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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 - 아빠 편

교육을 다시 생각하다.

by 젤로

큰 아이가 고등학교 다니던 어느 날 집사람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큰 애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학교 정규 일과가 끝나도 밤 11시 12시까지 자율학습에 당시 당연시 여기던 선생님의 강압적 교육방식까지. 입시 공부, 성적경쟁 스트레스까지 사춘기 여자 아이가 견디기 쉽지 않았을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의 첫 반응은 "그래 쉴 수도 있지, 그래도 며칠 생각해 보자."였다. 며칠 동안 많은 생각들이 밀려왔다.


_한 일 년 쉬면서 세상을 다시 보는 것도 괜찮겠지. 검정고시로 1년 앞당기고 대학 갈 수도 있고.

_1년 지나 후배들과 다시 학교 생활을 시작하는 건 괜찮을까?

_우수반에 편성 안되면 어때. 그냥 주어진 대로 형편대로 지금 학교에서 적응하다가 대학 가면 되지 않을까?

어려움 없는 세상사가 어디 있을까? 그것도 험한 세상 이겨내는 경험 아닐까..

_전학으로 교육환경을 바꾸어 주는 것은 어떨까? 통학 가능 거리 내 학교 전학은 안되게 되어 있으니, 아래 지역으로 가거나 서울로 가거나. 이사를 갈 계획으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고 등등


교육현장에서 마주했던 많은 전학 상담들도 생각이 났다. 학교 폭력 가해자로 또는 피해자로 전학을 고려하는 경우 가능한 한 전학 없이 해결해 보려고 애썼다. 어차피 학교는 대한민국 안이고 친구 등 환경만 바뀌는 것이니 그냥 있으면서 문제를 해결해 보도록 종용하는 편이었다. 특정 문제로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도 말리는 편이었다. 돈이 많아 외국으로 유학 가거나 특기가 뛰어나 특별지도받으려는 경우 아니면 무작정 휴학도 말리는 편이었다.


자녀교육은 엄마의 정보력 조부모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이 좌우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다른 도시 고등학교가 밤 10시 12시까지 보충학습 심야 자율학습으로 학생들을 공부하도록 할 때 강남의 고등학교 학생들은 오후 4시 반이면 하교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다음 학원으로 가서 공부하기도 하고, 우수대학에 잘 보낸다고 알려진 괜찮은 선생님을 초빙해 과목별로 지도받으러 가기도 한다. 주변 선배들이 우수대학에 간 방법을 따라 각자 알아서 엄마가 짜준 시간표대로 학교가 끝난 후 각자 알아서 공부하는 것이다. 위성도시에는 그렇게 할 상황이 안되는데 대학입학성과를 내야 하니, 학교에서 강제로 잡아두고 열공하도록 하는 것이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것인가. 이 상황에 우리 아이를 포함한 학생들은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갈까?


한편으로 교육제도의 근본적 문제까지 생각했다.

학교는 꼭 필요한 제도인가? 한 번쯤 가져보는 의문이 아니라 몇십 년 그리고 지금도 더 나은 교육시스템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다양한 사회에서, 급변하는 미래의 흐름에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떤 교육이 최적일까?

학교가 생기기 전 교육은 불평등 사회 그대로이고 무지의 대물림 같은 흐름이었다. 왕과 귀족 집안은 특별한 스승을 모셔와 개인지도를 받았었고 후에 성균관 같은 엘리트 위주 교육기관이 생기게 되었어도 서민의 자녀는 동네 서당 정도에서 글을 익히는 정도로 수준 높은 가르침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 아니었을까? 민주화가 기회의 평등을 전제한다면 그리고 차별해소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지식습득을 누구나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학교 제도는 오랜 시간 그 목적을 유지하며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그만큼 오랜 세월 별 의문 없이 받아들이고 교육받고 시키며 오랜 세월 이어져 왔다. 그런데 정말 차별 없이 지적 습득 기회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려 있을까 누구나 원하는 수준의 교육을 받고 차별 없는 직업선택의 기회를 보장받고 있을까? 학생 개인개인은 만족스럽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자신의 목표를 학교를 통해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우리 사회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로 겹겹이 싸여 있다. 국가, 지역, 종교, 몸담은 직장 그리고 연관된 학교까지도. 그럼에도 학생개인은 많은 부분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자신을 둘러싸는 많은 것들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본인의 선택이 아니다. 그저 주어진 조건에 따라 따라가야 하는 상황일 뿐이다. 또한 학생은 학교를 선택할 기회도 많지 않다. 유치원은 엄마가, 초등학교는 사는 지역, 중학교 고등학교도 범위만 넓어질 뿐 선택에서 지역을 넘지 못한다. 심지어 학교에서 만날 친구들과 선생님조차도 본인의 선택이 아니다. 그저 주어진 조건에 따라 따라가야 하는 상황일 뿐이다. 그렇다면 자기 결정권 없이 떠 밀려온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안정되게 실현할 수 있도록 좀 더 다양한 지식습득채널과 개인의 능력을 제고시킬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청소년기에 겪는 심리적 고충까지 상담하고 배려해 주는 그런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닿았다.


교육시스템에 대한 이상과 달리 아이의 문제는 현실이었다.

당시에 미국 등 해외유학도 많이 가는데 서울 전학정도는 아이를 위해 고려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 사회나 만연한 편견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했다. 특정지역을 백안시하기도 하고 개인의 능력을 보기 전에 출신학교를 보고 어떤 결정을 해버린다던지 하는 문제, 빈부나 외모로 사람을 지레 판단하는 사회적 문제까지 생각했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갈 나의 아이들에게 어떤 결정을 해 주어야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 갈 수 있을까?




많은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전학이었다. 친지들도 많이 사는 곳이고 지인도 많아 평소 자주 다니던 지역이어서 친숙했고 먼 거리도 아니어서 충분히 출퇴근하기에도 문제가 없었다.


전학을 결정하고 다음의 처리는 모두 부모의 몫이었다.


아이는 스스로 잘 크는가 보다.

새로운 친구들, 처음 보는 선생님 그리고 공부시스템까지 낯설고 힘들었을 텐데 잘 적응해서 졸업 후 이제 사회생활도 잘하고 있는 두 아이를 보니 그저 눈물이 맺힐 만큼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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