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ul Feb 22. 2024

조단이를 만나다

EP 24

공항에서 데려온지 약 한 달 째의 조단이.. 꽤 많이 살이 올라있는 상태였다.

눈이 많이 온다.


일 때문에 오랜만에 서울에서 며칠을 지내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와본 서울은 여전히 친근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다만, 이곳의 사람들은 전보다 더 바쁘고 여전히 어색해 보였다.


그리고, 오늘 8시쯤에 마지막 세미나를 마치고 호텔로 향하려고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에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어? 분명히 밤 10시쯤에 눈이 온다고 했는데.. 벌써?'


따뜻한 남쪽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눈이라서; 물론, 얼마 전까지는 눈이 많이 내리는 윗동네에 살았었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꽃송이들을 잠시 올려다보고 있을 때, 사흘 간의 긴 세미나를 마쳤다는 안도감과 피곤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왜 그.. 사람이 멍해지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영어로 하면 space out(스페이스 아웃)인데, 나에게도 잠시나마 찾아온 그 “스페이스 아웃”의 순간을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즐기고 있는데, 마침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나에게 횡단보도 반대편 뒤쪽으로 보이는 골목에서 엄마 고양이 한 마리가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먹을 것을 찾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생긴 모양이 꼭 내가 전에 키웠었던 고양이와 닮아 있었다.


조단이...


조단이를 처음 만난 건 공항에서였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공항에서 잠시 앉아있었는데, 내가 앉아있던 벤치의 반대편에 바싹 마른 고양이 한 마리가 사람들 사이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가만히 고양이의 행동을 관찰해 보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 고양이가 주인으로부터 공항에 버려진 애완 고양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잠시 고민하다가 그 고양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집으로 오는 도중에 나는 먼저 동물병원에 들러서 고양이의 상태를 체크했다. 수의사 선생님은 공항에 버려진 이 고양이가 적어도 두 달간을 혼자서 이리저리 구걸을 하며 살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때의 상태는 온몸이 정말 너무나 말라있었고 목소리는 겔겔대는 것이 정말 곧 죽을 것 같은 몰골이었을 뿐만 아니라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해서 영양실조까지 걸려 있던 상태였다. 하지만, 다행하게도 특별한 병이나 질병의 증상은 없었기 때문에 빨리 수액을 맞게 하고 깔끔하게 이발을 한 후에 깨끗하게 목욕을 시켜주었다.


그리고, 이 고양이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의 이름을 따서 '조단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조단이를 데리고 집에 온 첫날, 나는 너무나 야윈 이 고양이를 위하여 생전 처음 동물병원에도 가보고, 온갖 필요한 진찰은 다 받게 한 후에 고양이 사료와 영양제, 그리고 고양이 옷과 필요한 물품 몇 가지를 구입했다. 정말 내 인생에서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통장의 잔고가 훨씬 더 줄어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속 한 켠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조단이는 당시 나의 인생에 찾아와서 나의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이 되었다.


그러나, 그 따뜻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고양이

#반려동물

#책임감

#공항

#영양실조



Q: 여러분은 혹시 공항이나 터미널에서 버려진 반려동물을 보신 적이 있나요?



이전 23화 기억나는 흑역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