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년만 백수하자
드디어 퇴사.
직장인 5년 차에 퇴사를 했다.
퇴사하기 전에는 퇴사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라는 착각을 했다.
스트레스도 싹 사라지고, 내가 하고 싶던 것도 척척 해내고. 마냥 그럴 것 같은 느낌.
퇴사가 만병통치약일 것 같은 생각 말이다.
퇴사하고 나서 2주 정도 지나자 후폭풍이 오기 시작했다.
뭔가 불안하고, 이렇게 할 일이 없어도 되나 싶고, 예전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가 정해져 있던 일상이 그리웠다.
사람이 불안하면 후회가 쉬워진다. 정말 오랜 기간 고민하고 결정한 퇴사라서 절대 후회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후회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잠시만, 그렇다고 다시 회사에 가고 싶은 건 절대 아니었다.
회사에 가고 싶은 건 아닌데, 백수인 지금 상황이 불안하고 허전하고.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걸까, 생각을 해봤다.
내가 내린 결론은 조금 씁쓸했다.
결론: 나는 자유를 누릴 줄 모른다.
그러니까, 온전히 하루를 내가 원하는 대로 보낼 줄은 모른다. 남들이 시킨 대로 살던 삶이 너무 익숙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가서까지.
아무런 숙제나 과제, 업무 없이 오랜 기간을 온전하게 내 마음대로 보낸 적이 있었던가?
일주일을, 한 달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냈던 적이 있었던가?
막상 떠오르지 않았다.
살아오지 않았던 방식대로 살려니까 자유가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은 살아온 방식으로 대응한다.
퇴사 후 2주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했던 건 핸드폰을 보는 것이었다.
습관적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을 켜고 딱히 해야 하는 것이 없으면 계속 스마트폰을 봤다.
그래서 일주일 리포트를 보니까 하루에 8시간 정도를 사용한 적도 있었다.
정말 그냥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것이었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들고 있으면 눈이 침침하기는 물론, 손목도 엄청 아프다.
점점 이게 맞나 라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하루 종일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하고 싶어서 퇴사를 한 것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니었다.
퇴사를 할 때는 하루를 온전히 나의 것으로 쓰고 싶었고, 온전히 나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퇴사하면 저절로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인정하긴 싫지만 어쩔 수 없는 진리: 좋은 것 중에 그냥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자유를 누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하루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 나는 태도를 바꾸고 습관을 바꿔야 했다.
'그래 새로운 걸 해보자. 내가 자유롭게 살아본 적이 없었다고 평생 그렇게 살지 말란 법도 없다.'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큰일 난다,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너무 갑자기 달려들면 그것도 안 좋을 수도 있다.
생각을 조금만 바꿨다.
나한테 무언가를 시키는 부모님, 선생님, 상사가 없어서 힘들다면 내가 나한테 시키면 된다.
내가 나를 고용한 고용자라고 생각을 하면 된다.
내가 나한테 이것저것 시키는 거다.
나는 백수지만 출근을 하는 거다.
상사는 나고, 그 부하 직원이자 실제로 일을 하는 사람도 나인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내가 움직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길게만 느껴졌던 하루라는 시간이 되게 소중한 자원처럼 느껴졌다.
"진저 사원! 1년 동안 잘 부탁한다!"
이제 아주 간단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면 된다.
딱 1년. 내게 딱 1년만 주기로 했다. 백수로 1년을 살고 다시 일을 찾을 것이다.
기간을 정해 놓으니까 마음이 더 촉박해지고 발등에 불이 붙었다.
한정적이고 소중한 이 시간.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해봐야겠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건 어떻게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