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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Apr 28. 2023

삼각형의 합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윗집 아이 엄마가 보인다. 오른쪽 발을 내디뎌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간단한 인사를 몇 마디 주고받는다.

"이번에 몇 반 됐어요?"

"5반이요. 우리 애도 5반인데 이번에 같은 반 됐네요." 동성이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는 말과 함께 우리의 대화는 마무리 됐다. 윗집은 아들, 우리 둘째는 딸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아이 엄마와 잠깐 나눈 대화로 방학 동안 잠시나마 꾹 하고 눌러 놓았던 불안감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같은 학교를 다니니 6년 동안 한 번은 만나겠지 생각했지만 이제 고학년에 접어드는 4학년에 같은 반이 되니 부담스럽다. 윗집 아이는 얼마 전에 수학학원도 추가해서 보낸다고 했다. 4학년 되니 진짜 주변에 학원 안 보내는 아이들이 없는 것 같다. 둘째 친구들도 학원을 하나씩 추가했다고 한다.








" 오늘 3월 마지막주인데 내공 다 풀었어? "

" 네. 다 풀었어요. 어제 사회 단원평가를 못 풀어서 학교에서 풀고 왔어요."

" 그래. 잘했네. 우리 둘째 제법인데. 그런 거 챙길 줄도 알고."


학습지에서 3월 이벤트로 문제집을 다 풀고 사진을 찍어서 응모하면 선물을 준다고 한다. 둘째가 이런 걸 놓칠 리가 없다. 둘째의 마음을 잘 알기에 응모기간에만 내면 되는 걸 하루라도 빨리 내고 싶었다. 선생님께 사진을 찍어 보내려 문제집을 폈다.

'어. 이거 뭐야? 지금 이게 풀은 거 맞아?' 


4학년 1학기 2단원 각도
 > 각도기를 이용하여 각의 크기를 알기
 > 각을 그려보기
 > 예각과 둔각 
 > 각도의 합과 차도 구하기
 > 삼각형 세 각의 크기의 합, 사각형 네 각의 크기의 합


둘째는 처음 보는 각도기를 이용하여 각을 재보고 그리기를 어려워했다. ebs강의를 틀어주며 들어보라고 하니 이해가 된다고 했다. 그랬던 둘째가 왜 문제를 풀지를 않고 답을 보고 썼을까? 이제 학교에서 각도기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고 했는데 문제가 어려워서 못 푼 건가. 아니면 시간이 없어서 그냥 답을 보고 썼나.








"둘째야. 이리 와봐."

"이거 다 푼 거야?"

"네. 그럼요."

"그럼 이 문제 다시 한번 풀어봐."

한참을 문제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둘째.

"잘 모르겠어?"

"네."

"그럼 삼각형의 합은 뭐야?

"......"

문제를 몰라서 못 풀었던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큰아이 역시 이런 적이 있었었다. 그때는 아이한테 물어보지도 않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큰아이를 윽박지르며 혼냈던 기억밖에 없다. 나중에 물어보니 아이는 풀기 싫어서 그랬다고 했다. 큰아이는 풀기 싫어 그랬다지만 둘째는 다르다. 몰라서 못 풀다니. 강의도 들어보고 만점왕 문제집도 풀어봤는데 왜 못 풀었을까.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답을 보며 썼을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생각해 보니 나도 어렸을 적 그런 경험들이 있기에 아이 마음이 이해가 됐다. 그래서 화나기보다 미안한 마음이 더 생겼다. 내가 아이를 더 잘 알고 있었어야 했는데 큰아이처럼 잘하겠지 생각하고 모르면 동영상 틀어주며 들어보라고 하기만 했다. 

"모르면 엄마한테 물어보지 그랬어."

"얼마나 답답했어." 

굳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둘째는 내 품에 얼굴을 갖다 대고 두 팔로 나를 꼭 안는다. 우린 다시 기본 개념부터 한번 쭉 살펴보고 한 문제씩 풀어갔다. 한 문제가 풀리니 술술 잘 풀었다. 옆에서 조금만 봐줘도 잘하는 아이인데 그냥 아이한테만 맡겨 놓으니 이런 결과가 생겼다.


"엄마. 엄마가 옆에서 봐주니까 문제도 잘 풀리고 이제 재미있어요."

"그래. 어려운 거 아니야. 알면 금방 풀려. 문제도 꼼꼼하게 읽어보고, 잘 모르겠으면 다른 문제 풀고 와서 다시 풀어보고."

"엄마. 나 이제 영어 할게요."

"Can a cat bake a cake" 모르는 문제를 해결하니 속이 뻥 뚫렸는지 목소리가 유난히 더 우렁차다.

"영어는 자신감. 더 크게 소리 내서 읽고 있어."

"엄마 운동 다녀올게."





  

  

작년만 해도 꽃이 피는 시기를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있었지만 올해는 따뜻한 날이 지속되고 있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봄에 꽃들이 동시에 꽃을 피워 집 앞만 나가도 꽃세상이 됐다. 내가 사는 동네는 벚꽃이 어딜 가나 만발했다. 아파트 주변으로 꽃망울을 터트린 벚꽃을 보고 있으니 이 봄날이 정말 사랑스럽다. 그래서 밤 운동을 더 나가게 되는 이유이다. 아이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를 듣고 와서일까 오늘 밤 운동은 유난히 기분 좋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손끝으로 전해지는 간지러움도 좋고, 흙에서 나는 봄내음도 좋고, 아름다운 벚꽃 사잇길을 걸어가니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밤이다. 


(이벤트에 응모했고, 바나나 우유 쿠폰을 선물 받았다.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길 수 없이 기뻐하는 우리 딸. 자기가 노력해서 받았다며 당당한 표정을 짓는 둘째가 귀엽다. 이런 작은 성취감들이 아이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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