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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답사 - 아빠 편

답사 여행 - 어느 여름 왕릉 이야기

by 젤로

“오늘은 영월로 가자”

조선 6대 임금의 능을 찾아 나선다. 당시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에 고성능카메라 장착이 안되었던 시절이라 니콘 큰 카메라에 필름 두 통을 챙겼다. 내비게이션 이란 것도 없었기에 지도와 필기도구 그리고 약간의 간식까지 준비하고 90년대 후반 뜨거운 여름, 임의 과제 수행을 위해 또 답사 여정을 나섰다.


그해 여름방학은 정말 특별했다. 당시 큰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기계적인 교과서 학습용 방학 숙제대신 임의 과제라 하여 주제도 본인이 정하고 과제수행 과정도 잘 정리해서 개학할 때 제출하라는 방학과제를 제시했다. 초등 3, 4학년이 혼자 주제를 정하고 연구하고 그 과정을 정리해서 보고서를 만들어 보라고 하는데 그건 사실 부모가 함께 한 가지 주제를 정해 교육적 활동을 해보라는 거의 부모 과제 수준이었다. 며칠 간의 주제 고민 후, ‘조선왕릉 답사’라는 거창한, 정말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과제를 선정한 것이었다. 대표적인 한두 곳이 아닌 26대까지 조선왕릉전체를 돌아보겠다는 계획이었다. 그것도 한 달 안에.


우선 준비가 필요했다. 자료를 통해 왕릉이 어디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효과적으로 다니려면 어디부터 순서로 대로 찾아봐야 하는지 지도를 펼쳐서 분석했다. 보고서 작성을 위해 답사에 필요한 준비물과 착안점은 무엇인지도 꼼꼼하게 살폈다. 아이는 사회와 시대가 허락하는 만큼 그리고 부모가 애쓰는 만큼 잘 성장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좀 더 능력 있는 사람으로 잘 키우고 싶다는 욕심은 부모라면 당연히 가지는 소망이고.

게다가 또 자기 자식은 꽤 똑똑하게 잘 클 거라는 거의 모든 부모가 갖는 막연한 자신감까지 더해지면 이런 거창한 프로젝트를 세우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공부도 하고 가족여행도 하고 맛있는 것도 오며 가며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며 세운 계획이었다. 이 답사여행이 짧은 기간에 수행하긴 벅차고 아이가 해야 하는 보고서 작성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조선 왕릉은 서울과 경기도 여기저기에 분포되어 있고 그리고 강원도에 한 곳 북한에 두 곳이 있다.

처음으로 답사했던 곳은 동구릉이었다. 조선 건국한 1대 왕릉을 찾아가는 의미도 있고 7분의 왕릉이 같이 있어 함께 살펴보기 좋은 점이 있어서였다. 태조, 문종, 선조, 효종, 현종, 영조, 익종의 왕릉을 돌아보며 전체적인 능의 구조를 살피고 가까이 가서 문인석과 무인석, 봉분 주변을 지키는 동물 석상을 살피게 하며 하나하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느낌은 어떤지 노트에 기록하게 했다. 언니 과제 수행에 따라온 동생은 엄청 걷는 거리도 많고 날도 더운데 잘 따라와 기특했다. 가족과 함께 있으면 그저 행복해할 나이이기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꽤 힘든 답사 여정을 잘 따라왔던 동생이 기특하다. 당사자인 큰 아이가 노트와 연필을 들고 땀을 흘리며 진지하게 설명을 받아 적고 진지하게 고적 답사를 하는 모습은 대견했다. 장소마다 답사한 능을 배경으로 아이 사진을 넣어 답사 자료에 남도록 했다.


강원도 영월 가는 길은 답사하면서 처음 느끼는 여행 분위기였다. 수도권 도심의 왕릉을 다니던 때와는 달리 여행 가는 기분으로 출발했다. 한여름 녹색으로 뒤덮인 자연을 따라 단종의 능인 장릉을 찾아갔다. 나도 책에서 단종애사를 읽으며 쓰라린 역사는 알았지만 능을 찾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단종은 세종대왕의 장남 문종의 아들이니 세종의 왕세손이다. 금수저를 넘어 황금수저였던 그는 아버지 문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12살에 왕좌에 올랐고 그 후 3년 후 숙부 세조가 정권을 잡으며 탄핵되어 지금 능이 있는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죽임을 당해 이곳 장릉에 묻히게 된 왕이다. 단종의 능은 며칠 전 다녀왔던 왕릉들과 너무도 달랐다. 아이들에게 간단하게 역사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전에 본 왕릉들과 비교하여 볼 수 있게 하였다. 능역이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홍살문도 없고 제를 지내는 정자각도 없었다. 주변에 울창한 소나무숲도 없었고 능으로 왕들이 다니는 길인 어로도 없었다. 맨 언덕길을 30여 미터 걸어 올라가니 주변 지킴이 석상도 잘 갖추어지지 않은 매우 왜소 해보이는 봉분만 쓸쓸히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치나 권력이 비정한 싸움터이고 힘이 지배한다는 역사를 그때 아이들이 이해는 했을까? 힘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사회를 아이들이 나중에라도 느끼게 될까?

다른 왕릉답사에서 못 느꼈던 감정을 담고 능 아래로 내려와 바로 밑으로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땀을 식힌 후 답사여행의 꽃 강원도 별미를 맛보았다. 칡메밀국수. 시장하기도 했지만 맛도 일품이었다.


서울의 선릉과 헌인릉, 경기도의 동구릉 광릉 여주의 세종대왕릉까지 한 달 동안 조선왕릉 답사를 마치고 나서 어떻게 보고서를 쓸 것인가를 아이와 함께 궁리하였다. 당시 90년대 후반은 디지털 시대도 아니고 자료영상을 편집하는 것도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라 찍어온 사진필름을 사진관에서 다 인화하고 왕별로 분류했다. 그리고 보고서 양식을 만들었다. B4 큰 바인더를 구입하고 안에 들어갈 양식을 만들었다. 왕명, 재위기간, 능멸을 적는 일정한 틀을 만들고 구조물 사진에 특징과 연관된 특별한 역사적 사건, 시대별 차이점, 느낀 점 등을 적게 했다. 사진을 첨부하며 능마다 하나하나 보고서의 챕터를 만들게 했다. 물론 기록은 아이손으로 한 자 한 자 직접 쓰게 하였다. 그리고 바인더 앞에 주제명 소제목 아이 초등하고 학년 반 이름을 쓰고, 넘긴 첫 장엔 속표지 목차까지 챙겨 넣었다. 그렇게 해서 개학을 코앞에 두고 뜨거웠던 여름 보다 더 치열하게 다닌 방학 임의 과제 < 조선왕릉 답사 >는 완성되었다.




아이가 학교에 과제를 제출하지 2주 정도 지난 시점 학교에서 좋은 소식이 왔다. 교내에서 임의과제 최우수상으로 선정되었다고 상장을 받아왔다. 아이의 답사보고서는 교내 방학과제에 전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 답사보고서는 시교육청 임의과제 발표대회에서 전체 최우수 대상으로 선정되어 아이는 물론 학교도 표창받았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한여름의 땀과 시간이 시작되는 가을바람처럼 상쾌하게 보답되던 성취의 기쁨이 있었다.

교육이란, 아이를 위한 부모의 역할이란,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주면 건축장비들과 공사장 인부들의 과정마다의 노력으로 건물이 완성되듯 한 아이는 한 단계 한 단계 스스로의 길을 갈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당시 단순히 소풍장소나 공원으로 여기던 곳, 90년대 후반 어린 자녀들과 역사 공부와 함께 답사했던 그곳이 그로부터 10년 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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