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관광이요?
교수님도, 동기들도 모르게 도피를 결심하자마자 광고, 방송 등과 완전히 다른 업계로 눈을 돌렸다. 우연히 울산광역시 중구 문화관광 캐릭터를 개발 및 홍보하는 일에 투입되었고 자연스럽게 관광컨설팅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SNS 마케팅을 하는 일이었으므로 완전히 전공에서 멀어졌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당시 나는 가수 박효신에게 푹 빠져 있었는데 '마침' 대표님이 그 피드를 눈여겨 보셨고, '마침' 내가 대학 선배의 딸이자 광고홍보 전공자라는 것을 깨닫고 스카웃하기까지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이 억지스러운 운명과 사주팔자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갑자기 관광컨설팅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울산큰애기'는 국내 지자체 문화관광캐릭터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현재까지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처음 인형탈을 만들고, 지역 축제와 관광지 곳곳을 돌며 밤낮으로 촬영을 다니며 스토리가 있는 인스타그램 피드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감사하게도 대외적인 반응이 꽤 좋았고, 무엇보다도 지역민과 공무원, 구청장님의 반응이 뜨거웠다. 당시 인턴이었던 나의 계약기간은 약 1년이었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을 좋게 봐준 경영진 덕분에 곧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졌다.
원래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하지만 아직 휴학생 신분이었던 나는 다시 학교에 돌아가기로 했다. 예상치 못하게 발을 들인 관광업계에서 잘 적응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광고홍보학 전공자로서 이루어야 할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현직에 발을 들여보지도 못한 채 '학술제 실패로 인한 도피자'로 지난 8년의 꿈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저는 이 일을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겠습니다."
라는 말을 끝으로 다시 광고홍보학과 학생이 되었다.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삼아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고, 뮤지컬에 빠져 꽤 많은 돈과 시간을 쓰기도 했다. 광고 전문가들의 강연을 들으면서 '아, 이게 원래 내가 바라던 삶'이라는 생각으로 돌아오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 생각했다. 틈틈이 쇼핑몰에서 일하며 디자인 센스를 키웠고, 졸업을 유예한 채 전공을 살려 사회에 나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토록 꿈꾸던 PR 에이전시에 A.E로 입사하게 되었다. 다행히 이곳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6개월짜리 인턴기간을 3개월로 줄여 정직원이 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았다. 너무 부푼 꿈을 안고 업계에 들어온 것도 있겠지만, 나는 생각보다 배포가 작았고 새로운 집단에 적응하기 어려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 모든 순간이 힘들어졌다. 무엇보다도 '첫 직장'의 흔적을 지우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유독 가족적인 분위기와 여러 지자체를 다녀야 하는 직업 특성상 유독 활동성이 높았던 직장 생활이 그리워졌다. 물론 그 외에 내부적으로 힘들었던 점도 있었지만 말이다. 내가 PR 에이전시에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도록 애써준 분들께 죄송했지만 다는 다시 이 말을 내뱉어야 했다.
"저는 이 일을 그만두고, 다시 쉬어 가겠습니다."
똑똑, 저 다시 관광 연구하러 왔는데요.
25살, 벌써 두 번째 퇴사를 겪은 나는 짧은 방황을 시작했다. 마침 당시 남자친구와 헤어져 몸과 마음이 두 배로 피폐해진 나는 백수의 삶을 살아갔다. 대충 잠에서 깨어나 눈물을 찔끔 흘리고 천장만 보고 있는 백수가 되고 싶었지만 태생적으로 그런 일상을 살아가기는 어려웠다. 이번에는 마케터 직군에 수많은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며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무슨 배짱에서인지 입사는 하지 않았다. 왠지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한여름, 뻔뻔한 퇴사자는 다시 전 직장을 찾아가 관광컨설팅업계에 돌아가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사회가, 직장이 내 마음대로 들어가고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하고 무례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마침 인력 공백이 생긴 회사에서는 나를 받아주었고 재정비 시간을 더 가진 이후에 '관광컨설턴트'로서 삶을 약속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준비하고 꿈 꾸었던 전공을 뒤로 하고 내 주변에서는 단 한 명도 찾아보기 어려운 '관광업계 종사자'가 되기로 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