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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 Feb 29. 2024

먹초딩, 요리 에세이에 빠지다.

요리 에세이의 폐해.

먹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즐겁고 재밌다는 먹깨비가 있다.

이 소스, 저 소스에 따라 맛을 비교해 보고 자신의 입맛에 맞으면 레시피를 물어보는

먹을 것에 진심이 아이.

그가 요리 에세이에 빠져 한 달째 같을 책을 번갈아 들여다본다.

내가 물었다.

"그 책들만 반복해서 읽는 이유가 뭐야?"

"요리를 만드는 상황 하고, 레시피가 재미있어."

"아 그렇구나."

엄마는 이해 못 할 그만의 철학.

책 한 권 읽고 나면 끝인 나와, 마지막장을 덮음과  동시에 다시 앞장으로 가서

반복독서를 하는 꼬마 독서가를 평생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가을이가 저 책을 읽기 시작한 건 2월 초.

배지영 작가님의 강의를 듣고 작가님의  아들이 쓰신 <소방관들을 위한 특별한 한 끼>를 선물로 받았다.

그 책을 보고 가을이는 자신도 읽어보고 싶다고 했다.

소방서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며 소방관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주인공을 가을이는 재밌어했다.

식당에서 재료를 손질해 요리를 하는 장면들과, 세세히 나오는 레시피들이 가을이의 흥미를 돋우는 거 같았다.

그 책들을 탐닉하며 가을이는 작가가 더욱 궁금해졌나 보다.

주인공의 고등학교 시절을 그려낸 <소년의 레시피>도 읽어 보고 싶다며 도서관 대출을 요청했다.

그리고 소년의 레시피를 읽어보며 주인공의 요리세계로 빠져들었다.

주인공이 만든 음식들을 보여주며 엄마에게도 요리를 만들어 달라고 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도 집에서 돈가스 수제로 만들어 줄 수 있어?"

"음, 만들 수는 있지만 기름으로 튀겨내야 해서 기름 냄새 장난 아닐 텐데 돈가스 집에서 먹는 게 더 맛있지 않을까?"

"그럼 내 생일 때 집에서 직접 만들어줘 알겠지?"

생일은 10월인데 그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아이를 보며 약간의 죄책감이 밀려왔다.

게으름을 이겨보며 애써 몸을 움직여 본다.

'그래 방학 여유도 많은데 만들어 주지 뭐.'


그리하여 때아닌 수제 돈가스 만들기에 돌입한 나.

요리를 하며 요 똥들은 레시피 읽기에 한 참 시간을 기울인다.

느릿느릿 레시피를 정독하고 정육점에서 등심을 구입해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계란을 풀어 넓적한 그릇에 담아주고, 밀가루, 빵가루를 준비해 등심에

옷을 입히듯  빈틈없이 입혀준다.( 밀가루-계란물-빵가루순으로)

옷을 입힌 등심에 이제 화려한 액세서리를 장착해 줄 시간.

액세서리의 적당하면서 우아한 색을 만들기 위해 기름의 온도가 중요하다.

빵가루를 떨어뜨려 바로 떠오르면 준비가 됐다는 신호.

등심을 넣으니 귀를 간질이는 청량한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언제 빼야 하지? 레시피를 봐도 몇 분 튀기라는 이야기는 없다.

두께에 따라 적당히 튀기라고만 되어 있을 뿐.

요똥이에게 제일 곤란한 문제.

색깔을 보며 타는 냄새가 나는 거  같아 얼른 돈가스를 건져낸다.

그래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걸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보며 결과물을 가을이에게 내민다.

돈가스를 받아 든 가을이는 흐뭇한 미소로 돈가스를 자른다.

하하, 하지만 안이 덜 익었다.

'미안하다, 아들.'

"잠깐만 이리 줘 볼래."

돈가스를 잘라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여 안까지 익혀주는 걸로 이 사태를 해결해 본다.

잘라먹는 재미는 없지만 버터향이 나는 돈가스를 가을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먹기 시작한다.

요리가 쉽지 않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당분간은 튀기는 요리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가을이는 여전히 두 책을 번갈아 가며 책을 서치 한다.

내가 보기에 다음엔 엄마에게 어떤 음식을 해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는 거 같다.

요리에세이 책에 빠진 아들 덕분에 엄마는 때 아닌 시집살이가 시작됐다.

그 모습을 보고 남편은 낄낄 웃어대며 한 마디 거든다.

"아들이 해달라는 건 그래도 다 해주네, 내가 해달라고 하면 어림도 없는데."

당연한 소리를 하는 남편에게 미소로 화답한다.

"안 그래도 저 책들을 그만 읽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야. 당신은 알아서 사 먹어."


책들의 주인공은 본인이 만들어서 나누어 주는 걸로 행복을 느꼈던 거 같은데.

'아, 너는 다른 시점으로 저 책들을 보고 있어구나.'

요리를 하는 시점이 아닌 먹는 시점으로

반복 독서가에게 요리에세이 책에서 벗어나게 해 줄 책들을 서치 하는 걸로 기나긴 2월을 마무리 해본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감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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