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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cember 디셈버 Nov 29. 2024

39. 간호사와 컴퓨터

종이 그리고 컴퓨터

처음 유럽현지에서 근무를 시작하기 전 몇 가지 걱정되는 것들이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문화적 차이 그리고 언어장벽이나 직장동료 그리고 상사를 대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을 테니 미리 해외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지인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또 자주 쓸 수 있을만한 외국어 표현들을 알아두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의 준비를 해두었었다.


하지만 막상 근무를 시작하고 나서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나를 괴롭히고는 했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종이차트였다. 한국의 병원에서는 환자와 관련된 모든 기록들, 예를 들어 전 병원에서 가지고 온 진료기록들, 투약기록, 처방전, 간호기록 등 거의 대부분의 기록이 전산화되어 있었다. 심지어 환자들에게 받는 동의서 역시 한국인 환자들의 경우 대부분은 태블릿에 익숙한 경우가 많아 전자패드에 전자펜으로 서명을 받고는 했었다. 종이를 보는 경우는 환자가 아주 고령이거나, 환자가 직접 가지고 온 처방전을 확인하는 경우 이외에는 드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병원에서는 채용 시 어느 정도 컴퓨터 활용에 있어 자유로운 간호사들을 선호하고, 졸업을 앞두고 취업준비를 앞둔 간호학생들은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몇 가지 준비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발표용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고, 웹서핑을 할 수 있으며 문서를 작성하는 정도라면 특별한 자격증이 있지 않아도 잘 적응하는 동기들을 많이 보고는 했다.


나 역시 당시 유행하던 몇 가지 자격증을 공부해 취득한 후 취업을 했었지만, 엑셀과 같은 심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고 주로 병원에서 사용하는 전산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또, 어린 시절부터 전자기기에 관심이 많으시던 부모님 덕에 아주 이른 나이부터 윈도우를 접하고, 컴퓨터로 벽돌 깨기 게임을 하거나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그림을 삽입하고, 애니메이션 효과를 이용해 자동차 경주를 하는 슬라이드 등을 만들기도 하는 등 컴퓨터의 활용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던 적은 없었다. 그저 유럽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큰 걱정이 없던 나의 발목을 붙잡혔다.


처음에는 어찌 되었든 환자에 대한 기록이니 종이나 전산이나 다를 바가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저기서 주워듣기로는 어느 대학병원이 가장 최근까지 부분적으로 종이차트를 사용하다가 완전히 전산화를 시켰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어느새 5년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종이차트를 접해본 적이 없고, 또 말로만 그 고된 노동을 전해 들은 나로서는 그저 두려움이 앞섰다. 그도 그럴 것이 환자와 관련된 의료기록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경우 중요한 자료로서 활용이 되기도 하고, 기록할 것이 많아 양이 방대할 경우 꼼꼼히 기록을 하다 오탈자가 생길 경우 수정테이프 등의 사용이 불가능하고 절차에 따라 오탈자임을 표시하고, 수정한 날짜나 시간 그리고 수정한 사람의 서명 등이 함께 기록되는 등의 특별한 절차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내가 현재 근무하는 병원에서는 부분적으로 종이차트를 사용하는데, 우선 다른 병원에서의 기록은 모두 종이로 출력하거나 혹은 수기로 작성된 문서이다. 또  환자에게서 받는 동의서, 검사실에서는 대부분 수기로 검사실 차트 양식에 환자와 관련된 기록을 남긴다. 이외에 원내 의사의 진료기록, 간호기록, 일반 투약기록 및 처방은 전산화되어있는 반면 항암제와 같은 특수한 약물의 처방은 종이와 전산을 부분적으로 함께 사용한다.


간호사로서 종이차트를 사용하는 것에 있어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먼저 장점으로는 종종 서버점검으로 인해 전산이 다운될 경우에도 환자의 기록에 접근이 가능하고 또 파일에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환자 앞에 가져가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있다. 하지만 단점으로는 기록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물리적으로 누군가가 종이차트를 사용하는 동안은 다른 사람이 함께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있다. 또, 간혹 악필의 기록자(예를 들자면 필자) 만난다면 글자 해독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전자차트를 훨씬 더 선호한다. 그리고 또 대체적으로 여건이 되는 경우 종이기록들을 전자기록으로 점차 바꿔가는 단계인 것 같다. 또 젊은 간호사들일 수록 전자차트 시스템을 가진 병원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현지에서도 한국의 전자기록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그런 것도 된다고?” 하는 반응을 자주 본다. 언젠가는 많은 나라들이 한국의 전자기록 시스템을 본국으로 들여가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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