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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cember 디셈버 Dec 06. 2024

40. 유럽의 병가

유럽의 병가에 대해서

서머타임이 해제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의 해는 놀랄 만큼 짧아졌다. 최근은 오전 8시쯤에 해가 뜨고, 오후 4시가 되면 해가 지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고 비가 자주 오기 때문에 주변에서 기침소리와 콧물을 훌쩍거리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나 역시 몸이 으슬으슬하다가 다시 괜찮다가 또다시 컨디션이 좋지 않다가 다시 좋아지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3일 연속 근무의 두 번째 근무날, 얼마 전부터 병원을 돌아다니던 독감 예방접종 팀이 우리 병동을 방문했다. 예방접종 팀은 병동 곳곳을 돌아다니며 혹시 예방접종을 원하는 사람이 있는지 등에 대해 물어보았고, 나는 오늘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예방접종을 맞겠다고 말하자 미리 준비된 작은 방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방에 들어가서 금방 주사를 맞고 작은 테이프를 팔에 붙이고 나왔다. 아직 퇴근까지는 5시간가량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고, 미리 부지런히 일을 해둔 덕분에 남아 있는 일은 많지 않았고, 간단히 간호기록을 조금 더 보충하기로 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 퇴근시간이 가까워지자 콧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다음번 간호사들이 도착하자 점점 몸살기운이 도는 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언제 독감 예방접종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맞고도 잘 생활했던 것으로 기억했기 때문에 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탈이었다. 그렇게 퇴근을 하고 집에 가는 길에 비가 쏟아졌고, 곧바로 집에 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레몬과 꿀을 섞은 차를 두 세잔 연달아 마신 뒤 침대에 누웠지만 꼼짝없이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만 더 가면 휴일인데 출근을 할까 아니면 쉴까를 침대에서 한참 고민했다. 한국이었다면 고민 없이 출근을 했을 것이다. 우선 병가를 내기 위해서는 병원에 입원을 할 정도여야 했기 때문이다. 또,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더라도 모두가 내가 왜, 어디가 아픈지 모두 알게 되는 것 역시 부담스러울 것 같아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결근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병원에서는 몸이 좋지 않다면 1년에 7일을 의사의 진단서나 소견서 없이 자유롭게 병가로 사용할 수 있다. 만약 의사를 만나 휴식이 필요하다거나 혹은 병원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제한 없이 얼마든 병가를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병가를 사용하는 기간 동안 수당을 제외한 모든 급여는 삭감 없이 그대로 지급된다. 나의 경우 최소 전날에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만, 간혹 동료들 중에는 출근 30분 전에 아프다는 연락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또, 아무도 어디가 왜 아팠는지에 대해 묻지 않는다.


결국 새벽 1시경 병동에 연락을 해 오전 출근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고, 잘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늦게까지 기침과 콧물로 고생을 하다 겨우 잠이 들었고, 며칠을 더 고생했다. 한국이었다면 눈을 뜨자마자 병원에 가 약을 받아먹었겠지만, 현지에서는 그러기 쉽지가 않기도 하고 또 심각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잘 쉬고 비타민을 챙겨 먹으라는 따뜻한 말을 듣고 온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약국에 방문해 소염진통제와 기침 시럽을 사고, 마트에 가서 생강을 사 수제 생강포션(?)을 만들어 하루종일 달고 마셨다. 아무래도 현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이번 감기가 이번 겨울의 마지막 감기이기를 바라며 옷을 더 따뜻하게 껴입고 유럽의 겨울을 보내는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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