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분명 1월 1일이라 했는데 한참 지난 뒤에 또다시 설날이네 새해네 하는 걸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어리둥절했던지. 달력에 적힌 작은 날짜들을 처음 발견하고 신기했던 어린 시절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명절인 설날. 아이에게는 한국에서 보내는 첫 설날이다. 예전의 나처럼 1월 1일이 아닌데 왜 또다시 설날이냐고 묻는 너를 보며 피식 실소가 터져 나온다. 미국 사는 동안은 한국 명절에 관해 크게 알려주지 않았다. 한국식 교육기관에 보낸 것도 아니었고 바지런하게 한국 명절이랍시고 이런저런 음식을 하지도 않았기에 아이에게는 명절이라는 개념이 아직은 그냥 학교 안 가는 빨간 날이다.
미국에는 롱 위켄 long weekend라는 개념의 우리나라식 공휴일 또는 명절의 개념이 있다. 다른 점은 우리나라는 정해진 날짜가 위주라 계속해서 날짜가 바뀌지만 미국은 특정달의 특정 월요일이 해당일이다. 대부분 월요일이 휴일이라 '금토일월' 이렇게 붙여 여행계획을 세워 롱위켄이라 부른다.
미국 사는 동안에는 항상 바쁜 남편 덕분에 롱위켄은 남편이 일하기 좋은 날들이었다. 학교에서도 암묵적으로 휴일이라고 여겨 미팅이나 수업이 없는 날이었다. 남편은 기회다 생각하며 그 시간을 개인연구에 쏟아붓기 바빴다. 문제는 나였다. 학교도 쉬고 어딜 가도 사람이 많은 롱위켄이라 집에서 그리 멀지 않고 사람도 너무 많지 않은 곳으로 그때그때 날씨나 여러 가지 변수들을 잘 생각해 아이와 둘이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금토일월. 긴 시간 동안 아이와 남편 나 셋이 작은 집에 머무르는 것도 고역이고 남편도 온전히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 남편이 나가든 내가 아이와 나가든, 누군가는 나가야 오히려 평화로웠다. 휴일이고 뭐고 나에겐 연장육아의 시간이었다.
아이가 킨더가튼 kindergarten에 들어가고 나니 미국 공휴일에 대해 꽤 자세하게 배워왔다. 새해를 시작으로 알리는 마틴루터킹 주니어 데이부터 초록색옷을 입어야 하는 세인트 패트릭스데이. 그리고 미국의 가장 큰 명절인 땡스기빙과 크리스마스까지. 3월이면 가는 초등학교에서도 명절과 여러 휴일에 대해 잘 배워올 거라는 내심의 기대와 안도가 있다. 내가 알려주는 것보다 좀 더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잘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 오고 나니 명절의 의미가 조금 달라졌다. 멀리서 전화 한 통으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었던 때가 참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시댁에 가서 내가 가장 안 좋아하는 음식으로 손에 꼽히는 전을 부쳐야 한다던지. 꽉 막힌 길 위에 섰다 갔다를 반복하는 고속버스에 한참을 앉아 있어야 한다던지. 그래도 오랜만에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감사하게 생각하려 한다. 시댁과 친정에서 나오는 길에 두 손 무겁게 들린 짐들을 보면 그동안 부모님들께서 얼마나 우리를 보고 싶어 하셨는지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세배 후 두 손을 내미는 아이
유치원에서 세배하는 법을 배워와 한껏 뽐내는 아이의 두 손 위에도 세뱃돈이 두둑이 올려졌다. 세뱃돈의 맛을 알아버린 아이에게도 이번 설날은 큰 즐거움이었다.
나와 우리 가족은 물론,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내가 알고 있는, 그리고 알지 못하는 분들까지 모두 새해에 원하는 일이 꼭 이루어지시길 마음속으로 깊이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