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어른이날
어린이에게만 어린이날이 있는 건 아니다.
오늘은 세찬 비가 내리는 어린이날이다.
주말까지 마무리해서 보내야 하는 일로 업무용 노트북을 챙겨 왔고, 책상에 앉아 일을 하다가 잠시 쉬고 있다.
일이 아니더라도 아내와 딸아이는 친구들 모임이 우선이라 어차피 함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회사에서의 어린이날, 요즘 신조어로 무두절이란다. (없을 무, 머리 두)
회사에서 상사가 없는 날로 일반 직원들끼리 편하게 업무 하는 날이다.
오랜 기간 회사 생활을 했어도 이런 날은 유난히 맘이 편하다^^
상사들이 떼를 지어 워크숍이나 출장을 가는 날이면 왠지 모르게 부서에는 에너지가 넘친다.
예정된 회의가 없어지거나 업무량에서 현저히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닌데, 일도 더 잘되는 거 같고, 분위기도
한결 부드럽고 좋다. 어차피 일은 시키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하니까...
업무 시간 내내 마음도 편하고 동료들과의 티타임 시간도 더 화기애애해진다.
신입들은 그들대로 연차가 있는 선배들도 그들 나름 마음이 편한 그런 날이다.
역시 조직화된 사람이 문제구나 싶다.
회사에선 눈치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강하게 작동하는 모양이다.
계획된 회사 어린이날도 좋은데, 예정 없이 발생하는 어린이날은 깜짝 선물 같아 더 좋다.
근무 분위기도 좋고, 요즘 같이 산책하기 좋은 시기엔 북적이는 사내 식당을 벗어나 기분 좋게 외식을 간다.
그리고 손에 음료 하나씩 테이크 아웃하여 당당히 사무실로 여유 있게 걸어 들어간다.
이런 날 휴가 간 사람은 본인만 모르는 왠지 모를 의문의 패배자가 된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꽤나 싫어했던 팀장과는 가급적 휴가가 겹쳐지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던 거 같다.
그래야만 더 오래 안 볼 수 있었으니까..
머리 두..
한자로 우두머리인데, 그런 상사가 없는 날이 좋은 이유는 평소에 그가 리더가 아닌 우두머리였을 가능성이 높다. 함께 일하는 상사를 우두머리로 표현하는 것에 약간 미안한 생각이 들긴 하나 현실이 그렇다.
같이 일하는 조직에서 우두머리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직장에 적지 않으니 "무두절"이라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말할게"가 아닌 "우리 얘기해 보자" 이런 말들... 회사에서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아무리 회사를 오래 다녀도 이해가 되지 않는 영역이다.
날도 좋은 요즘인데, 회사 어린이날이 자주, 더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