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자를 조심하세요!
살면서 생기는 트라우마와 상처는 열차와 같다.
살면서 섭섭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한다. 나를 배신했던 사람이 더 미워지고, 가슴 아팠던 기억들이 새삼스레 소환되기도 한다. 그럴 때 제일 좋은 건 그 모든 일과 사람과 기억을 열차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또 '빠앙' 기적 소리를 울리며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열차가 통과하는 중이다. 담담히 지켜보며 내 마음을 다독이자. '서운한 게 정상이야. 미운 게 정상이야. 아픈 게 정상이야. 나니까 그때 그 정도 한 거고 지금 이 정도 하는 거야.' 열차가 통과하면 다시 일상이 환하게 시작된다. 그럼 됐다.
-오십, 나는 재미있게 살기로 했다. 이서원-
요 며칠 마음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어떻게 이상해졌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여태껏 없던 뭔가가 나의 감정을 다스리고 있다. 불쑥불쑥 맘이 변한다. 특히나 남편에 대한 맘이.
마술에 걸리기 전에 예민해지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다. 그것도 남편에게만.(집중 공격 대상자로 낙점되셨어요)
그런데 늘 밉지만은 않던 (젊은 날은 무진장 미웠었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흘러 내가 많이 잊었지만) 나의 동지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 사람이 갑자기 거슬린다. 불만스럽다. 짜증스럽게 대꾸가 나온다.(마음과 말이 따로 논다. 말이 나의 이성을 따르지 않고 제 멋대로 나온다 아니 가시를 품고 나온다)
"왜 그러는데. 왜 까칠해진 거야.
내 집사람은 어디 가고 딴 사람이 여기와 있는 거야."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최근 매달 하루 이틀 정도 뜬금없이 갑자기 맘이 뒤틀려서 그의 말들에 투견이 되어 사정없이 물어버린다.
TV프로 중 '이혼캠프'에 나온 정대세 씨네 부부 이야기를 잠깐 봤는데 그걸 보고서는
저녁에 같이 강변 따라서 걷는데 불쑥 예전에 내가 상처받았던 시어머니의 언행이 떠오르며 방관자로 있던 남편이 떠올랐다. 정대세 씨와 똑같은 모습이었다.(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만 보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다시 그 생각들이 나며 얼굴이 화끈거려지고 절대 잊을 수 없는 단지 덮어두었던 그때의 나의 감정이 떠오르면서 옆에서 걷고 있던 사람이 남 같이 느껴졌다.
'내가 그때 참 남 보다 못한 남자랑 여태까지 살았구나. 잊을 수 없어서 저 아래에 꼭꼭 덮어두었던 것이 오늘 다시 뚜껑이 열려버렸구나. 나도 어서 이 뚜껑 닫고 싶은데. '
난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걸었다. 혼자서 말하던 그 사람은 왜 대답이 없냐고 날 채근한다.
경험상 그냥 입을 다물어야, 아무 말도 말아야 우리는 평온할 것이다.
어차피 말을 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건 없었다. 여태껏 그래 왔으니.
내가 기억 상실증에 걸리지 않는 이상은.
나의 마음에 따라서 그는 어느 날은 나의 베프이며 세상 어느 누구보다 의지하는 사람 그리고 인생 끝나는 날까지 같이 있을 가능성이 제일 유력한 사람
그러나 또 다른 날은 눈치라고는 한 톨도 없고 공감 DNA는 찾으래야 찾을 수 없는 웬수 같은 인간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감정 변화의 날 그가 내 눈에 걸리지 않아야 하는데 그리고 트라우마가 되살아나지 않아야 간단히 끝날 텐데. 일부러 손을 대지 않지만 나의 잠자는 트라우마가 건드려지는 순간 난 포악한 사자가 되어 포효 소리를 내며 그를 물고 뜯을 게 뻔하다.... 이럴 땐 눈치 없는 그가 피해 주길 바라는 것보다 내가 잠깐 나가있어야겠다.
혼자 카페에 가서 책을 읽던 글을 쓰던지 해야겠다. 사자에게서 내 베프를 보호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