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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May 20. 2024

33. 로키의 말싸움 : 여섯 - 내가 돌아왔다.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로키, 컴백, 관심종자, 악플러

#. 내가 돌아왔다.


 로키는 연회가 열리고 있는 넓은 홀로 들어갔다. 한창 서로의 무용담을 나누던 신들은 로키가 돌아온 것을 보고는 모두가 인상을 찌푸렸다. 애초에 말을 들을 로키가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사달(사고나 탈)'을 내어 놓고도 뻔뻔하게 되돌아온 로키가 달가울 리 없었다.


 [나 '로프트(Loptr : 로키의 또 다른 이름)', 긴 여행을 하다보니 목이 좀 말라서 말이지. 거기 아사 신들에게 그 빛나는 벌꿀술을 한 모금 나누어줄 것을 간청하러 왔소.]


 에기르도, 신들도 그리고 요정들까지도 모두 불쾌한 눈으로 말없이 로키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로키가 고개를 삐딱하게 돌리며 말했다.


 [신들이여~ 왜 그렇게 조용한거요? 갑자기 꿀먹은 벙어리들이 되었구료. 식탁에 내 자리를 내어주던지, 아니면 쫓아내던지 하시오.]


 그러자 잠자코 있던 신들 중에서 한 신이 조용하게 대답했다. 오딘의 아들인 시의 신, 브라기였다.


 [우리의 식탁에 당신의 자리는 없소. 우린 결코 그 자리를 만들지 않을꺼요. 우리는 지금 이 연회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잘 알고 있으니.]


 로키는 흘낏 브라기를 보더니, 시선을 오딘에게로 옮겼다. 그는 오딘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오딘! 우리가 예전에 서로 피를 나누었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때 뭐라고 했었는지 기억하십니까? 당신과 나, 우리 둘 모두에게 술을 수지 않는다면, 당신도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했던 때를 말이오.]


 오딘과 로키가 피를 나누었다는 말은 아주 오래 전 일이었다. 세상을 만든 오딘이 새로운 지식을 찾아 여행을 하던 때였다. 여행 중에 오딘은 로키를 만나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오딘은 로키의 재기발랄함이 마음에 들었고, 로키도 신들의 왕인 오딘과 함께하는 것이 즐거웠다. 오딘과 로키는 그만큼 서로 죽이 잘 맞았다. 결국 둘은 서로의 피를 술에 떨어뜨린 뒤, 그 술을 나누어 마시며 의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그렇게 로키는 아사 신족의 일원이 되어 아스가르드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아주 오래 전 일이라고 해도 오딘이 로키의 말을 못알아들을리 없었다. 오딘은 말석에 앉아있던 아들, 비다르를 보며 말했다.


 [비다르, 늑대의 아비에게 자리를 내어주거라. 넌 아비의 곁으로 오렴. 마침 자리도 넓으니. 에기르, 로키에게 술 한 잔 내어주시겠소? 그래야 저 입에서 더이상 모욕적인 말이 나오지 않을테니.]


 로키가 다시 무언가 일을 내기 전에 적당히 달래자는 이야기였기에 에기르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다르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의 자리에는 로키를 위한 음식과 술이 다시 마련되었다. 로키가 자리에 앉자, 비다르는 그에게 술을 한잔 따라 준 뒤, 투덜거리면서 아버지인 오딘의 곁으로 가 자리에 앉았다. 비다르에게 술을 받은 로키가 술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아사 신들에게 찬미를! '아쉬뉴르(Asyniur : 아사 신족 여신들)'에게도 찬미를! 이 모든 거룩한 신들에게 찬미를! 아, 저어기~ 긴 의자에 앉아있는 브라기는 빼고.]


 로키의 건배사를 들은 브라기는 불쾌했다. 그러나 아버지인 오딘이 눈짓을 보내자, 가만히 한숨을 쉬며 말했다.


 [로키, 그대의 악의를 아사 신들에게 향하지 마시오. 신들을 자극하지 않는다면, 내 당신에게 좋은 말 한필과 좋은 칼 한자루를 주겠소. 잘 세공된 반지도 하나 줄터이니 그만합시다.]


 브라기는 로키를 자극하지 말고 잘 달래라는 오딘의 뜻을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키는 이런 브라기의 사과를 거부했다.


- 브라기를 비난하는 로키, W.G.콜린우드 그림(1908. 출처:https://sv.wikipedia.org/wiki/Eldir)


 [흥! 브라기, 넌 반지도 말도 항상 부족하지 않나? 늘 싸울 때면 신들과 요정들의 가장 뒤쪽에 숨어있는 놈이 뭐? 좋은 칼? 넌 소심해서 화살촉 하나도 제대로 못던지잖아?]

 [로키! 지금 여기가 에기르의 궁전이라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시오. 이곳이 밖이었다면, 내 당신의 머리를 내 손에 쥐고, 당신의 거짓말을 응징했을 테니까!]


 평소에 조용하고 얌전한 브라기였지만, 이번만큼은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냈다. 아버지를 보아 마음에도 없는 정중한 사과를 했건만, 로키가 자신을 겁장이라고 조롱했으니 브라기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로키는 그런 브라기를 더욱 조롱했다.


 [응, 방구석 전사. 네 녀석은 의자에서만 용감하지. 그래서 뭐? 계집도 그렇게 소심하지는 않아. 화가 난다면, 싸워야지. 용감한 사람은 생각으로 싸우지 않아.]


 로키의 조롱을 들은 브라기는 화가 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곁에 있던 그의 아내, 청춘의 여신 '이둔'이 황급히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이둔이 고개를 저으며 브라기에게 말했다.


 [여보, 참아요! 아이들을 생각해서도, 다른 형제들을 생각해서두요. 여기는 에기르의 궁전이니 예의있게 행동하세요.]


 아내까지 말리자, 브라기는 화를 누그러뜨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본 로키가 이번에는 이둔에게 비아냥거렸다.


 [이둔.. 넌 닥치고 있어! 네가 널 모르니? 정성들여 씻은 너의 팔로 네 형제를 죽인 자를 끌어앉은게 너, 이둔이 아니던가? 그 이후.. 이 세상 모든 여자들 중에 네가 가장 남자를 밝힌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

 [로키! 너무하군요! 대체 내가 에기르의 궁전에서 왜 당신에게 이런 말을 들어야 하죠? 난 지금 브라기를 달래고 있다구요! 난 당신들이 서로 싸우길 원하지 않아서 이러는거예요!]


 이둔이 로키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녀의 하얀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는데, 평소 그녀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경우는 없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게뷴이 참지 못하고 나서며 말했다.


 [그만! 여기까지. 우리는 모두 아스가르드에 사는 이웃이예요. 서로를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답니다. 로프트, 당신이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군요. 이러다가는 당신은 발을 둘 곳 조차 없을 겁니다.]

 [닥쳐~ 게뷴! 네가 현명하다고 착각하나본데.. 네가 그 잘난 머리로 자알~ 생긴 애송이를 어떻게 타락시켰는지 모를 것 같아? 왜 있잖아? 그 녀석. 네가 목걸이를 준 놈. 너의 팔로는 그 놈의 목을 끌어안고, 네 허벅지로는 그 놈의 몸뚱이를 감싸안던 모습을 내가 다 봤다네~]


 로키는 게뷴의 은밀한 연애사까지 꺼내어 그녀를 비난했다. 험악한 분위기를 바꿔보려던 게뷴이었지만, 오히려 로키에게 비난을 받고 말았다. 게뷴도 화를 참지 못했고, 그녀의 얼굴은 이둔보다도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오딘은 쾅하는 소리를 내며 들고 있던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모든 이의 시선이 오딘에게로 쏠렸다.


 [로키, 그만해라. 게뷴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다니. 로키, 네가 너의 똑똑함을 잃었나보구나. 그녀는 모든 이들의 운명을 내가 아는 만큼 알고 있는 여신이네. 그러니 그녀를 더 조롱하지 말게.]


 모든 신들이 오딘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뷴은 오딘의 말처럼 현명하고, 자애로운 여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키는 오딘의 말에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 로키는 의외라는 듯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오딘에게 말했다.


 [헤에? 그 무슨 헛소리를? 오딘~ 형님~ 형님은 조용히나 계셔. 그런 건(다툼을 조율하는 일) 가서 인간들에게나 하라고. 뭐, 늘 오락가락하지만 말이지. 당신은 승리하지 말았아어야 하는 자들에게 승리를 주었잖소? 그 겁. 쟁. 이. 들에게.]


 로키의 말에 오딘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내가 승리하지 말았어야 하는 자들에게 승리를 주었다고? 그럴지도 모르지. 아닐지도 모르고. 허나 그렇다 해도 너만큼 부끄럽지는 않다. 너는 무엇을 했지? 저들이 싸우는 동안 너는 그 아래 땅에서 허약한 암소와 여자로 변신해서 여덟 번의 겨울을 보내며 아이를 낳고 지냈지. 그건 너무나도 부끄러운 짓이 아니던가? 그것이 너의 천박한 본성일테니까.]


 그러자 로키가 반박했다.


 [그게 뭐? 당신이야 말로 사돈 남말하지 말라고. 난 당신이 '발라(Wala/vala/Volva :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신비한 마법이나 마법사, 주로 여성)'로 변장해서 '삼소(Samso : 미드가르드의 지역 이름, 현재의 덴마크)'에 가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다오. 천하의 오딘이 마녀의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가던 그 부끄러운 모습을 말이지.]


 로키는 의자에 앉아 양팔을 가슴에 얹고 마치 술집 작부처럼 몸을 흔들었다. 로키는 비음을 섞어 흥흥 거리는 소리까지 덧붙였다. 신들은 경악하며 오딘을 바라보았다. 이는 너무나도 모욕적인 행동이었기에, 오딘이 화를 참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딘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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