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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봄 Nov 05. 2024

내 눈에 콩깍지

초등학교 5학년때 일이다. 반이 배정받고 도착한 곳에서는 여학생들의 웅성거림이 있었다. '무슨 일이지?' 의아한 생각에 같은 반 친구가 된 지원이에게 물었다. "우리 반에 강현수가 있대. 대박이지?" "저 애들 중에 강현수 좋아하지 않는 여학생들은 없을걸?" 그 말의 주인공을 쫓기 위해 갑자기 내 눈이 바빠졌다. 


지원이의 말처럼 현수는 훤칠한 키에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게 생겼고, 요즘 아이돌 같은 외모를 하고 있는 친구였다. 워낙에 남자애들 외모를 보지 않는 편이라서 이렇게 유난 떠는 친구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리를 정하기 위해 담임선생님은 우리를 남녀 한 줄씩 해서 두줄이 되게 만드셨다. 남자아이와 여자 아이 이렇게 짝을 이루게 하고 교실로 들여보내셨는데 아이들은 손으로 자신의 순번과 현수의 순번을 매칭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도 아주 관심이 없었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분주하게 눈으로 순서를 가늠했는데 현수의 짝꿍은 내가 아니었다. 현수와 짝꿍이 된 친구는 마치 로또에 맞은 것처럼 좋아하는 표정이 역력하면서도 겉으로는 새침을 떠는 모양으로 별거 아니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교실로 들어가 보니 현수가 바로 내 앞자리였다. 옆보다는 차라리 뒷자리가 낫겠다는 생각에 간단한 담임선생님의 인사말과 함께 새 학기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첫 수업은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내가 가장 싫어하던 수학이었다. 선생님의 수업이 진행되었고, 간간히 물어보시는 질문에 대답한다고 했는데 내가 엉뚱한 대답을 했었나 보다 쉬는 시간에 현수가 뒤돌아서서는 "안녕? 네가 새봄이지?"하고 인사를 건넸고, 수학시간에 틀렸던 부분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잘생겼으면서 매너까지 갖춘 현수~~ 말 그대로 엄친아 분위기가 넘쳐났다. 수업시간에 칠판을 보는 건지 현수의 뒤통수를 보는 건지 가끔 눈이 마주치면 웃음을 날리던 그 녀석. 30년도 훨씬 지난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심쿵할 때가 있다. 


며칠 후에 반장선거가 치러졌고, 이변 없이 현수가 반장에 당선되었다. 그런데 이날 나는 적지 않은 충격에 휩싸였다. 칠판에 친구의 추천으로 이름이 현수의 이름이 적히게 되었는데 내가 쭉 그렇게 알고 있던 강 씨가 아니라 방 씨였던 것이다. 


그게 뭐라고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그 아이는 강 씨가 어울리는 친구였다. 내 눈에 씌었던 콩깍지가 홀라당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이 때는 정체성이고 뭐고 없는 그런 철부지 사춘기 시절이 아닌가? 남자로서 느껴지던 감정은 온데간데없고 그냥 친구로만 여겨지던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현수를 친구로 대했고, 생활하면서 '참 멋진 친구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 학년을 보낸 것 같다. 그 이후에 중학교에 진학하고, 순정만화를 탐독하면서도 가끔 현수의 얼굴이 떠오르곤 했었다. 


지금은 우연이라도 길에서 만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때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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