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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글 Dec 05. 2022

낯선이들과의 동침

 최근 잠을 잘 못 잔다. 이젠 불면증이 친구가 됐다. 몇 년 간의 3교대 때문에 엉망진창의 바이오리듬을 갖고 있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걱정과 불안으로 잡생각이 많아져 입면이 어렵기도 하고, 가끔은 누군가와 함께 자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잘 못 자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군가가 자기 전에 내가 먼저 자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그 누군가가 자는 모습을 의도치 않게 관찰하게 되는데, 이는 때때로 굉장히 재밌고 (변태 같지만) 흥미롭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인 영희는 본인은 항상 잠을 잘 못 잔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제일 잘 잔다. 특히 보청기를 끄고, 다리 밑에 베개를 받쳐주면 아기처럼 누구보다 곤히 잠에 든다. 피곤하면 가끔 코를 골긴 하지만, 그 코고는 소리가 나의 잠을 방해한 적은 없다. 그녀는 하체 부종을 달고 살아서 언제나 베개 2개를 다리 밑에 놓고 잔다. 다리를 높이는 베개를 깜빡하고 잠이 들면 중간에 화들짝 깨며 "베개, 베개." 아이처럼 칭얼거린다. 그러면 나도 화들짝 놀라며 엄마의 다리 밑에 베개를 받쳐준다. 일분 후 그녀는 다시 아기처럼 잠이 든다.


 내 친구 동그라미와 동침 시에는 사실 내가 먼저 잠이 든다. 그녀는 아마도 스마트폰을 하느라 잠을 늦게 잔다. 그리고 항상 나보다 늦게 기상한다. 그래서 그녀가 잠든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아침이다. 가끔 이상한 소리를 내기도 하고 나를 껴안기도 하고 나에게 발을 올리기도 한다. 처음 이상한 소리를 들었을 때는 실제로 나에게 하는 소린 줄 알고 대꾸했지만 나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고 제정신에 하는 소리도 아닌걸 알게 된 후로는 토닥토닥 두드려주며 다시 재워준다. 그러면 그녀는 다시 새근새근 잠이 든다. 그녀는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뒤척거리는 소리를 듣고 잠깐 실눈을 뜬다. 그리고 곧 일어날 기세를 보이지만 척 만하고 역시나 다시 잠이 든다. 그녀를 일어나게 하기 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처음 내가 동침하게 된 낯선 남자 1호는 굉장히 순둥순둥한 잠버릇을 가졌다. 아니 잠버릇이 없다고 하는게 맞겠다. 코도 잘 골지 않았고, 뒤척거림도 많지 않았다. 코는 잘 골지 않았지만 숨소리는 굉장히 거셌다. 나와 함께 있으면 설레고 흥분해서 숨이 거세지는 줄 알았는데 민망하게도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항상 연민의 감정을 실어다 주는 사람이었기에 밤에 자고 있는 그를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따꼼따꼼 저렸다. 잠든 그 사람을 보며 그가 느끼고 있을 슬픔, 불안, 책임감의 무게 등을 가늠해보곤 했는데 어린 나에겐 벅차고 힘들어서 짐작하기를 포기하곤 했다. 그래서 잠을 잘 때만이라도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그가 편히 쉬기를 바랐다.


 낯선남자 3-4호 정도 되는 남자는 코고는 소리가 컸다. 그와 함께 자면서 편하게 잔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너무 피곤해서 누워도, 잠이 들어도, 그가 코고는 소리에 잠이 깨버렸다. 그와 경주에 여행을 갔을 때였다. 그의 코에서 나는 소리에는 익숙해져 간신히 선잠을 자고 있었는데 항문의 괄약근에서 나는 소리에 그만 눈을 뜨고 말았다. 한번의 소리로 끝나지 않아 나는 그 기나긴 밤을 뜬 눈으로 하얗게 지새우고 말았는데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이 후 그의 항문에서 나온 기체의 향기가 작은 방을 꽉 채우고 있는 환상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그 향기가 연기처럼 눈에 보이고 그 연기에 내가 질식하는 상상이 실제처럼 생생해지자 나는 마침내 방문을 열고 말았다.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아침에 그가 열려있는 방문을 보고 "자다가 중간에 문 열었어?” 하는 소리에 "응. 왠지 공기가 안 좋은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다. 거짓말이기도 했고 진실이기도 했다. 추후에 그에게 진실을 말했는지 비밀을 유지해 줬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야, 프사 보니까 현 여친이랑 경주 갔더라?


 잠꼬대 하면 작년에 만난 낯선 남자가 최고였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세상에 저런 잠꼬대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루는 그의 집 침대에서 함께 잠들었는데, 그가 갑자기 폴더 폰이 접히 듯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더워서 그런가 하고 나도 선잠이 들었다. 이후 그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야! 아 하지 말라고! 아니라니까!" 그 소리를 듣고 너무 놀래서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이게 뭐지. 꿈인가? 도둑이 들었나? 하지만 몇 분 후 그는 다시 잠이 들었다. 너무 놀란 나는 그 잠꼬대의 정체를 생각하느라 밤새 잠에 들지 못했다. 스마트폰을 켜서 네이버에 검색도 해봤다. '소리지르는 잠꼬대', '남자친구가 자다가 소리를 질러요.'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잠꼬대였구나. 심지어 그는 본인이 걸어서 거실에 나간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요새 우리 집에 와서 자는 애도 코를 잘 곤다. 내가 최근 수면장애 때문에 수면제를 처방 받았다는 것과 본인의 코골이에 내가 잠을 잘 못 잔다는 사실을 알고 매일 저녁 귀찮도록 수면제를 먹었냐고 물어보고, 매일 아침 본인이 코를 골았는지 물어본다. 코를 골았다고 대답하면 본인은 그런 소리를 태어나서 처음 듣는 것 마냥 소스라치게 놀란다. 굉장히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기다. 또, 코를 골지 않았다고 대답하면 "진쫘?"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린애 같이 좋아한다. 왜냐하면 작전에 성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그는 옆으로 자면 코를 골지 않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후로 그 정보를 맹신하며 철저히 모로 누워서 자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 언제나 잠자기 시작할 때는 나를 보며 옆으로 눕는다. 그러다가 자는 도중에 목이 뻐근해서 자기도 모르게 바로 누우면 뒷통수가 베개에 닿자마자 무섭도록 코를 우렁차게 골아 버린다. 그 코골이에 본인이 또 깨서 다시 모로 눕는다. 반대쪽으로 자면 나를 등지고 자니까 그게 또 맘에 쓰였는지 한 방향만을 고집한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본인이 옆으로 잘 때도 코를 곤다는 사실을 아직은 모르고 있다. 바로 누울 때 보다 소리가 작을 뿐이다. 심지어 내 귀 바로 옆에 코를 골아서 나에겐 더 크게 들린다. 어찌됐든 그가 천장을 보고 자든 모로 누워 자든 잠을 잘 못 자겠다. 코골이 때문은 아닌 거 같은데 나도 사실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좀 친해지면 나도 어느 순간 잠들곤 했는데 얘 역시 그렇겠지? 좀 더 친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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