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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기호 존중하기

싫은 건 싫은 것까지만

by 회색인간

예전에 사회 초년생 비슷한 시절(초년생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에

아주아주 큰 인생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어떤 경험이냐면, 이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나의 음식 취향이랄까? 입맛에 대해서 약간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순댓국이라는 음식을

전혀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사실 나는 비린맛에 좀 약한 사람이다.

생선 비린맛은 물론이거니와 돼지 비린내 같은 육고기 비린내에도 참 약한 사람이다.

그냥 삼겹살은 참 좋아하지만 내장이라던가 내장탕 같은 것은 전혀 못 먹었으니까.

그런 내게 순댓국이라는 음식은 애초에 시도해 보지 못할 음식이었기 때문에 먹어 본 적도,

먹어 볼 시도를 해 볼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싫어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일이지.

그런데 나는 그 당시 같이 식사를 하는 팀원들에게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

"어우 순댓국 그런 걸 왜 먹는지 모르겠어요~ 내장만 잔뜩 들어가서 비린내도 나고 ~

그 돈 주고 그걸 왜 먹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너무 예전 일이라서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략 뭐 이런 정도의

얘기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냥 내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한 이야기지만 그때 같이

일했던 팀원이 조용히 식사 후에 할 얘기가 있다며 나를 불러냈다.

그 팀원분이 내게 해 준 이야기는 이런 얘기였다.

"회색인간님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는데, 그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분 나빠할 얘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너무 오래된 얘기라서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런 느낌의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그때는 그냥 기분이 나쁘셨나 정도로 생각하고 사과하고 넘어갔지만, 더 시간이

지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굉장히 큰 실수를 했다는,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타인의 기호, 취향을 존중하지 않고 까내리는 식으로 내 생각을 이야기해 온 것이었다.

누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얘기했으면 기분 나쁘게 받아들였을 것이면서,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스스럼없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해 왔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그 후로부터 나는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도 "저랑은 잘 안 맞아요.", "저는 좋아하지 않아요"

정도로 이야기한다. 무슨 위법적인 것이 아니고 개인의 취향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영역이라면.


한참 나중이 지나서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거나 만나서 술 한잔 하는데, 어느 날 문득 내게 그런 얘기를 했다.

"사실 그때 회색인간님한테 그 얘기를 하고, 기분 나빠서 앞으로 볼 일이 없는 사이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오래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될 줄 몰랐다."

"반대로 저는 그때 그 얘기를 해주셔서 너무 고마웠어요. 아니었으면 계속 아무 생각 없이 살았을 거예요"


혹시나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나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나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의도가 있어서라기보다 자신도 모르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타인의 기호를 존중하자, 싫은 건 싫은 것까지만. 남들까지 싫어하길 바라지 말고.

그리고 나는 지금 순댓국을 무척 좋아한다. 고기는 안 넣고 순대만을 주문해서 먹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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