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결석이라는 단어는 나에게는 금기어였다. 아직도 생생한 기억이 있다. 열이 펄펄 끓던 초등학교 1학년때 놀란 담임선생님께서 급하게 엄마에게 전화를 하셨고, 일하다가 중간에 달려오신 엄마는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 주사를 맞히셨다.
그리고 다시 내손을 이끌고 학교로 다시 보내셨다. 그때는 어린 나이에 너무 실망했다. 친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이렇듯 결석이라는 말은 감히 입밖에 낼 수도 없었고, 한 번이라도 시도를 할라치면 개근상은 무조건 받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았다.
학교란 결석 따위로 쉽게 놓아버릴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뼛속까지 세기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오늘날, 학교나 공부방 학원과 같은 곳에서는 결석을 다른 의미로 쉼이라는 표현을 한다. "오늘 하루 쉬겠습니다."라는 말이 너무 쉽게 그리고 많이 나온다.
몸이 아파도 꾸역꾸역 다니던 우리 시대와는 달리 이제는 마음이 피곤하다는 이유만으로도 며칠의 휴식이 허용된다. 이 변화는 과연 좋은 걸까? 아니면 시대적 흐름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요즘 세대는 필요 없는 완벽함을 강요받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 같다. 과거에 그저 "참고 버텨라."라는 말로 모든 것을 밀어붙였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버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이 아이들이 부럽기도 하다. 어릴 적 나에게도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서도 지금 아이들이 쉬는 이유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쉰다는 것은 회피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앞으로 나가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그저 하기 싫어서 둘러대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결론적으로 결석이 두려웠던 시절의 나는 조금 더 강한 의지를 길렀고, 오늘날의 아이들은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운다. 결석의 의미는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배우는 것 같다.
오늘 117년 만에 폭설로 인하여 학교도 휴교하고 오늘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몇 자 끄적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