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신부를 위한 5회 패키지 피부 관리는 못 받았어도 잠이라도 푹 자서 메이크업빨이라도 받아보자 싶어 일찌감치 누운, 결혼 전 날 밤이었다.
잠은 올 생각을 않고,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를 무는 와중에 불쑥 그것도 떠오른 것이다.
'그 흔한 소개팅한번을 못 해 봤네'
그렇다고 결혼을 무르고 싶다거나 하는 그런 마음은 결코 아니었다. 심지어 뭣 모르는 20대녀는 살짝 설레기도 했다.
다만 이제 이렇게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뭐가 바뀌어도 한참은 바뀌겠구나. 하는 막연함이 어쩐지 잠을 달아나게 했을 뿐이다. 미혼녀에서 기혼녀로 넘어가기 직전의 여자는 별 게 다 아쉬워졌고 지나간 소개팅 제의까지 끌어다 아쉬워했을 뿐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결혼식 전날 밤에 말이다.
대학 때 같은 과에서 만난 그와 7년을 사귀다 결혼했다. 그러다 보니 난 소개로 누굴 만나본 경험은 못해 봤다. 1학년 초 친구들하고 미팅 몇 번 나가 놀다 온 게 전부다. 소개팅의 그 어색한 공기는 어떤 맛일지, 서먹하기 짝이 없는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것들이 하나, 둘 생기기까지 그 시간은 어떤 템포로 흘러가는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어렴풋이 짐작만 해 볼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나와는 정반대로 네 살 터울의 여동생은 수년 째, 그것도 꾸준히, 소개팅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동생은 어디서 어떤 시간대에 만나야 조금이라도 덜 어색한지, 어떤 메뉴를 골라야 초면에 덜 민망한지 이제는 도가 텄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전문가에게도 늘 곤란 그 자체인 것이 있으니 바로 ‘No’ 거절.
피차 호감이 없으면 거절이고 자시고 필요없으니 오히려 깔끔하지만 그 쪽에서만 호감일 경우 영 껄끄러우니까.
최근에 2번의 만남 끝에 조심스럽게 거절 카톡을 보냈다는 동생 말에 내가 물었다.
“그래서.. 이번엔 또 뭔데?”
“아니, 자꾸 애기를 하자잖어. 애기를~”
얼핏 듣고 '응? 웬 19금스러운 멘트?' 했다. 헌데 그게 아니었다. 톡을 특히나 좋아했던 '소개팅 남'은 카톡 대화 끝에 “다음 주 언제가 괜찮은지 애기 해 주세요" 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오타겠지 하고 넘겼는데 그 후로도 몇 번을 어떤 메뉴가 좋은지 애기해 주시면.. 이런 식으로 얘기 대신 애기를 찾아댔고, 그게 그렇게 거슬리더란다.
따지고 보면 그의 맞춤법이 문제였을까. 그 남자한테 딱히 마음이 가지 않으니 겸사 겸사 그의 ‘애기’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동생이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콕 집어 얘기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이유는 ‘그냥’일 때가 많다. 그냥 더 이상 궁금하지가 않다는 거다. 그토록 찾고 싶은 매력이 도통 보이지가 않는단다. 분명 좋은 사람인데, 만나면 그냥 자꾸 '시계'를 보게 된다고. 빨리 끝내고 조카 보러 가야지. 가서 뭐하고 놀아줄까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와 연애나 결혼을 하려면 그는 최소한 1.5개의 매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김신회 작가의 '서른엔 행복해지기로 했다'의 한 대목이다.
사람은 누구나 적어도 1개 정도의 매력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라
그 사람에게 끌리기 위해서는 평균적인 1개로는 힘들다는 것이다.
최소한 1.5개의 매력 정도는 발견해야
그 사람하고 연애고 결혼이고 할 수 있다는 얘긴데.
동생의 긴긴 소개팅 역사를 지켜 보면서 그 놈의 '1.5개 찾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또 문득 기억을 더듬게 된다.
그렇담 우리 부부는?
그걸 찾기는 했었던가? 20년도 더 된 일이라서일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맥심 두 봉을 타 마시고 바로 누워도 코 곯기가 가능한 저 남자. 저 남자가 가진 1.5개는 뭐였더라. 모두가 잠든 밤 거실에 앉아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본다. 문을 아무리 꽉 닫아도 기필코 비집고 나오는 드르렁 소리 때문일까. 아, 떠오르질 않는다.
어쩌면 그역시 마찬가지일지도모르겠다.
"내 매력이 뭐였어?" 내가 뜬금없이 물으면
"아 참, 이번 주 분리 수거 했든가?"
남편은 이런 현명한 동문서답을 할 지도.
만약 우리가 소개팅으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과방 구석에서 초를 다퉈가며 같이 레포트 쓰고, 수업 시간 내내 헤드뱅잉 하다, 같이 자판기 커피 뽑아 마시고 하는 그런 사이로 만난 게 아니라면.
어느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서 어색하게 통성명하며 만난 사이였다면,
평소에 입지도 않는 옷으로 잔뜩 꾸미고 나가 취미, 취향 탐색부터 한 사이였다면
과연 한 집 사는 사이가 되었을까.
음 '글쎄 올시다'다.
낯가리는데 선수인 나는 최대한 안 가리는 척 하며, 보나마나 웃긴 웃지만 눈과 입이 따로 놀았을 거다. 남자들만 득실득실한 데서 자란 그는 원래보다 더 오버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재미없는 여자’와 ‘부담스러운 남자’로 앉아 있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