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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스크 Jan 16. 2023

내 방에서 쉴 권리

미국에서 겪은 층간소음

 미국에 온 지 6개월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미국 생활에 적응이 되었고, 임신을 했고, 하와이로 가족여행도 다녀왔다. 여행을 다녀온 후 중기로 접어든 임신으로 몸 컨디션은 나날이 하락 중이었다.


 임신을 하면 잠이 쏟아진다고 누가 말했던가? 참말이었다. 나는 약 먹은 병아리 마냥 꾸벅꾸벅 졸았다. 다행인 일은 입덧이 없었다. 엄마는 언니와 나를 품고 낳는 동안 입덧은 모르고 살았다고 했고, 언니도 조카 둘을 낳으면서 입덧이 없었다. 나도 그러기를 바랐고 다행히 내 바람은 들어맞았다. 문제는 잠이었다. 그것도 낮과 밤이 바뀐 잠.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늘어지게 잠을 잤다. 느지막이 일어나면 입맛이 없는데 홀몸이 아닌지라 뭐라도 챙겨 먹어야 했다. 찬밥이라도 없는 날엔 안 먹는 것보다 낫다며 라면을 먹었다. 이래저래 입덧은 없었지만 입맛도 없었다. 몸은 늘어지고 의욕도 없었다. 물에 푹 절은 빨래 같은 나날이었다.







 하지만 빨래 같은 시간도 오래가지 못했다. 옆집 사람이 바뀐 것 같다. 안 들리던 목소리가 들린다. 지난 6개월간은 옆집에 사람이 살긴 하는지 싶을 정도로 본적도 소리를 들은 적도 없었다. 그새 이사를 가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나? 그런데 심상치 않다. 나도 어지간한 목청인데 저 여자는 기차화통을 삶아 먹었다. 목소리가 큰 건 그렇다 쳐도 계속해서 불러대는 노래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침실과 나의 침실은 얇디얇은 합판을 벽이라 부르는 방에 함께 공존했다. 라떼는 나도 샤워하면서, 설거지하면서 한가닥 부르던 짬이 있는데 듣기 좋은 노래도 내가 듣고 싶을 때지 늘어져서 자고 싶은데 잘 수가 없다. 통화는 또 왜 이렇게 오래 하는지. 카톡이 없나? 매일 전화통화를 한다. 언어 특유의 발음 때문에 하우종일 '아르르르를 라르르르르르 우르르르' 소리를 듣고 있으면 눈이 뱅글뱅글 어질어질 돈다.


 그 여자의 남편은 저 깊은 동굴목소리의 바리톤이다. 지나가다 들었으면 좋았을 목소리이지만 밤새 '아르르르' 떠드는 여자와 '우웅우웅' 대는 남자의 수다 소리는 곤욕이다. 이것들아! 여기가 무슨 5성급 방음 수준 좋은 호텔인 줄 아니!!! 얇디얇은 벽이라고 할 수도 없는 합판을 뒀으면 조심을 해야지.


기숙사 건물 1층에는 낮이고 밤이고 상주해 있는 담당자가 있다. 일단 담당자에게 항의메일을 보냈다. 옆방 소음이 너무 심해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치사하지만 내가 임신부이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점도 어필했다. 하루 이틀 조금 나아졌나 싶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의를 받았음에도 개의치 않고 소음을 만드는 저 바퀴벌레 같은 커플에 점점 열이 오른다. 오늘도 11시부터 시작이다. 낮밤이 바뀌어 부단히 시곗바늘을 원래 시간으로 돌리려 노력하는 나에게 너무 높은 관문이다. 내 방에서 자는데 왜 이어 플러그를 꽂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너피스를 수천번 외우며 귀마개를 하고 잤다. 벽간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지더니 이윽고 귀마개도 소용 없어지게 되었다. 가끔 벽을 쿵쿵 두드리면 좀 조용해지나 싶어니 결국 사달이 났다.








 하루종일 두통이 있었다. 두통은 나에게 당연한 존재라서 '아! 오늘 하루종일 두통이 있겠구나.' 싶은 신호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문제는 임신 중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두통약을 먹기 좀 꺼려진다는 점이었다. 타이레놀류의 진통제는 효과가 미미한 지 오래다. 오른쪽 눈부터 귀로 이어지는 관자놀이와, 귀 위쪽까지 좁지만 넓은 범위에서 쿵쿵 대며 심장이 뛰는 느낌이다. 눈을 뜨기도 감고 있기도 힘들지만 잠을 청해 본다. 이제 살포시 잠이 들렸는데 결국 잠이 달아났다. 그것들 때문이었다. 귀마개를 찾았다. 기운도 없고 어서 잠이 자고 싶었다. 고통의 시간이 흐르고 결국 참다못해 벽을 두드렸는데 돌아온 건 더 큰 벽을 두드리는 소리다. 거실에서 일하던 남편이 듣고 깜짝 놀라 달려올 정도의 소리였다. 얇은 합판이 거대하게 울렸다. 참고 참았던 내 울분도 같이 터졌다. 우린 당장 1층 직원을 호출했다. 격앙된 나의 심박수가 빨라졌다. 지금껏 아이를 위해 스트레스는 다 받아가면서 큰 다툼으로 번지지 않게 참아왔던 게 소용없는 일처럼 느껴지니 왜 참았나 싶었다.


'아르르르르' 여자가 떠들어 댄다. 내 방에서 떠들 권리가 있다고.


 '이보세요!!! 나도 내 방에서 편히 쉬고 잠잘 권리가 있어요!!!'


 어쨌든 나는 임신을 한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아파트 관계자는 다행히 우리 손을 들어줬고 한 번 더 신고가 들어오면 방을 빼야 할 거라는 경고까지 보낼 수 있었다. 그 뒤로 이런저런 소음은 들려왔지만 이전처럼 심한 일은 없었다. 진작 지를 걸 그랬다. 참으면 똥 된다! 옆 방 바퀴벌레들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우리 애가 울면 절대 안 달래줄 거야!'


 미국에 와서 겪은 첫 번째 층간소음은 어느 정도 잘 마무리된 듯했지만 수개월 동안 겪은 내 스트레스 지수는 결국 아이에게도 영향을 줬다. 내 아이는 귀가 굉장히 민감하다. 아주 조심히 형광등 스위치를 내려도 내 귀에만 들릴 듯 말듯한 자장가도 알아차린다. 짠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다시 한번 참으면 똥 된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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