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2
나는 지난 4년 간 나름대로 상당히 철저하게 개인 방역을 실시해 왔으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개인위생을 지켜왔다. 어떤 이유로 외출하더라도 10분 이상 나갔다 오면 무조건 손을 씻었으며, 하루에 3번씩 꼭 샤워를 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감기 기운이 조금만 느껴지면 바로 운동을 해서 땀을 낸 후에 따뜻한 물과 시원한 물로 번갈아 가면서 샤워를 했고, 샤워 후에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감기약을 먹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나는 감기는 물론이고 코로나에 단 한 번도 걸리지 않았으며, 또한, 코로나 발생 이후 온라인 수업을 중심으로 영어를 가르쳐왔던 나로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도 전혀 맞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수년 만에 갑자기 찾아온 독감은 인간이 참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었고, 질병이라는 것이 내가 아무리 열 번을 잘 방어해도 단 한 번 부실하게 대처하면 나의 인생을 정말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도 함께 경험하게 해 주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아버지께서 언제나 나에게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사람이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문장을 곰곰이 떠올리며 마음속에 되새겼다.
독감 셋째 날
사실, 둘째 날에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증상으로 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닌데, 혹시 독감 검사를 해보겠느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의사 선생님께서 작게 혼잣말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 선생님은 자신의 혼잣말을 내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신경 쓰지 않으셨겠지만 나는 분명 그분이 '어차피 일주일 정도는 피똥 쌀텐데..'라고 중얼거리시는 것을 똑똑히 들었다. 그리고, 셋째 날이 되던 새벽에 나는 정말 피똥을 싸는 경험을 했다.
새벽에 나는 끙끙 앓으면서도 잠깐씩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무언가 너무 아파서 잠을 깼고 말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나는 감기가 걸리면 대부분 소화기관도 조금씩 문제가 생기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려 코로나 보다도 더 독한 독감이 아닌가? 새벽의 갑작스러운 통증에 일어난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잠시 내 몸을 살폈다. 조금 지나서 나는 통증의 발원지를 찾았는데, 바로 명치 아랫부분이었다. 낮에 먹은 것도 거의 없는데 왜 갑자기 명치 바로 아랫부분이 아픈 건지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극심한 통증이 아랫배 쪽으로 밀려 내려왔다.
그렇게 나는 셋째 날 새벽에 잠을 설치며 침실부터 화장실까지의 여행을 무한히 반복했으며, 그 끝없는 여행의 결과로 내가 세 살 때에 먹었던 분유까지 아래위로 모두 다 토해내게 되었다. 이날은 연휴의 첫째 날이었다.
독감 넷째 날
내가 이 "코로나보다 더 독한 독감"이라는 2024년 최대의 적을 만나서 거의 타작을 당하고 있을 때, 한 구원의 손길이 나에게 다가왔다. 어둡고 무서운 독감 바이러스의 숲을 뚫고 여자친구가 어머님의 도시락과 함께 원정을 온 것이다. 생각해 보니 여자친구는 이미 나보다 앞서 독감과 싸워 이겨낸 경험이 있었고, 이제는 독감보다 강한 면역을 지닌 면역체였다.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바이러스의 소굴로 들어온 그녀는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쓰러져 있는 나를 끌고 나와 어머님의 웰빙 도시락을 펼쳤다.
나는 그날부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배는 아팠고, 콧물과 기침은 끊이지 않았으며, 아직 새벽에 몇 번씩 일어나서 화장실로 기어가야 했지만, 그래도 무언가 끝나지 않은 것 같이 느껴졌던 독감의 캄캄한 터널에도 조금씩 빛이 비치고 있었다. 물론, 다시 집에서 나올 수 있기까지는 며칠이 더 걸렸지만 말이다.
연휴 기간 동안에 부모님을 뵈러 가지도 못하고, 여자친구와 어디 좋은 데 놀러 가지도 못한 채로 밤새도록 끙끙 앓으면서 집에서 거의 홀로 시간을 보냈지만 나름 느낀 점이 있다면 첫째, 사람은 건강이 최고라는 것이고, 둘째, 사람의 인생 속에는 아무리 대비했다고 해도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고난과 역경도 존재하는데, 그 역경을 통하여 지금 나의 현주소를 알 수 있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는 그래도 나름 회복력이 좋다고 느꼈었는데, 조금씩 회복이 느려진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깊이 체감한 것은 썩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독감이 나의 건강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일종의 시금석의 역할을 해준 것 같아서, 가벼운(?) 질병을 한 번쯤은 겪어보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아무리 가벼운 질병이라도 애초에 경험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사람의 건강도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의 인생 전체를 두고 봤을 때도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 내가 하고 있는 일, 그리고 내가 목표로 삼고 노력하는 것이 과연 나의 인생 전체의 최종 목적의 성취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과연 나는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며 되돌아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도 이번 기회를 통하여 느꼈다.
오늘 나의 상태와 위치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내가 선택하고 행동한 것의 결과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껏 그렇게 좋은 선택을 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지난 몇 년 간의 되돌아봄을 통하여 뼈저리게 깨달았으며, 이제 나의 삶의 목적을 다시 깨우치고,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남은 분량을 후회가 아닌 행복으로 채우려고 한다. 그리고, 지난 며칠 간의 독감 환자로써의 경험을 통하여 다시 명확하게 초점을 잡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도 깃든다는 말이 있듯이, 독감 환자로써 집에서 쉬었던 지난 일주일이 나에게 다시 건강을 되찾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나의 목표를 돌아봄으로 원래 내가 추구하던 삶의 목적도 다시 확인하고, 그것을 위하여 더 나은 나 자신으로 거듭나는 결심을 하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었음을 인하여 감사한다.
여러분의 현재의 삶이 너무 지치고 힘들지 않기를 바라지만, 가끔씩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쉬면서 여러분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여러분과 저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목표를 이룰 2024년도 이제 시작이니까 말이다.
#독감
#인생의목적
#목표
#되돌아봄
Q: 사람은 아픔 뒤에 깨닫고 성숙해진다는 말이 생각나는 일주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최근 어떤 깨달음이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