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세, 제이미 그리고 이노
남가좌동을 벗어난 서울에서의 첫 외출을 회상한다. 퇴근 미리 하고 밤 9시까지 기다렸다 나를 기꺼이 만나준 사람이 두 명인데 첫 번째가 22년 지기 친구다. 내가 첫 소설을 쓴다면 대학 때 4인방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을 정도로 할 얘기가 많은 네 명 중 하나인 헤르세이자 제이미 그리고 이노.
서울에 갈 때마다 항상 한 번 이상 만났고 여행도 같이 했고 이 친구도 프랑스 집에 여러 번 들렀다. 별칭은 여러 개지만 성명은 한국에서 아마도 가장 흔한 것 중 하나일 텐데 내 주변만 돌아봐도 성과 이름까지 동일한 사람이 세 명이나 되니 굳이 따져 무엇하랴.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20년이 지났어도 이름으로 불러본 적이 거의 없고 20대에는 헤르세였다 30대에는 제이미가 되었다가 어느 날 (동)굴 속에 있다는 말을 윗트 있게 변형해 Inoyster라고 지어 이노가 된, 작년에 저세상으로 간 러시안 블루 고양이 인삼이 엄마. 15년 이상 홍대, 합정, 연남에서 살면서 홍대댁이었다가 몇 년 전부터 놀랍게도 인천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인천댁. 별칭을 이용하지 않을 때는 이름보다는 "김아"라고 했다. 김이 나를 "최야"라고 불러왔듯.
서울에 들를 때마다 날짜가 정해진 순간부터 나 한국 가 하고 연락을 했었는데 올해는 서울로 출발하기 이틀 전에나 소식을 전했다. 나 서울 간다. 오냐. 만나자. 보고 싶다.
들쭉날쭉한 나에 비해서 항상 고요한 헤르세에게 코로나가 터지기 좀 직전인 2019년 말에 이혼하니 마니 새벽에 울고불고 연락하여 괴롭힌 후로 연락을 마음대로 못하고 있었다. 2000년부터 굴 파는 연애담을 공유하며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사진 찍으며 울고 웃었던 사이라 항상 내 편일 거라고 생각하던 사람 중에 하나지만 결혼 후 남편도 헤르세의 남자 친구와 동반해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어 갑자기 우리의 안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도 무례일 수는 있었다. 그리고도 결혼 생활이 나아지지 않았고 2020년을 맞았지만 마침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이 찾아와서 그렇게 뜸하던 연락마저도 단절이 되었다. 연락할 마음의 여유가 누구에게도 없었다. 원래도 멀리서 1년에 3-4번 정도로 연락하는 사이인데 나만의 생각일지는 몰라도 그것으로 충분했다. 헤르세는 항상 그 자리에 있고 나도 항상 이 자리에 있다는 안도감과 자신감이 있었다.
프랑스 전국이 격리에 들어간 2020년 4월에 시댁에서 키운 지 십 년은 더 된 고양이 귀스타브가 시댁 집 앞 차에 치여 죽은 소식을 파리 아파트에서 들었고 가슴이 덜컹했는데 격리 때문에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떼지를 못했다. 귀스타브를 본 적이 있는 헤르세에게 귀스타브 죽었대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어떡하냐라고 답이 왔고 상황이 멍멍하여 대화가 크게 진전이 되지 않았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몇 달이 지난 후 전 세계가 코로나 충격에서 조금 벗어나 유튜브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가 많이 나돌던 때쯤 어떻게 지내냐라고 물었더니 코로나 블루스에 걸린 것 같다고 답을 해왔다. 서울에 무서운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바이러스를 생각 없이 화나서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어. 건강히 지내라. 너도 건강히 지내라.
그렇게 2021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복 많이. 너도 새해 복 많이. 몇 달 만에 다시 시도한 연락도 비슷한 형태로 간단하게 마무리가 됐다.
몇 달이 또 흘러 대화를 하게 됐는데 그제야 2021년에 2월에 인삼이가 죽었고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한편으로 섭섭하면서도 어떻게 공유하지 않고 혼자 품고 지냈을까 어른다운 생각에 고개가 숙여졌다. 어떡하냐. 수의 말로리도 저 세상에 갔는데. 귀스타브도.
계속 2019년 말에 밤늦게 괴롭힌 것과 코로나 블루스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몇 번의 짧은 대화가 왠지 마음에 남았다. 우리, 이렇게 조금씩 멀어지는 것인가. 나 혼자만의 생각인 건지, 이런 느낌이 22년 만에 처음이라 서울 방문 소식을 반가이 받아주지 않으면 어떨까 두려워서 연락을 계속 미루고 미뤘다. 이미 한국 땅에 도착해서 신고한다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누군가가 나를 잊어가고 있어도 그에게 내 안부를 전하는 것은 내 임무다. 답변이 없을까 봐 괴로워하고 연락을 해도 답변이 없어 울던 짓은 20대에나 하던 거지. 내 안부를 전하고 상대가 원할 때 자신의 안부를 돌려주기를 기다려주는 것이 내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나의 헤르세 제이미 그리고 이노에게서는 환한 답변이 왔다. 언제 왔냐. 피곤하지. 언제 볼까.
서울에서 첫 시내(?) 밤공기를 맞으며 만나러 온 헤르세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3년 반 (못 본지는 더 되었지만) 동안 단편적인 대화들만 하다가 합정 어느 일본식 바에 앉아 자세한 일상 정보를 나누면서 우리도 많이 변한 것을 느꼈다. 대화의 주제가 특히 많이 바뀌었다. "나 본부장으로 발령 났어. 비슷한 구역에 아파트도 사서 이사했어. 쌍둥이 동생들 수능 때까지 집에서 데리고 있으면서 밥 해먹이고 수학 가르쳤어. 그리고 이제 아기 낳아야 하나."
다음 약속을 정하며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서 며칠 후에 문자를 보냈다.
"나 예전 블로그를 읽게 됐는데 재밌고 오글거려. 지금 너무 변했고 재미없는 사람 된 것 같다."
"나도 지금 되게 재미없는 사람 된 기분이야."
"인생에 대한 고민보다는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고민만 하고 있어."
"뭘 하며 살아야 좋을까 이런 생각이나 하고.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길을 가도 잘할 거라 생각된다. 올해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