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신화, 북유럽신화이야기, 토르, 로키, 로카센나
#. 천둥신과 로키
토르는 쿵쿵대는 발걸음 소리를 내며 연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콧김을 내뿜으며 걸어왔는데, 그대로 로키를 지나쳐 자신의 아내에게로 향했다. 시프는 다가오는 토르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남편이 연회장으로 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로키를 혼내줄 수 있는 것은 토르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고, 연회장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며 남편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끌었다. 시프는 자신의 술잔을 가져와 가득 시원한 미드를 따라 갈증이 났을 남편에게 건넸다. 토르는 시프가 건넨 술잔을 시원하게 비우고는 긴 숨을 내뱉었다.
[후우~]
아내를 향해 환하게 웃어보인 토르였지만, 이내 미간을 찡그리며 로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닥쳐, 닥쳐하던데.. 닥쳐야 하는 건 너지! 이 불결한 놈아! 나의 위대한 묠니르가 네 놈의 말장난을 끝낼테니까. 네 놈의 머리를 목에서 떼어내주마!]
로키는 대담하게도 크게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그의 얼굴을 붉게 물들어 있었는데, 그것이 시프에 대한 추악한 마음이 남았던 것인지, 토르의 등장으로 인해 당황한 것인지는 알수 없었다.
[으짜자자~ 이야~ '땅의 아들내미(토르는 대지의 여신 표르긴의 아들임)'가 이제야 왔구만. 우리 토르님이 왜 그렇게 안달이 나셨을까? 날 뭐 어쩌겠다고? 그건 네 아버지를 집어삼킬 늑대와 싸울 때나 그렇게 하시게.]
[하, 내가 닥치라고 하지 않았나? 이 불결한 놈. 나의 위대한 묠니르가 네 놈의 말장난을 끝내겠다고 했을텐데? 그런다음 내가 네 놈의 몸뚱이를 저 동쪽으로 집어던져주마. 아무도 네 놈을 보지 못할꺼야.]
토르가 로키를 향해 몸을 돌리며 대답했다. 토르는 양쪽 어깨를 움직이며 풀기 시작했는데, 그의 근육에서 들리는 소리가 마치 땅이 갈라지는 것 같았다. 로키도 지지않고 양쪽 어깨와 목어름을 풀었다. 그러다 로키는 손가락을 튕기더니 예의 그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 동쪽이라고 하니 생각나는게 있구먼. 전에 너와 동쪽 지방을 여행했었지. 그때 일에 대해서 너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말도 안했더라? 하긴.. 그럴수 밖에 없겠지. 천하의 토르가 고작 거인의 장갑 속에서 몸을 구부리고 숨어있었으니까! 에인헤리르(Einherir: 에인헤랴르의 단수형)! 그때의 넌 토르라고 볼수 없었지~롱~!]
[흥! 내가 닥치라고 했을텐데? 이 불결한 놈! 나의 위대한 묠니르가 네 놈의 말장난을 끝내주마. 나 '흐룽그니르(Hrungnir : 싸움꾼, 굴팍시의 전 주인으로 토르에게 죽음)'의 업보가 이 손으로 널 두들겨서 네 놈의 모든 뼈를 구석구석 부스러뜨릴테니.]
토르가 입술을 삐죽이며 묠니르를 들어보였고, 로키가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툭하면 망치를 들고 위협을 하는데, 네가 아무리 그걸 들고 위협해도 난 오래 살아남을게야. 넌 '스크리미르(Skrymir : 의미불명)'의 무리도 힘겨워했지만. 넌 음식도 구하지 못해서, 다친 곳 없이도 굶어 죽을뻔하지 않았던가?(토르의 우트가르드 여행기 참조 https://brunch.co.kr/@e0a94227680644b/223)]
[하! 진짜 좀 닥쳐라! 이 불결한 놈! 나의 위대한 묠니르가 네 놈의 말장난을 끝내주겠다고 했잖아? 나 흐룽그니르의 업보가 지금 너를 헬로, 그 죽음의 창살 아래로 던져주마!]
토르는 묠니르를 빙빙 돌리며 로키를 향해 다가갔다. 로키는 난감한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앞서와는 달리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잠깐만~ 난 지금 아사 신들이랑 대. 화. 중이었어~ 내가 에시르의 아들들 앞에서 말하는 중이었다고. 그런데 이러는 건 좀 아니지 않아? 넌 꼭 말로 안되면 주먹을 쓰더라? 그러니 어쩔수 없이 나는 나가겠어.]
물론 토르가 이런 말을 들을리 없었다. 그는 다시금 어깨를 풀며 로키를 향해 다가갔다. 로키는 계속 뒷걸음을 치다가 연회장의 창문이 있는 벽까지 내몰렸다. 난감한 미소를 짓던 로키는 흘낏 창문을 보았다. 토르가 묠니르를 내리치는 것이 빠를지, 자신이 저 창문으로 달아나는 것이 빠를지를 계산하는 것 같았다. 토르도 그런 로키의 생각을 알아챘는지, 피식거리며 웃었다. 토르의 망치는 벼락보다도 빠르기에, 로키를 놓칠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로키는 손을 들어 에기르를 가르키며 소리쳤다.
[에기르!]
갑작스러운 로키의 외침에 연회장의 모든 이들은 물론 토르까지 에기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찰나의 순간을 로키는 결코 놓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작은 불꽃으로 변해 연회장의 창 밖으로 사라졌다. 토르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로키는 몸을 빼낸 뒤였다.
[하하! 에기르! 넌 지금까지 맥주를 만들었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이딴 연회는 열지도 못하게 될꺼야! 여기있는 네가 가진 모든 것들도 불꽃의 장난에 타들어가겠지! 너의 등도 불로 그을려질꺼라고!]
로키는 달아나면서도 에기르를 향해 악담을 퍼부었다. 토르는 안타까움에 발을 굴렀다.
[로키! 너 이 자식!!!]
오랫동안 에기르의 저택 주변으로 로키의 웃음소리가 맴돌았다. 토르와 연회장에 모인 신들은 안타까움의 탄식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실망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지금 토르가 로키를 쫓아간다고 해도 그를 붙잡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일로 신들은 의외로 얻은 것이 있다. 그중 가장 큰 수확은 로키가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죄(발드르를 죽임)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이제 신들은 그를 붙잡는데 온 힘을 기울일 것이다. 또한, 온 세상 그 누구도 로키를 받아주거나 숨겨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온 신들과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이기에. 다른 이를 잘 속이는 자는 그만큼 다른 이를 잘 의심하는 법이다. 그러니 로키로서는 도망가서 숨을수 있는 곳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특히,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있는 곳으로는 가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로키를 붙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에 비해 이 일로 로키는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다. 그 스스로 공공의 적이라는 것을 인정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