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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 May 25. 2023

자전거 도둑을 돕는  가장 쉬운 방법

"잠깐! 이거.. 아빠 자전건데?"


네 식구가 집 앞 상가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던 길이었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물고 룰루랄라 앞장서 가던 첫째가 멈춰 섰다. 상가 입구에 널브러져 있다시피 한 자전거들 앞에서 심상치 않은 얼굴이다.


아빠 자전거?

우리는 자동으로 멈춰 섰다.

'아빠 자전거'로 말할 거 같으면 이제는 과거형이 되어버린, 마음에서 보내준 '그것' 아닌가.




한 달 전쯤 일이다. 아파트 자전거 거치대에 놓아둔 남편 자전거가 사라져 버린 건.

혹시나 해서 아파트 곳곳을 돌아봤지만 역시나 없었다. 주인 없이 방치된 자전거로 취급돼 혹 정리된 건가 싶어 경비실에 문의도 해 봤다. 폐자전거 정리는 최근에 없었고, CCTV를 돌려봐도 수상한 움직임은 못 찾겠다는 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남편은 그저 웃었다.

생각해 보면 그가 할 수 있는 건 허탈하게 웃는 것 말고는 딱히 없었을 것이다.

남편은 헐렁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몸에 걸치는 건 물론이요, 생각까지. 타이트한 걸 싫어하고 느슨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여유'는 보안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었고, 하필 그날은 '자전거'였던 것이다. 거치대에 자물쇠도 없이 프리하게 놓아뒀으니 누굴 탓하겠는가. 방심했던 그날 그 손목을 탓할 수밖에.




그런데 그렇게 아프게 보내주자 했던 그 '자전거'가 떡 하니 눈앞에 있는 것이다.


"에이, 어디다 팔았겠지. 자전거를 훔쳐가서 바로 코 앞에서 타고 다닌다고? 보란 듯이?"

설마 그냥 같은 모델의 딴 자전거겠지 했다. 하지만 헐렁함과는 별개로 눈썰미가 과하게 좋은 남편은 본인의 자전거라 확신했다. 헐거운 오른쪽 브레이크하며 안 쪽에 크게 나 있는 스크래치의 길이와 각도까지 딱이라면서.


"내가 내 껄 모를까"

어미가 제 자식 흉터를 어찌 몰라보겠냐는 듯 정색을 했다.

'그러게. 그 귀한 자식 놈 자물쇠도 좀 챙겨주지 그랬냐'는 말이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삼켜 버렸다.


"먼저들 집에 가 있어"

남편은 혼자 기다려보겠다 했다. 중고등 학원이 몰려 있는 상가다 보니 분명 학원에 온 '누군가'일 거라 짐했던 거다. 자물쇠 없이 던져놓고 갔으니 기다리다 보면 언젠간 나타날 거라면서.

양파와 두부가 종량제 봉투를 건네는 그는 잠복근무 하는 형사 마냥 진지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됐어? 만났어? 찾아온 거야?"

이번에도 그저 웃었다. 그의 말은 이랬다. 우리의 예상대로 누군가 내려와서 자전거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집어 들었단다.


"이 자전거 네 거니?"

남편은 본인의 투박한 인상도 있고 해서 최대한 겁먹지 않게 물었고

중학교 1학년쯤 됐을까 싶은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단다.


"어디서 샀니?"

"..당근에서 샀는데요"

"네가 산 거 부모님도 알고 계시니?

이거 아저씨 자전거 같은데 얼마 전에 도난당했거든"


남편이 묻자 얼굴이 벌게진 아이는 주춤주춤하더니

"그..그럼 가져 가세요" 한마디 던지고 바람같이 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전거는 다시 우리 집 앞에 세워졌다.  물론 자물쇠와 함께.

자전거를 다시 찾았지만 맥주 한 캔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남편의 얼굴은 어쩐지 허해 보였다. 뭔가를 두고  온 사람처럼.


며칠 뒤 경비실에 자전거 찾았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혹시 남학생인가요?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하고 되물으셨다.

사실 CCTV 속에 어떤 아이가 우리 자전거와 비슷한 자전거를 갖고 가는 게 보이긴 했다는 거다. 하지만 누가 봐도 주인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설마'했다고.




우리 집 바로 위층이 공부방으로 운영되다 보니 학생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그 아이들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우리 부부는 생각했다.  늘 드나들던 그 아이 눈에 유난히 휑하게 열려 있는 자전거가 들어온 걸 지도. 순간, 언젠간 후회할지도 모를 그 충동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문득 요즘 부쩍 늘고 있는 '무인문방구'가 떠올랐다.  계산 키오스크에 겨우 키가 닿을까 말까 한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깔깔 웃으며 구경하는 걸 보면 귀엽다가도 걱정이 올라오곤 했다.  재미 삼아 들른 저 천국 같은 곳에서 '갖고 싶다' 하는 마음이 앞서 덜컥 실수해 버리면 어쩌나 하는.  신기한 것 투성인데 "음 음.." 헛기침해 줄 '어른'은 없는 곳. 아직 여물고 있는 중인 저 작은 아이들이 그곳에서 부디 시험에 들지 말아야 할 텐데. 


유난히 컬러풀한 그곳을 지날 때면 난 늘 칙칙한 걱정이 들곤 했다.  


그런데 그 칙칙한 일이 내 앞에 벌어진 것이다.

'뭐 별 일 있을라구'했던 어른의 느슨함이

"그럭저럭 쓸만한 자전거 여기 있어" 하며 아이를 부른 건 아닐까. 시험에 들게 한 건 아닐까.



"그 오빠, 그날따라 가방이 너무 무거웠나?"

12살 둘째는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자전거를 잠깐 빌린다고 가져간 건가 '하는 12살스러운 추측을 했다.


이유야 어떻든 그 아이도 충분히 느껴야 할 것이다. 본인이 벌인 일의 무게를.  

하지만 그 검은 마음을 건드리는 데 어떤 식으로든 어른이 일조했으니  

얼굴 벌게져 달아나 버린 그 아이만 탓할 일이겠는가.


자전거를 볼 때마다

남편도, 나도 그 씁쓸함이 오래갈 듯하다.




산전수전 겪느라 한 1년은 늙은 거 같은 자전거


 




                                                                               대문 이미지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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