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다시 손가락을 지문인식기에 밀어 넣었다. 삐삐삐. 역시 인식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또 누군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아이 둘을 연달아 낳고 키우면서 가장 먼저 변한 건 내 손이었다. 여자는 손과 목에서 나이를 읽을 수 있다고 누가 말했나? 정신이 쏙 빠지는 연년생 육아로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결과, 지문이 사라졌다. 누가 보면 엄청나게 대단한 헌신적인 육아를 했겠네 하겠지만 원인은 단 하나, 손 씻기였다. 팬데믹이 오고 나서야 모두들 손 씻기에 집중했지만 팬데믹 이전에 손 씻기와 손소독티슈를 놓지 않은 트렌드리더가 바로 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왜 그랬을까 싶지만 당시에는 아기들을 돌보는데 내 손이 깨끗한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보이지 않는 세균이 아기들에게 갈까 봐.
"엄마, 따가워!"
아이들 몸에 로션을 발라줄 때면 내 까슬까슬한 손이 미안했다. 양손에 아이들 손을 잡고 길을 걸어 다닐 때도 거친 손이 미안했고, 귀여운 얼굴을 어루만지고 싶을 때도 한 번을 더 참았다. 무엇보다 내 거친 손으로 인한 불편함이 아이들에게 닿는 것이 싫었다. 언젠가 눈곱이 있길래 떼주려고 했다가 엄마 손 때문에 너무 아프다며 아이가 울었다. 속으로 나도 같이 울었다.
손바닥을 아래로 두 손을 쫙 펴면 관절 부분의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밭일하시는 우리 외할머니 손이 이랬던 것 같은데. 그 손을 뒤집어 손가락 아래부터 위로 쭈욱 보자면 세로 주름이 졌고, 피아노 건반이 닿는 손가락의 끝부분은 갈라져있다. 병원에도 가보고 온갖 연고를 다 발라봤다. 의사 선생님의 해결책은 손에 물이 절대 안 닿게 하는 것이었고 맘카페의 해결책은 깊게 갈라진 상처에는 우르고(urgo)만 한 게 없다는 것인데 내 결론은 후자 쪽이었다. 우르고 만세.
동사무소 무인민원발급기에서 등본을 떼면 수수료가 없단다. 등록된 지문이 일치하지 않기는커녕, 지문 자체가 인식되지 않는다. 비치된 물티슈로 손가락을 벅벅 닦아봐도 화면 속 검정 부분이 짙어지지 않는다. 번호표를 뽑고 하염없이 기다리다 수수료를 내고 등본을 뗀다. 그뿐인가. 휴대폰 등 전자기기와 금융, 보안 관련 지문등록 역시 어림없다. 카페나 식당에 있는 키오스크 터치가 되는 것에 감사할 따름.
복직 후 첫 출근에 지문인식이 안되어 출입문이 열리지 않는다. 인사팀에 가서 다시 지문등록을 했다. 담당자는 열손가락을 다 등록해 주었다.
"그래도 안되면 어쩌죠? 저 같은 사례가 있었나요?"
"열손가락 중 한 개는 되겠죠."
아니, 난 안되거든.
전화를 걸자 담당자는 난처한 듯 재차 확인했지만 내 손가락들은 단호했다. 마치 이깟 인식기에 내가 묻어나겠냐며 도도하게 물티슈 마저 흡수해 버렸다. 담당자는 마지못해 사원증을 등록해 주었다. 그 뒤로 언제나 꼭 사원증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혹자는 지문 찍는 것도 찝찝하다고 사원증으로 대체되어 좋겠다고 하지만 덩렁깜빡이인 나는 늘 불안하다.
오늘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다시 가방을 샅샅이 뒤져본다. 사원증을 어디에 두었더라. 모르겠다. 하는 수 없다. 또 누군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