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오래 쉬었다. 허한 마음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마음이 어지러울 때 우연히 브런치 글쓰기 강의를 알게 되었다. 그 순간만큼은 글쓰기가 허물어져 가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딱 하나 남은 동아줄처럼 반짝이고 매력 넘치는 제안이었다.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 되면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글을 쓸 수 있게 될 것이고, 안된다 해도 글쓰기 수업을 들었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구구절절 지난 경험들을 풀어내고 싶었다. 가족, 친구와 멀리 떨어져 살았던 긴 시간 동안 일어난 무수한 일들을 때마다 시간 맞춰, 서로 바쁜 일정 맞춰 말할 수 없었다. 털어놓아 봐야 멀리 있는 이들의 잔잔한 마음에 작은 돌멩이 하나 던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이야기들을 어떻게든 정리해야지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나는 브런치 글쓰기 수업을 듣기로 빠르게 결정하고 운 좋게도 한 번의 시도만에 브런치에 작가로 글 쓸 기회를 얻게 되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나에겐 시작과 동시에 끝인 일들이 꽤 많았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그 이야기들이 너무 개인적이어서. 그냥 일기 같은 일들을 잔뜩 풀어놓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브런치 프로젝트 수업이 있는 매주 금요일 밤늦은 저녁 시간. 혼자 글감을 찾아본다. 그러다 끄적여본다. '와! 이거 괜찮다' 싶은 에피소드들이 떠오르고, 몇몇 문장들이 머릿속에 가득 찬다. 받아 적는 손이 느리다. 그런데 늦은 저녁 시간 감수성이 이성을 지배하는 시간의 마법인 걸까? 다음날 오전 쓰던 글을 마저 발행하려고 할 때면 내가 쓴 글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뭐 이런 글을 썼을까부터 시작해서 소재가 진부해 보인다, 어제의 반짝였던 아이디어가 엄청난 고대유물처럼 느껴진다로 결론이 난다.
'띠링'
핸드폰의 알림이 울린다.
'**님이 글을 발행하셨습니다.'
나의 수많은 바지런한 동기님들의 글 발행 알림이 줄줄이 울린다. 손가락짓 한 번으로 글을 읽는다.
'와 이렇게 글을 잘 쓰시는구나.. 내 발행 알림도 동기님께 가겠지.. 이런 미천한 글을 굳이 동기님들이 읽으셔야 할까?'
판단은 그들의 몫이라고 해도 그 판단을 받을 용기가 나질 않는다. 글은 자연스럽게 서랍에 파묻힌다. 서랍 속 깊숙이 잠들어 있는 글들이 한 둘 보이다가, 여럿 보이다가 점점 늘어난다. 제목만 적혀있는 글도 종종 있다. 너희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벌써 브런치에 글쓰기 시작한 지 2년이 꽉 채워져 간다. 몹시 부끄럽게도 글을 쓰고 읽은 시간보다 멍하니 흘려보낸 시간이 더 길다. 허울만 브런치 작가로 살아온 시간들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해야 할 일들을 하느라, 먹고살기가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던 글쓰기를 뒤로 하고 오래도록 지내왔다. 다시 글을 쓰려니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잘 써야 하는데. 잘 쓰고 싶다. 이렇게 오래도록 쉬고 침묵을 깨는데 뭔가 한방 묵직하게 날려야 할 것 같다. 7년이라는 공백을 깨고 활동을 재개한 지드래곤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그 긴 공백을 깨고 돌아온 만큼 더 멋진 무대를 보여주기를. 그동안의 휴식이 값진 휴식이었구나 하고 인정받기를. 아무도 모르는 내 오랜 휴식을 깨고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는 이 떨림. 이 느낌 마치 내가 지드래곤이라도 된 것 같은 걸. 그래서 음악차트 상위권에 뜬 그의 이름을 보는 내 마음은 흐뭇하다.
힘이 들어가면 쉽지가 않다. 쉽지가 않으니 또 덤빌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미 한 번 쉬어 봤으니 다시 글쓰기와 멀어지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러니까 그냥 편히 하자. 내가 하기로 결정한 일이고 숙제 검사 맡을 일도 아니니까. 일하는 와중에 잠깐 주어진 쉬는 시간에 갑작스레 노트 어플에 주절주절 쓰다 보니 한 꼭지는 나온 것 같다. '꼭지'라는 단어를 쓰는 내가 마치 글쟁이인 것처럼 느껴진다. 굳이 월요일이 아니어도. 1일이 아니어도. 각 잡고 글 쓰지 않아도 괜찮았구나. 이렇게도 글이 써지는구나. 알았으니 이제 좀 더 자주 노트 어플을 열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