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ul Feb 14. 2024

독감 일기 - 01

EP 21


'쿨럭쿨럭...'

'으....'

'켈록 켈록...'

'하......'

'언제 끝나지 이 악몽은?'



2020년 코로나 이후로 몇 년 동안 영어 수업을 계속 비대면으로 진행하다가 다시 대면수업을 시작한 지 약 2주도 채 되지 않던 2024년 2월의 어느 날, 민족 고유의 명절 설날을 불과 이틀 남겨두고 가르치는 학생 중의 한 명의 몸에 기생해 있던 독감 바이러스가 나에게 환승해 왔다.


지난 4년 동안 내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서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며 고생할 때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코" 자도 나에게 얼씬거리지 않았건만, 이깟 독감 바이러스가 내 몸에 환승을 하는 것을 이렇게 쉽게 허락하다니 좀 어이가 없었다.


지난 몇 주 동안 이사를 하고 새로운 환경에서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친 것이 이유라면 이유겠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독감의 세계로 이끈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난 4년 간 나의 인생은 거의 재택근무였고, 집에서 온라인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밖에 나가는 것은 운동이나 산책을 하거나 쇼핑을 하러 갈 때뿐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마스크가 없이는 절대 밖에 나가지 않았었던 것도 역시 내가 지난 4년 간 코로나를 비롯한 그 어떤 감기에 걸리지 않았던 가장 주요한 원인이었다. 물론,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언제나 손을 씻었던 것도 역시 한 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말이다.


독감 첫째 날

누구나 병이 걸리는 특별한 전조증상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목이 칼칼해지고, 코 끝이 차가워지며, 재채기를 몇 번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코끝이 차가워지지도 않았고, 재채기도 하지 않았으며, 그냥 목이 좀 칼칼해졌을 뿐이었다. 사실, 그래서 특별하게 '이게 감기인가?'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나오는 순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깨달음이 온몸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이것은 보통 감기가 아니구나'.


나는 20대가 되면서부터 독감에는 단 한 번도 걸려본 적이 없었다. 가벼운 감기나 열, 또는 두통 정도는 여러 번 겪었지만, '독감?'은 정말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었다. 그렇게 첫째 날 밤은 처음 접해보는 독감의 위력이 과연 어떨까?를 상상하며, 별일 아닐 거라는 다소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조금은 불안한 잠을 청했다.


독감 둘째 날

1980년대와 1990년대 전 세계 프로복싱계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Mike Tyson)'은 복싱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다음의 명언을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Everybody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face)."


나에게 이번 독감은 마이크 타이슨이었고, 나는 그가 때려눕힌 수많은 상대편 선수 중에 최약체였다.


나는 둘째 날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지난밤 나의 마음속에 존재했던 이것이 독감이건 아니건 간에 어느 정도는 내가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산산조각 났고 나는 이미 죽어있었다. 목소리를 내보려고 했지만, 내 귀에는 내 원래의 목소리가 아닌 짐을 가득 싣고 가파른 언덕을 아주 힘겹게 올라가는 20년 정도 된 10톤 트럭의 엔진 소음이 들렸다.


내가 겨우 일어났을 때는 이미 출근을 해야 하는 시간이 지나 있었고, 어떻게든 옷을 챙겨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낑낑대고 운전을 해서 병원에 도착했다. 나는 병원 로비에서 진찰 순서를 기다리면서, 반쯤밖에 떠지지 않는 내 눈으로 혹시나 나보다 증세가 더 심한 독감 환자가 진찰을 받으러 와 있는지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나보다 상태가 더 심각해 보이는 사람이 몇 명을 발견하고는 그나마 마음에 작은 위안(?)을 느끼던 중에 내 이름이 불렸다.


의사 선생님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옆의 진찰 의자에 반쯤 눕히더니 목 안을 살피고 '아~' 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아~'라고 했지만, 내 목에서는 아까의 그 트럭 엔진소음이 흘러나왔고, 선생님은 화들짝 놀라셨다.


"평소에 목을 많이 사용하는 직업을 가지셨나 봐요. 허허허"

'네.. 죄송해요..'


나는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수업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웬만해서는 수액을 맞으면 대부분 빠르게 컨디션이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정말 간절한 이 소망은 정말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사항이었다.


나는 그렇게 컴컴한 독감의 터널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독감

#구토

#설사

#화장실

#병원

#연휴



Q: 최근 독감에 걸리신 적이 있나요?

이전 20화 마이클 조던의 동기부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