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5분 쓰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브 Jul 09. 2023

한 여름밤의 꿀

서울 2023.06 잊지 않으려고

서울에서 노래 하나를 스포티파이에 저장했다. 4주 전에 저장했다고 나오는데 "4주 전 저장" 위에 마우스를 갖다 대어도 자세한 정보는 안 나온다. 1달이 지나야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 그날 밤 정신이 밝아서 책상 앞에 앉았고 방의 온도가 살짝 높아 창문을 열어놨다. 친정 내 창 밖으로 보이는 밤 풍경을 좋아한다. 우리 건물과 앞 건물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속하는데 이 두 건물 사이에 넓은 도로가 하나가 있다. 홍제천으로 이어지긴 하지만 어차피 아파트 단지이기 때문에 외부 이동 차량은 많지 않을 것인데 작년 겨울에 갔을 때 보니 신호등 공사를 시작했다. 사고 횟수를 연구해서 신호등이 정말 필요한 것으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올해 6월에 한창 사용 중이던 그 신호등이 나는 그저 괴롭기만 했다. 이런 부분에서는 뼛속까지 파리 사람이기 때문에 차가 다니지 않는 순간 거리를 바로 횡단하는 습관이 있어서다. 심지어 모래내 시장으로 이어지는 교차로를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신호등을 하나씩 세웠는데 거리상으로는 100미터도 되지 않는데 파란불 켜지는데 시차가 있다. 어느 정도 교통 패턴과 사람들 패턴을 익힌 후로는 두 신호등의 시차를 이용해 가며 무단 횡단을 하며 사는 무법자로 살았다.


그날 그렇게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간헐적으로 불이 켜진 앞 동을 보며 여름밤의 실바람을 느끼고 있었는데 멀리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차 안에 설치된 값비싼 스피커에서 들리는 음악인 것은 알겠고 혹시나 해서 핸드폰을 들고 샤잠 어플을 켰다. 엉뚱한 신호등이 생긴 이후로 이 앞으로 지나가는 차들은 밤에도 신호가 걸리면 보행자가 없어도 멈춰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 갑작스럽게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파란 불이 켜지길 기다리며 모터 소리 하나 없이 숨 쉬고 있던 차 안에서 나오는 음악만이 아파트 단지 내의 정적을 깨웠다. 샤잠은 어김없이 능숙한 탐정처럼 무슨 노래인지 찾아냈고 그게 바로 "한 여름밤의 꿀"이다.


스포티파이에서는 A midsummer night's sweatness라고 나오는데 그날 밤 그 조용함과 그 서늘함 사이에서 마주하게 된 제목치고는 기가 막힐 만큼 적당해서 미소가 나왔다. 그 차를 운전하던 사람도 어쩌면 나와 비슷한 감정 상태로 그때 듣기에 적당한 제목이라 생각하여 듣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여름밤의 꿈도 아니고 한 여름밤의 꿀이라니. Dream이 sweatness로 바뀐 것뿐이지만 꿈이 꿀이 된 것만큼 멋지진 않다. 


한 여름밤의 꿀은 2023년 6월의 한 순간을 떠올리면 배경으로 깔릴 노래 중 하나로 인쇄되었다. 그 바람과 그 조용함 사이로 가볍고 상쾌하게 들어와 평생 머무른다.   


ㅅ한 여름밤의 꿀 


매거진의 이전글 싫어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