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도. 다시 공항으로
9시간 등산의 효과는 굉장했다. 나는 피자 한 판을 게 눈 감추듯 뱃속에 털어 넣은 후 저녁놀 내려앉는 호숫가 둘레길을 걸었다. 가끔 멈춰 서 멍하니 호수에 번져 나가는 자홍빛 일렁임을 바라보았다.
어제도, 오늘도 문제는 개들이었다. 침을 질질 흘리며 나를 쫓아왔던 개들. 어젯밤, 노을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던 나는, 오두막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혀 다른 이유로 눈물을 쏙 뺄 뻔했다. 인적이 드문 길, 밤이면 더 날카롭게 빛나는 눈, 입가에 고인 액체 덩어리.
어제, Ayuda에 대한 대답을 듣기까지 5분이 걸렸던가. 노을이 아직 다 지지 않은 오늘, 나는 보다 상황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아픔을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귀가 거의 들리지 않으면서 맹견을 키우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분명 귀머거리였다. 아파서 그런 것인지, 개 짖는 소리에 묻혀 버린 것인지, 아니면 그저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인지.
전봇대에 걸린 전선처럼 길게 늘어져 있던 목줄. 개들은 반경 수십 미터의 자유를 부여받은 채, 사람이라도 보이면 사냥하듯 쫓아냈다. 간신히 개들을 피해 오두막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잠들 시간이었다.
잠을 청하려니 들끓는 모기가 말썽이었다. 가려워 긁으니 잠이 오질 않고, 잠을 자지 않으니 모기들은 만찬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손을 휘휘 젓다 일어나니 새벽 다섯 시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새벽 6시에 출항하는 첫 번째 페리를 타지는 못하더라도, 6시 45분 페리에는 올라야 했다. 그다음 페리는 9시. 애매하게 붕 뜬 시간을 고려하면, 몸이 피곤하더라도 두 번째 페리를 타는 것이 최선이었다.
물론 체크아웃 시간이 10시였으니 그 이후 페리를 타도 됐지만, 호스텔 주인아주머니는 주말이라 마나과로 가는 직행 버스가 없을 수도 있다며 일찍 출발할 것을 추천하셨다.
출국일의 최우선 목표는 어디까지나 ‘출국’이었다. 선착장에 내려 택시 기사들과 흥정하고, 버스 터미널이 있는 리바스까지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그 후 다시 한번 ‘치킨 버스’를 타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게다가 늦게 도착해 가장 붐비는 시간대의 치킨 버스를 타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렇게 5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5시에 일어났다.
폐를 끼치는 걸 그 무엇보다 혐오하는 성격 탓에 오늘도 일찍 일어난 모양이었고, 비몽사몽 니카라과 버스 터미널에 다다라 'Cabify'라는 앱으로 택시를 잡기 시작했다.
그런 내게 들러붙은 외국인 두 명: 수 년째 헬스장 회원권을 갱신하고 있을 것 같은 건장한 체격의 흑인 하나와 훤한 나시에 보고 싶지 않은 부분마저 보이는 백인 하나. 그 둘 역시 각자의 이유로 마나과 어딘가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뒤에서 노골적으로 힐끔대는 시선이 신경쓰여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얼마를 제시받았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들은 차 두 대 건너의 택시 기사를 가리키며, 미화 30달러가량의 1000 코르도바를 불렀다고 전해주었다. 앱에 나오는 공항까지의 요금은 250 코르도바. 둘의 목적지까지 가는 비용은 200 코르도바 정도.
그마저도 원래 1200 코르도바 부르던 걸 깎았다 하니, 그건 흥정을 빙자한 사기였다. 그 택시 기사는 공치도록 내버려 두고, 다시 뒤에 장정 둘을 데리고 터미널을 돌았다.
그런 우리에게 들러붙는 기사 하나.
세 번 멈춰야 하지만 전부 가는 길목이라는 상황을 설명하고 시간은 20분 정도 걸린다는 점을 주지 시켰더니 올라오는 손가락 여덟 개.
"오초엔또스 코르도바 오 베인떼 달러레스 " (800 코르도바, 아니면 20 달러).
고개를 강하게 휘저으며 "노. 노. 에어로푸에르토 솔로 도스씨엔또스 씬쿠엔따 코르도바." (공항까지는 250 코르도바 정도 아니야?)라고 되물으니,
기사 아저씨는 픽 웃으며 손을 내젓고는 "씨. 씨. 뀌니엔또스 꼬르도바" (500 코르도바)를 불렀고,
나는 화면을 보여주며, "노 택시. 도스 씨엔또스 알 에어로푸에르토"라고 말했다.
기사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고, "꽈뜨로 씨엔또스 씬쿠엔따 코르도바" (450 코르도바)로 금액을 조정했고,
결국 마지막으로 난 "꽈뜨로 씨엔또스 코르도바"라고 외쳤고, 기사는 몇 초쯤을 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셋이 묶여 한 택시에 올랐다.
하나는 동남아를 석 달 여행한 후 왔다고 했고, 하나는 중미를 2주째 여행 중이었다.
막무가내 여행. 돈이 없어 옷도 세 벌, 서로 누가 더 저렴한 숙소를 잡았는지로 겨루던 그들. 택시 앱 하나 안 찾아보고 무슨 돈을 아끼겠다는 건지 이해는 어려웠으나, 나로선 저렴하게 공항까지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비용은 비교적 거리가 먼 내가 200, 둘이 각 100씩 부담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렇게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잊었던 허기가 몰려왔다. 어제저녁의 피자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참이었기에 가장 저렴한 치킨 두 조각과 감자튀김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음식을 먹으려던 찰나, 내 앞에 앉아도 되냐고 묻는 여성이 있어 합석해 점심을 먹으며 스몰 톡을 나눴다.
국무부에서 일하는 그녀는 휴가를 맞아 친구들과 일주일 정도를 놀고 다시 D.C.로 돌아가는 길이라 말했다. 다음에 다시 오면 섬을 빌리는 것도 좋을 것이라며, 당시 환율로 40만 원이면 여덟 명이 묵을 수 있는 에어비앤비와 섬을 빌릴 수 있다고 얘기했는데, 떠날 때가 다가오니 모든 말이 흐리게 들려왔다.
오후 1시에서 오전 1시까지. 하루의 절반을 책을 읽고 과제를 해대며 버텼다. 그 와중에 1시 45분에 이륙할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3시가 다 되어서야 문을 닫았고, 나는 공항 기둥에 기대 쪽잠을 자고, 비행기에서도 잠을 자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플로리다에 도착하니 오전 7시. 겨울 방학 당시 4시간 경유에 데었다가 이번에는 7시간 경유를 선택했는데, 오후 4시에 비행기가 뜨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비었다.
여름은 오지도 않았는데 한여름 이불속이 생각나는 에어컨 바람에 잠을 자지도 못하고, 비싼 물가에 음식 먹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오후 1시까지 물배만 계속 채웠다.
그러다 물의 ㅁ만 생각해도 구역질이 올라오는 임계점에 다다랐고, 그제야 계산해 보니 공복은 24시간을 넘어선 상황. 결국 평점이 덜 낮은 햄버거 가게를 찾아갔다.
군대리아와 다를 바 없는 햄버거를 해치우고, 비행기에 올라 애틀랜타에 내려 전철을 타고, 조금 더 걸어 기숙사에 들어가 짐을 풀자, 바하마, WBC, 그리고 니카라과가 모두 꿈만 같았다. 그렇게 또 다른 여행의 한 장이 덧붙여졌다.
월초, 나는 페루 리마에서 절벽 끝에 걸터 앉아, 이번이 첫 배낭여행이라는 친구 하나, 그리고 자유로움을 빼다 박은 친구 하나와 노을을 바라보았다.
"내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노을은 처음 봐. 첫 배낭여행에 이런 노을이라니." 캐나다에서 트럭커로 일하는 친구가 말했다.
"여러 번 보게 될 거야. 여러 번 보는 게 목표가 될 거고." 나름 배낭여행 선배라 생각했는지 살짝 젠체하며 내가 말을 받았다.
"캘리포니아로 와. 매일 보여줄 수 있어." 지지 않겠다는 듯 다른 친구도 슬쩍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러면 너희는 어디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봤어?" 트럭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매 노을이 아름답지. 그렇지만 이 노을도 봐줄 만하네."라고 답변한 친구에 이어,
나는 "니카라과에 가면 중남미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가 있어. 티티카카 다음으로 큰 호수. 오메테페라고. 거기 섬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본 자홍빛 노을이 가장 아름다웠지. 달이 이미 뜬 어스름한 저녁이었어. 어부 하나와 아들 둘이 노을을 뒤로하고 그물을 손질하며 뭍으로 들어오고 있었는데, 검은 자갈, 일렁이는 푸른빛 물결과 번지 듯한 주홍빛, 붉은빛, 자홍빛으로 그려낸 하늘이 그리도 예뻤었지."라고 답했다.
노을은 아름다웠고, 겨울의 남미는 완벽했지만, 재작년의 봄방학 여행기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때부터 목에 걸린 앤초비 가시 같은 찜찜함을 남겼다.
나는 학기가 시작한 후 틈틈이 노트북을 열어 여행기를 써내려 갔고, 그 결과물이 덧붙여진 글 두 편, 콘셉시온 산 등정기와 택시 흥정을 비롯한 귀국 에피소드다.
2년 동안 나는 많이도 돌아다녀, 대부분의 기억은 이제 사진을 보고서야 떠올리는 수준이고,
보드 위에 올라 물을 가를 수 있게 되어 다음번의 니카라과는 레온에서의 샌드서핑을 비롯해 각종 서핑으로 채워지겠지만,
오타니도 그 뒤로 LA에서, 애틀랜타에서 두 번 더 보았고, 그 사이 롯데는 다시 두 번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지만,
바하마에서의 물 없는 2시간과 물 맞던 20분은 페루에서의 화상 등으로 이제는 그저 지나간 일 중 하나로 남았지만,
여전히 오메테페 섬의 노을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던 나,
트라웃을 슬라이더로 돌려세우는 오타니를 보고 일본인들과 환호하며 껴안던 나,
2시간 동안 샐러드를 기다리며 욕이란 욕은 다 구시렁대던 나는 모두 기억에 남아,
멀 수는 있어도 반드시 다시 니카라과와 WBC와 바하마를 찾을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