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나스크 Jan 19. 2023

내가 쓴 소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써봐'

 사촌언니가 있다. 여럿 있는데 연락하고 지내는 사촌은 언니뿐이다. 언니는 나보다 7살이 많다. 내가 아기 때 나를 이뻐해 줬고, 내가 의식이 있을 때 언니는 중학생, 그리고 고등학생. 명절에 만나기는 하지만 언니는 항상 공부하러 혹은 친구와의 약속으로 집에 붙어 있지 않아 점점 보기 힘들어졌다.

 

 언니는 조소과를 나와서 도예를 전공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게 언니는 이것저것 하는 걸 좋아해서 명절날 큰집에 갈 때마다 그때그때 빠져있는 게 달랐다.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웃음소리가 컸다.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들려온 소식은 언니의 미국행이었다. 응? 갑자기? 어린 내 눈에 언니는 두려울 게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뭔가 해보기 전에 지레 겁부터 먹고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먼저 찾는 내게 있어서 뭐랄까? 언니는 멋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쉽게 할 수 없는 선택들을 종합선물세트로 하는 사람. 나와 다른 사람. 그래서 또 끌리는 사람이었다.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다. 언니는 엘레이에 거주했을 때이고 나는 보스턴으로 가게 되었다. 넓디넓은 미국 땅덩어리의 정반대에 살고 있지만 타지에 같은 핏줄이 있다는 게 작은 위안으로 다가왔다. 아빠가 언니의 번호를 주면서 한번 연락해 보라고 했다. 가족일에 항상 열심인 아빠의 성화에 알겠다는 말만 할 수도 있었지만 나도 내심 언니에게 연락해보고 싶긴 했다. 언니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오랜 시간 동안 교류가 없었지만 전화기 너머 언니의 목소리는 살가웠다. 시간 되면 놀러 오라는 반은 농담일 수도 반은 진담일 수도 있는 말도 잊지 않았다. 보스턴에서 10개월 정도 머물고 목표했던 과정을 끝냈다.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돌아가면 이곳에 다시 쉽게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미국을 좀 더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대학 때 친한 친구가 엘레이에 살고 있었다. 언니도 보고 친구도 볼 겸 엘레이행을 택했다.



 공항으로 마중 나와준 언니는 이제는 한국 사람보다 미국 사람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런 게 바로 교포 스타일? 마침 언니의 부모님께서도 한국에서 오신 때라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언니네 집에서 묶는 동안 나는 언니와 같이 잠을 잤는데 잠에 들기 전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다. 그리고 그때 언니가 해준 이야기가 내 인생을 크게 바꿔주는 이야기가 되었다.








 언니는 학창 시절에 그림 그리는 것도 잘했고 사교성도 좋았다고 한다.  글재주가 있어서 고등학생 때는 소설을 연재해서 반 친구들끼리 돌려보기도 했다고 한다.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한동안 글 쓰는 재미에 푹 빠져있던 때가 있었는데 언니도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했다. 미국으로 와서 자리 잡은 지 10년. 언니가 오랜만에 한국 집에 돌아왔을 때 갑자기 방정리를 하게 되었. 그러다 장롱 한편에 노끈으로 묶인 노트들이 한 뭉치로 나왔다고 했다. 뭐지? 하고 펼쳤더니 학창 시절에 쓴 일기부터 이런저런 노트들이 었고 그중 언니가 고등학생 때 쓴 소설을 발견했다고 했다. 호기심에 자신이 쓴 소설을 다시 읽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왜? 너무 잘 썼어?'


 '아니. 내가 그때 쓴 소설 속 주인공이 있잖아. 그게 지금 나인 거야.'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응? 무슨 말이야?'


 '그때 내가 쓴 소설의 주인공도 미국을 가.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건축가가 돼서 미국에서 사는 이야기였더라고.'


어머나 세상에!

얘기를 듣는 순간 무서운 얘기를 들었을 때와는 다르지만 내 등골이 오싹했다.


 '와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러니까! 나도 정말 놀랐어. 그때 쓴 얘기들이 어느 정도 내가 진짜 겪은 이야기랑 맞는 거야.'


 '!!! 진짜 신기하다. 그래서 기분이 어땠어?' 


 '신기하고 또 느낀 게 있어.'


 '뭔데?' 


 '내가 그린 그 캐릭터에 나도 모르게 내가 다가가고 있었나 봐. 소설 속 주인공이니까 거리낄 게 없잖아.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그대로 표현했겠지. 그러니까 그게 약간 주문 같았던 거야.' 


 '스크야. 그러니까 너도 네가 되고 싶은 게 있잖아? 그럼 그걸 그냥 써. 그럼 나중에 그 얘기가 네 일이 될지도 몰라.'



 그리고 어떤 얘기들을 더 나누고 언니는 먼저 잠에 들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지금껏 들었던 이야기 중에 가장 놀랍고 힘이 있는 이야기였다. 








 10년이 지나 엘레이에서 언니를 다시 만났다. 한국에 들어가기 전 잠시 들렀던 그곳에 이번에는 살러갔다.


 '언니. 나한테 해준 그 언니 소설 이야기 기억나?' 


언니는 소설 이야기는 기억했지만, 나에게 그 얘길 해줬다는 건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언니가 말했잖아. 내가 원하는 걸 쓰라고. 나 한국에 갔을 때 미국에서 다시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어. 그리고 계속 생각했어. 근데 진짜로 다시 오게 됐어. 언니는 까먹었겠지만 나는 그게 내가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어.' 


 언니는 여전히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으로 미국에서 살고 있다. 그 이후에 언니는 또 다른 이야기를 써보았을까?


 소설은 아니지만 나는 일주일에 두 번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고 있다. 이 글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모르지만 아마도 내가 바라는 모습일 거라는 확신이 든다.




사진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이름은 스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