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Poem)와 직장생활
비 온다니 꽃 지겠다.
박준 시인의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 수록되어 있는 '생활과 예보'라는 제목의 시에서 발췌한 시구입니다.
박준 시인은『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서 일상 속에서 자주 과거를 되돌아보곤 합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스치듯 지나간 사람, 1층 문방구집 가족과 이웃, 아버지 등 주변 사람들과 있었던 일들을 관찰하고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지요.
그러면서도 앞으로 다가올 시간과 계절을 미리 살펴보면서 주변 사람들과 나를 위해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하는 모습들을 자주 표현하고 있습니다. 삼베이불을 꺼내며 여름 나기를 준비하는 것처럼요.
그러나 사실 이 글을 보신 여러분들께서는 제가 서두에 적어둔 시구를 보시고서는 '비가 오면 꽃이 떨어지겠지. 당연한 거 아니야? 이런 게 시야?'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박준 시인은 눈이 내리고 손님이 오면 따뜻한 밥을 지어다가 대접할 거라 말하며, 아버지가 쑥을 뜯으러 가는 동안 저녁으로 쑥과 된장으로 국을 끓일 생각을 합니다.
또 '당신'이 일어나 개어놓은 옷을 힘껏 펼쳐터는 소리를 듣고 하고 있던 일을 덮거나, 책장을 넘기다 손이 베인 '미인'이 아픈데 가렵다고 말하자 박준 시인은 가렵고 아프겠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박준 시인에게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살펴보는 것이 습관처럼 익숙한 행동입니다. 이런 그에게 '비가 오는 것'은 다가올 '꽃'의 미래를 미리 살펴보게끔 만드는 것이지요.
신형철 문화평론가는 박준 시인의『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 대한 감상으로 상대방의 미래를 내다보고 미리 준비하는 것들이 사랑의 방식들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미리 상대방의 처지와 미래를 살펴보고 그것을 위해 함께 준비하는 것, 그가 앞으로 갈 길들에 미리 가서 돌부리를 치워두는 것, 미리 먹어볼 음식들에 간을 보는 것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배려이자 사랑의 한 방식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는 좋은 시집이었습니다.
위에서는 박준 시인의 시를 통해 '미리 상대방의 미래를 다녀와보고 살펴보는 것'이 사랑의 한 방식일 수 있다는 얘기를 해보았습니다.
'사랑'이라니 왠지 모르게 오그라들고 부끄러워지는 느낌의 단어입니다.
그러나 회사의 인재들을 선발하고 육성하며 보상하고 평가하면서 긍정적인 직원경험(EX)을 제공해줘야 하는 사명을 가진 HRer분들께서는 사실 '상대방의 미래를 다녀와보고 살펴보는 것'을 매일 같이 해오고 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주어이고, 사람이 목적어'인 직무이기 때문이지요.
비단 회사 내 주니어 교육 담당자로서 HR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저만해도 그렇습니다.
최근에 교육 제도를 설계 및 기획하는 데 있어서 교육제도에 참여할 임직원분들의 미래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상상하며 임직원분들이 걸어갈 길에 걸려 넘어질 돌부리는 없는지, 가다가 다른 길로 새 버리는 경우는 없을지, 걷는 걸 아주 포기할 사람들은 없을지 걱정하며 살펴보았지요.
물론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사실 '내가 기획한 게 통과 안되면 어쩌지?', '내 기획안이 형편없다고 하면? 다들 내 의견에 공감해주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자기 보신(保身)적인 걱정들도 있었지만
내 주변 동료들과 선후배님들이 더 성장하고 배워서 본인들만의 커리어를 확고히 하고 직장생활에서 서로가 도움이 되길 바랐던 마음이 더 커서 그렇게 살펴보았던 것 같습니다.
교육과 육성에 관련된 분야가 아니더라도 HR분야에 있어서 '상대방의 미래를 다녀와보고 살펴보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습관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어쩔 수 없이 임직원의 처지와 입장보다는 '나와 HR팀이 짊어질 리스크(Risk) 대비 리턴(Return)'이 어떤지를 최우선의 가치로 정하고 미래를 살펴보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아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HRer는 임직원의 입장에서 미래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마인드셋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되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대퇴사, 조용한 사직, 업무 tool의 효율성 증대로 1명의 구성원이 만들 수 있는 성과의 절대값이 커진 것 등 집단 보다 개개인의 직무역량이 더욱 중요해진 요즘처럼 개인화된 직원경험을 제공해야 하는 HR로서는 더더욱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박준 시인의 시집을 읽고 난 뒤 저 스스로도 인간관계에 있어 잊지 말아야할 것들을 아래처럼 다시 정리해보며 글을 마무리 합니다.
'상대방이 걸어갈 길을 미리 걸어가보는 것, 불편함은 없는 지 살펴보는 것'
'마음이 상할 말과 행동들은 없었는지 돌이켜 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