대한 빨리 와야 해, 사랑해, 쪽쪽'


두 아이들을 뒤로하고 방문을 닫는다. 현관으로 총총 걸어가 구두를 신는다. 다이어리와 책이 든 북백과 가방을 양손에 들고 계단으로 걸어 내려온다. 차의 시동 버튼을 누른다.




는 라이트를 번쩍이며 움직이고 있는데 내 머리와 몸은 여전히 어두컴컴하게 멈춰있다.

'오늘도 나는 좋은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멋진 사람이다. 나는 매일 발전한다... ' 아침 확언을 20분째 10번을 반복재생 해봐도 왼쪽귀로 들어와서 오른쪽귀로 빠져나가 창문 틈 어디론가 흩뿌려진다. 그동안 집중해서 듣던 오디오북의 성우 목소리도 차 천장 어딘가에 흐물거리며 제멋대로 붙어 있는 듯하다. 렇게 한 시간 동안 시속 100킬로로 달려 회사 주차장에 도착.


목에 건 아이디카드로 출입구를 찍고 사무실로 걸어 들어가는 길,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정장을 입고,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그래도 꽤 멋있어 보인다. 그것도 잠시,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8시간 동안 이 자리에 앉아 있겠지.라는 생각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아웃룩에 쌓인 메일들을 읽어 내려가는데 2글자들이 이리저리 뭉그러진다. 노안인가. 에잇, 오늘 할 일이나 먼저 적어보자. 회사 전용 노트를 펼쳐 하나하나 적어 내려 가 본다. 한 페이지가 가득 찬다. 휴.

카누 커피 두 개 뜯어 얼음물에 빙빙 돌려 녹인다. 빈속에 들이켜서 인가 속이 쓰리다. 아, 그러고 보니 양배추 즙과 단백질바를 식탁 위에 그냥 두고 왔구나. 정신아, 어디 갔니.



팀원들과 업무 계획을 공유하고, 문의 오는 것들에 답 하고, 다른 팀과 미팅하고, 상무에게 보고 하고, 나름 일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덧 11시다. 3시간 넘게 물 한잔 안 마시고 의자에만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워치가 ‘움직일 시간이에요’라고 발자국을 반짝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키보드를 두드렸던 탓이겠지. 자리에서 일어나 본다. 허벅지가 땅긴다. 앉아만 있었는데도 왜 그러지. 보나 마나 뻔하지. 일 빨리 하려고 잔뜩 힘주고 앉아 있었던 거였지. 내 몸아 미안해.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한 직원 식당 밥을 꾸역꾸역 먹고, 양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평소보다 업무속도가 더딘 덕에 점심시간에도 일을 쳐내야 한다. 그래야 칼퇴근하고 아가들을 보러 갈 수 있다.

아침보다 눈이 더 침침하다. 인공눈물 한 통을 다 넣어댔는데도 여전히 뿌옇다. 어디 가서 눈감고 30분만, 아니 10분, 5분이라도 누워 있고 싶다. 제발.

점심을 먹고 나서 일까. 머리의 로딩이 늦어진 게 느껴진다. 버벅버벅 소리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보고서를 보고 있어도 뭔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티를 내서는 안된다. 자세를 더 꼿꼿이 세우고 눈을 부릅뜨고 앉아 있는다.


이제 곧 퇴근시간이다. 아뿔싸. 상무가 부른다. 우리 팀에서 제안한 내용이 마음에 안 드신단다.

그래, 까짓꺼, 바꿔드릴게요. 괜한 자존심이 불타오른다. 자료도 찾아보고 보고서도 다시 작성하기 시작한다. 어느덧 퇴근시간,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하는 인사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답한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이 정도면 완벽해.라고 혼자 읊조리며 뿌듯함과 함께 메일을 보내고 시계를 보았다. 퇴근시간을 훌쩍 넘겼다. 책상 위에 놓인 손거울을 들어 얼굴을 비춰보았다. 누렇게 떴다. 립밤이 다 날아갔는지 입술 군데군데 빨간 색조만 묻어있다. 눈밑은 왜 이렇게 어두컴컴한 지. 쩝. 무슨 환자도 아니고.


메마른 목구멍에 물 몇 모금 넣어주고, 한 번도 들춰보지 못한 다이어리와 책이 든 북백과 가방을 들었다.

다시 주차장으로 걸어 내려간다. 차의 시동을 켠다. 오디북도 듣고 음악도 좀 들으면서 가야지.





두 시간 운전에 뻣뻣해진 허리와 다리를 펴고 차의 문을 닫는다. 집이다. 드디어 집이다. 아가들과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우리 집에 왔다.


아이들을 품에 안으니 한껏 뭉쳐있던 어깨 근육이 스르르 풀린다. 묵직했던 뒷덜미의 뻐근함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제 저녁 차리기에 설거지, 청소까지 또 다른 일들이 이어지겠지. 하하.





이번 주는 유독 견딜 수 없이 피곤한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기가 힘들었고, 뭐 하고 사는 건가 싶은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회사에 도착해서는 내내 뿌연 눈을 이리저리 찌푸리며 수십 개의 서류를 작성하고 미팅을 했습니다.

퇴근할 때도 차가 유독 많이 밀리더군요. 생계를 위해 다닐 수 있는 회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거다. 내가 선택한 거다. 힘든 점은 감수하자. 투덜 댈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자. 아무리 반복해서 되새겨도 의식이 자꾸 부정적으로만 흐르더라고요. 일시적인 마음이기를 바라면서도, 수 년째 반복하는 고민할 거라는 것을 알기에, 어디다 놓아야 할지 모르는 마음을 글로 남겨 보았습니다….



*사진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