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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로 Aug 30. 2023

08. Ruling your world

'나의 질문' 안희경 작가 웨비나 후기

Prologue : 시나브로

글을 쓰다 보니 더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글은 쉽게 써지지 않고 생각한 것조차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다는 답답함에 갇혀있을 때 '나의 질문'이라는 책을 만났다. 한동안 이 책은 나에게 보물과 같았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아쉬워 천천히 음미하며 아껴 읽었고, 부끄럽지만 식탁에 올려놓은 이 책에 남편이 둘째 이유식을 먹이다 쌀미음을 떨어뜨려 표지에 얼룩이 남았는데 서로 니 탓 내 탓하다 커진 게 미국에서의 첫 부부싸움이었다. 그만큼 소중했다. 깊이 있는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면서도 꼰대력은 없는 솔직하고 세련된 에세이라니! 현재 에세이를 연재하고 계시는 작가님은 몇 년 전까지도 글 잘 쓰는 약이 있다면 먹고 싶은 마음이셨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시나브로'의 시간이 필요하고, 시나브로의 시간을 스스로 너무 짧게 잡으면 조급함이 시작된다는 말씀에 얕았던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나는 경제적으로도 커리어로도 빨리 성공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일이든 적어도 3년, 정말로 내가 무언가 되어있으려면 10년! 시간을 길게 보자고 하셨는데 이번 웨비나를 들으며 찬찬히 스며들며 무언가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봄날 아지랑이'같이 피어올랐다.


 마이너리티가 준 선물

 2002년에 미국에 오신 안희경 작가님은 처음엔 미국의 도서관과 내 집 앞마당 같은 공원이 좋았다고 하셨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여러 사정에 놓인 이들을 세심하게 살필 수 있게 된 '마이너리티 감성'이 이주 20년을 통해 받은 값진 선물이라 하셨다. 20대 때 방송국에서 인정받으며 일하다 이주와 결혼을 통해 '내가 별 볼 일 없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현실을 마주하셨을 때의 단절감은 얼마나 아픈 멍울이셨을까. 감히 짐작해 본다. 나의 20대는 남녀차별 따위 문제 되지 않는다며 자신감 넘쳤고 결혼 후에도 나의 삶은 바뀐 게 없고 오히려 편하다며 이야기하고 다녔다. 하지만 아이 둘 출산 후에는 모든 건마다 제약이었고 자존감은 서서히 낮아졌다. 미국에 와서는 언어소통이 힘들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소외시켰다. 이번 웨비나에 참여한 분들은 사는 곳도 처한 환경도 각기 달랐지만 해외이주여성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작가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Ruling your world 당신의 마음을 다스려라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마음속 그리고 관계 안에서 살고 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부터'를 강조하신 작가님은 내 마음에 점차 가까워지는 조율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하셨다. 미국 이주를 위해 배우자 비자를 신청하셨던 시점부터 출산, 아이와 함께 서점을 다니다 연결된 번역 일, 세계 석학들의 인터뷰까지 담담하게 풀어주시는 작가님의 인생 이야기에 푹 빠져 조금 더 길게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졌다. 내 마음과 인생을 내가 끌고 나간다는 것, 이 당연한 이치가 왜 이렇게 쉽지가 않은 것일까? 변화는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마음에 집중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낮은 일부터 찾아 하기 시작해 보자. 오늘 나의 행동이 내일 살아갈 나의 세상을 만든다.



들으러 간다

1시간 반이 훌쩍 넘는 긴 시간 동안 맞춤형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우리의 질문에 담긴 고민의 시간과 무게를 헤아려 주시는 듯 정성스러운 답변을 해주셨는데, 그중 몇 가지 질문과 작가님의 답변을 짧게 공유해 본다.


질문 1) 아들을 키우고 있어요. 동양인이자 남성으로 올바른 정체성을 갖도록 어떻게 교육하면 좋을까요?

 : 함께 식사하는 것과 자연에서 노는 것. 워킹맘으로 함께하는 식사가 어려운 경우에는 나름의 루틴을 아이와 갖는 것이 중요하다.


질문 2) 미국과 한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도 완전히 소속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다시 한국에 돌아갈 계획이 있으신가요?

 :  관계 안에서 서로 간의 뜻을 조율해 나가면 된다. 조율이 힘들 땐 '내 탓이오'라는 선택이 관계의 역학을 멈출 수 있다. 그리고 다시금 관계를 맺어나가자. 한 곳에 평생 머무를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기에 다양한 일거리를 만들어 왔다. 아직 많은 것을 하고 싶다.


질문 3) 회사에서 시스템을 변화하거나 사람들을 움직이려 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변화에 대해 회의적이라 사회적 이슈에도 점차 관심이 줄어듭니다.

: 개개인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잇는 맥락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이지 않을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본(심리, 역사 등)을 익히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인간에게 기본은 마음이다. 역사, 철학, 심리, 예술 등 각 분야별 책을 30권씩 읽어보자.


삶과 삶이 만나다

‘나의 질문' 책에서 인터뷰는 삶과 삶의 만남이라는 문장이 좋았다. 웨비나를 들으며 품었던 질문을 하고 작가님의 현답을 듣고 있자니 내가 꼭 인터뷰어가 된 것 같았다.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상대방에게 집중하며 관계 맺는 우리의 일상도 인터뷰 아닐까. 마지막으로 마음속에 맴돌고 있는 책의 한 구절을 공유하고자 한다


'산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나는 '견디는 것'과 혼돈했다. 견디는 것에 들어있는 '작위적인 힘'을 인지하기 전이다. 산다는 것은 이런저런 상황을 살아가는 것이다. 거기에 '잘' 또는 '애써'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 삶은 견뎌야 하는 것이 되고 만다. 마치 물속에서 물을 찾으려 애쓰는 물고기처럼, 나는 숨을 쉬고 있으면서 숨을 쉬고자 애썼고, 시원히 터지는 숨을 찾으려고 목구멍을 조이며 숨을 참았다. 스스로 호흡하고 있는 내 몸을 잊은 채. 작위 없는 삶 속에 기쁨과 슬픔, 살맛이 들락거리는 것을 언제쯤 실컷 누리게 될까? 이 또한 찾을 필요 없는 것을 찾고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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